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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늘보 Oct 04. 2023

하이라이트를 위한 절제

피아노곡에는 쳐야 할 음이 너무 많지만, 그중에서 들려주고 싶은 음만 들리게 할 줄 알아야 한다. 피아니스트들이 원하는 손가락에만 힘을 줄 수 있도록 열 손가락을 고르게 발달시키는 연습을 끝없이 하는 이유다. 열 손가락이 모든 음을 같은 힘으로 고르게 쳐버리면 관객이 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건 음악이라기보단 소음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곡을 칠 때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언젠가 유퀴즈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말한 것처럼, 하이라이트에서 극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에서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부분이 계속 아름다우면 역설적으로 그 음악은 감동을 줄 수 없다.


이런 절제의 미는 춤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동작에 힘이 들어가면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힘을 풀 땐 확실히 풀고, 정확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서 힘을 주어야 보는 사람도 춤을 이해할 수 있다.


무용이나 음악이나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완벽한 것보다, 몇 군데가 특출난 것이 더 큰 감동을 준다. 그걸 알면서도, 무용수와 연주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과 감성을 전부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앞서기 마련이다. 무용수에게 모든 안무는 중요하고, 연주자에게 모든 음은 아름답다.  그래서 언제나 ‘하이라이트’를 위해서 나머지를 절제하고 덜어내는 작업이 제일 어렵다.  


이건 마치 글쓰기에서 퇴고할 때와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싶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 초고에서 제일 중요한 것만 남겨두어야 하는 일. 읽는 사람에게 피로감을 주고 쓸데없이 현란하기만 한 단어들을 지우는 일. 내가 쓴 글은 다 소중하지만, 살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쳐내고 나면 글이 훨씬 담백하고 명료해진다.  


예술은 끝없이 자기 안의 욕심과 허영을 덜어내는 작업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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