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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1 -

*이 글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따라쓰기를 하면서 개인적 성장배경에서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설명해본 습작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나이 일곱 여덟 빠른 생일로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무렵, 나는 내가 나중에 커서 글을 쓰게 될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더 늦게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웠다.

기억으로 아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내 이름 석자를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제부터 그렇게 글상이 떠오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난 나의 첫번째 글상에 대한 영감의 순간을 사뭇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딸 둘의 둘째였다. 위로 세살 터울의 언니는 수업이 나보다 늦게 끝났기에 학교가 끝나면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며 언니를 기다리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부모님은 농사꾼이셨고, 아침 일찍 트럭을 끌고 나가셔서 늘상 완전한 어둠이 내리고서야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다. 이 때문에, 그리고 몇가지 다른 이유들도 작용해서, 나는 늘 외로웠으며, 한 학년에 학생 서넛이 전부였던 시골분교를 다닐 때도 늘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혼자서 집에 돌아가는 길, 공원 의자에 잠시 앉아있을때 바람에 날아가는 검은비닐봉지를 보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정말 아무런 놀라울 것도 없는 그 건조한 풍경에 나는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저 검은봉다리가 곧 인생인 것만 같아

라는 나이와 전혀 관계없을 그런 생각을 했고, 나는 그 말을 뜻없이 다이어리에 받아 적어놓았다.
그 뒤로는 떠오르는 생각들, 깨달은 것들이 나에게 글상이 되어 찾아와 글을 친구삼고 삶의 의미를 글을 쓰며 찾았던 듯 싶다. 나는 내게 말을 다루는 재주와 상처받은 마음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알고 있었다. 이 능력으로 나는 12살 인생 한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글을 통해서 칭찬받으며, 나의 외로움 또한 이해받고 싶었다. 초등학생때부터 22살 무렵까지 항상 종이에 썻던 나의 글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였더니 어느새 글쓰기 노트는 10권, 20권이 되어 내 방 한켠 커다란 상자에 담겨있다. 이것이 그 시절 내가 종이에 실제로 썼던 <진지한> 성장에세이의 토대이다.




이 기간 내내 나는 어떤 의미에서 문학활동이라 부를 만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무슨 글쓰기 공모가 있을 때 주제에 맞춰 쓰는 대회용 글이었다. 이 종류의 글을 나는 오랜 고민끝에 매우 심각하게 써내려가 응모했으나, 별로 큰 즐거움은 느끼지 못 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많이 쓰기 시작한 사춘기시절(이를테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홈스쿨을 시작한 십대후반무렵) 나는 남에게 보여질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스스로 극한의 감정속에 글상을 떠올리며 써내는 글을 되읽으며 감탄에 젖어있기를 즐겼다.




책을 많이 읽어보고자 했지만 이해하기 쉬운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 아니고서야 다른 책들은 졸음이 쏟아져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초현실주의에 빠져 시각적으로 정확한 형태를 그릴 수 없는 이를테면, 물 속 세계에 사는 듯한 촉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이런 환상적 <이야기>는 가끔씩 불쑥 그 나르시시즘을 잃었고, 대신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자신감에 가득찬 <확신>을 해 보는 일에 만족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내가 써놓은 글을 보면 대부분의 시간에 내 머리에는 이런 문장들이 흐르곤 했다.

< 뭔가 이미 다 알고 답을 가졌는데도 지금 많이 빗나가고 있는 듯 하다. 생각과 관념을 놓고 수치심과 이기심을 놓고,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이룬 듯 현실에 감사하고 사랑하자. 이미 난 해냈다. 더할 것이 없다. 두려울 것이 없다.. 2009.8.13 >

어쩌고 저쩌고. 이 정신적 가치에 대해 글쓰는 버릇은 나의 깨어남의 연대랄 수 있는 삶에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이런 깨어남의 표현을 위해 내가 정확한 어휘들을 찾기 위해 했던 노력은 조금도 없다. 그 당시 나는 오히려 다독을 기피했다. 생각건데 나의 깨어남에 대한 에세이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모방하거나 따라 쓰고 싶지 않은 온전히 내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이 모든 배경 정보를 내가 여기 털어놓는 까닭은, 우리가 한 작가의 성장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서는 후일 그를 지배하게 되는 이런저런 동기들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뭔가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특유의 어떤 정서적인 태도를 획득해놓고 있고 그렇게 획득된 태도로부터 아주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기질을 길들이고 어떤 미숙한 단계나 괴팍한 기분에 매여 있지 않도록 자기를 훈련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