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의 이야기 3

미안하다고 말하면, 죄인이 되는 엄마

by 소극적인숙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몸이 무겁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육아는 적응되었지만, 수연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세상은 빙글빙글 도는 듯 보였다.

안경을 벗으니, 눈에 초점을 맞추기가 더 힘든

모습이다.


누가 봐도 아슬아슬한 상황, 두 다리는 휘청이었다.

그리고 수연은 비틀거리며 쓰러져서 넘어졌다.

이에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엄마! 엄? 마아?!!! 괜찮아요?"


아기새 같은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수연에게 안기며, 이불을 챙겨 온다.


"어... 엄마가 어지러워서 그랬나 봐. 배도 아프고..."


수연은 유독 생리통이 심해지는 날이 가끔 있었다.

그녀는 진통제를 여러 번 먹어도 낫지를 않았고, 배를 움켜쥐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딸이

"엄마, 여기 누워보세요. 제가? 치료해 줄게요?"


작은 입으로 쫑알거리는 수연의 딸이 등을 토닥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의사놀이 장난감을 꺼낸 뒤, 수연의 배를 청진하고 체온을 잰다.


수연의 딸은 인형들을 가득 들고 와 주변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그리고 도톰한 이불을 하나 더 들고 왔다. 한 손에는 베개를 들며 수연 머리맡에 놔두었다.


"지금은 어때요? 어디가 아픈가요?"


작고 귀여운 목소리가 수연의 목을 간질거렸다.

아프지만 수연은 괜찮다고 얘기한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행동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묵직한 목소리로 그 분위기를 깨듯

"괜찮아? 왜 그래."


수연의 남편이 퉁명스럽게 얘기한다.

재현은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듯 그저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애써 웃으며

"그냥... 몸이 좀 힘들었나 봐. 어지럽네. 이런 적이 거의 없는데..."


재현은 그저 듣기만 할 뿐 시선은 온통 휴대폰과 TV 가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참 착해... 애들만 아니었어도..."


수연은 속으로 입을 꾹 다물며, 천천히 일어나 정수기로 향했다. 겨우 눈을 뜨고 물을 마시려고 보니 오후 1시가 넘었다. 따뜻한 티백을 우려내고, 전자레인지에 첫 끼니를 해결할 빵 몇 조각을 데우고 있었다.


재현은 그 모습을 보며 터벅터벅 걷더니

"하... 주말에 내가 쉬지도 못하고... 나 운동은 언제 가고 언제 도대체 쉬냐."


그 말 끝에 수연은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너무 아파서 어제부터 집안일을 제대고 못했어. 손을 거의 놓고 있었어."


"하아... 식기세척기 두 번을 돌렸어. 쓰레기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몇 번을 그랬다."


수연도 안다. 집안일이 많다는 걸, 네 식구 가정을 돌보며 청소도 하고 아이들 밥 차릴 걱정에 놀아주는 것까지 도맡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를 본 수연은 조용히 식탁 앞에 앉아서, 빵과 따뜻한 차를 곁들이며 첫 끼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재현이

"애들 밥 좀 차려줘. 점심밥도 못 먹었어."


그 말 끝에 수연은 조용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빵을 먹기 시작했다.



가끔 동네 엄마들이 수연에게 자랑하듯

"우리 남편은 주말에 본인이 직접 애들 밥 차린다니깐요. 호호호."


"어머나, 그 집 아빠는 다정하네. 주말에 애들 밥도 차리고 공부도 봐줘요?"


어깨를 으쓱이며 씩 웃는 누구네 엄마.

"네에. 주말인데 아빠가 요리사가 되어야죠."


수연은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다정한 가정, 돈 걱정 없이 남편이 든든하게 아이들을 보살피며 챙기는 모습까지.

다정다감한 남편을 둔 동네 엄마를 보면, 전생에 저 엄마는 좋은 일을 했나 보다며 자기 위로를 했었다.


문득 그 엄마가 떠올랐다. 그 집 엄마는 아프면 남편이 다 챙겨주겠지, 누워있으면 눈칫밥 안 먹겠구나, 복 받았다면서.




잠시 생각을 전환하고 현실로 돌아와 보니

'왜 엄마는 아프면 안 될까, 죄인이 되는 걸까.'

문득 서러운 감정이 든 수연이었다


'왜 나는 참는 법을 배워야 했나, 나도 참기 싫을 때가 있는데... 아내, 엄마라는 이유로 이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나도 사람이잖아. 괜찮지 않단 말이야.'


수연은 한 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엄마가 오늘은 너무 아파서... 빵으로 한 끼 해결할래?"


"네. 엄마 나 배 안고파요. 그냥 빵 먹을래요"

의젓한 아들 영준이 아픈 엄마를 보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밥보다는 간편식이 더 좋다는 듯, 아이들은 오히려 신나 보였다.


수연은 거실과 주방 바닥을 살펴봤다.

널브러진 장난감과 종이, 색연필 등이 퍼져있었다.


건조된 수건 빨래들이 쌓여 바닥에 놓여있었고, 수연은 하나씩 수건을 접어가며 탑을 만들었다.

뒤를 이은 재현은 타이밍을 잘 맞춰, 아이들 밥을 조금씩 준비했다.

즉석조리밥, 간편식재료, 간편식 국과 밑반찬들을 데워가며 아이들 식판을 두 개를 준비했다.


아빠니깐, 아이들을 사랑하니깐, 참는 게 보였다.

재현은 수연에게 그렇게 싫은 티를 냈어야 했을까.

수연은 사랑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사람대접을 받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진짜... 나라도 안 움직이면 어쩔 뻔했냐... 얘들아 얼른 밥 먹어."


두 아이들은 명랑한 목소로 대답을 하며 식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 재현은 맞은편에 앉아 밥상을 차리며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는 수연이 먹을 밥은 없었고, 숟가락 젓가락조차 놓이지 않았다.

그저 물어보면 될 것을, 어떠한 물음도 궁금증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밥을 먹는 재현이었다.


수연은 무표정으로 재현을 바라보며 속으로 쓴 물을 삼켰다.

'이게 사십 대 어느 부부의 집 안 풍경인가, 우리 집만 이러는 걸까?'


미안하다고 말하면 죄인 취급받는 엄마의 모습.

그런 시절이 있었다.

수연도 재현과 어긋나며 어느 부부처럼 자주 싸우고 살던 날이 있었다.




가끔 수연은 떠올려본다.

남들도 그렇게들 살아가는 지를.

소통이 적었던 수연은 나이가 들어서도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며 서있었다.


한 사람으로 대접받기를 원했던, 수연 자체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그 시절이 이제 찾아온 거 같았다.


윤찬과 편지를 소식을 주고받으며 풋풋했던 두 사람의 젊은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그 시절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수연 마음속 깊이 울리며 서서히 문을 열게 만들었다

순수했던 십 대 시절부터, 서로를 알아가며 배려했던 이 십 대의 연애와 사랑을 떠올렸다.


수연과 윤찬은 삼 십 대의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이 그대로 어긋나, 수면 속으로 내려갔다.


이제는 수연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윤찬과의 재회와 만남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어떤 파동이 올 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대로 마냥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윤찬이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기에 가족들도 눈치채기 시작했다.


엄마가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며, 우리들을 버리고 연애를 시작한다며.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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