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권

내가 줄 수 있는 도움

by 소극적인숙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 한 이후로 엄마로서 누리는 소소한 재미가 생겼다.

바로 학교가방 열어보기다.

가방을 열면 이것저것 구겨진 종이, 널브러진 알림장 종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등 다양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들은 조금 과묵하지만 가끔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내용, 글쓰기 연습, 자기소개하는 발표 시간 등을 쑥스러워하며 이야기한다.

그러면 나는 그런 자식을 보며 재미를 느끼고 웃는다.


어느 날은 여러 장의 <도움권>이라는 종이를 가져왔는데 제법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 지우개로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 등이 보였다.

가장자리는 가위로 오려서 약간의 울퉁불퉁한 모양이었지만 정성 들인 솜씨가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 잊고 있다가 다시 도움권을 유심히 봤는데, 내 눈에 눈에 띈 건 "사용기한"이었다.


사용기한 항목에는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야 부모로서, 엄마로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 살면서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기다니...


그 글자를 하나씩 보는데 마음이 참 이상했다.

초등학교 1학년, 이제 막 입학한 아이에게 도움을 받는다 생각하다니.

내 아이가 왠지 모르게 훌쩍 커버린 듯 보였다.


아이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써놨는데, "정리하기", "신발정리", "분리배출", "식탁에 수저 놓기"였다.

사실 이것들은 우리가 생활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면서 조금씩 해봤던 것들이다.

그런데 글로 써서 <도움권>이라는 티켓을 받아보니 왜 이리도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일까.


가끔 우리들은 은연중에 내뱉은 말, 툭툭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또는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단어와 말들이 목걸이의 고리처럼 하나씩 연결이 되면 근사한 하이 주얼리가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본질을 더 보여주기도 전에 서랍 속에 고스란히 넣어둔, 묵은 때가 박힌 금속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우리가 뇌에서 생각을 하고 신호를 보내 속으로 조금 곱씹으며 건넨 말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온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36.5 도의 온도를 지닌, 때론 최상위 포유류에서 나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차가운 냉기를 가질 때도 있다.


그래서 "편지" 또는 마음을 담은 몇 글자의 "글"을 쓴 종이를 받아볼 때면 가슴이 시큰거린다.

그것은 차가운 냉기가 아닌 따뜻함에서 올라온 찌릿한 감정의 온도다.


주변이 어수선하고 마음 한 구석이 힘들고 외롭고 고독하다고 느껴질 때 도움을 받는다면 어떨까.

도움은 구세주 메시아처럼, 미륵처럼 느껴질 거다.

가족에게 연필로 직접 쓴 종이 도움권을 받는다는 건 재미를 넘어선 그 가치 이상이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아이를 통해 "도움권"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도움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형체 또는 보이지 않는 손길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진심을 담은 마음 또는 마음으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어떠한 물체를 통해 전달하는 표현 방법 등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누군가에게 기대고 서로 도움도 주고받고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더욱 도움을 받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도 해봤다가 험한 세상살이에 신중해진다.

그래서 도움을 주는 사람의 마음, 의도 등을 먼저 파악하게 된다.

가끔은 이것이 진실한 마음인가라고 의심을 해본다.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물어보니 나는 이 부분에서 멈칫했다.

부끄럽지만 내 이름 세 글자를 적어서 나눠줄 수 있는 도움권은 없었다.

백 세 시대라고 하니 이제부터 천천히 진지하게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을 생각해보고 싶다.


쑥스러워서 종이에 못 그리더라도.

오늘부터 마음속에 그려보려 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받아들일 수 없다면, 깨달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