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끝에 닿는 붓끝

서점에서의 첫 만남

by 소극적인숙

서점 안의 공기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는 안도의 한숨이 오고 갔지만, 그마저도 살짝 숨이 가빠왔다.

결국 두 사람은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수연은 서점의 주인이 눈치 보이는지 속삭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만약 우리 가족이 들어온다면, 여기서 마주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

“모르는 척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고…“


수연은 잠시 망설이며 힘없이 말 끝을 흐렸다.

윤찬은 은밀한 작전을 짜듯 소곤거리며 대화를 이끌었다.


“글쎄… 일단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조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수연아, 너의 마음이 이끄는 데로 해.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니.”


두 사람은 서로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각자 품에 안으며 서 있었다.

당장 오해를 받기 딱 쉬운 상황이다.

손에 책 한 권이라도 들고 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는 않을 거라 통한 모양이었다.

둘 사이의 묘한 감정을 알아차린 서점 주인은 끝 쪽 서가를 정리하며,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작은 서점 안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꽤 재미있는 자극제가 되었다.


“일단 만일을 대비해서 말이야.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가…”

윤찬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드르륵 문 소리가 들리며 종종 거리는 빠른 발걸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깐만! 윤찬아! 쉿! 조금만 우리 멀리 떨어져 있을까?”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수연은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꾹 닫았다.

윤찬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수연아, 그런데 목소리가… 잘 안 들려… 뭐라고? “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런데 풋… 우리 엄마, 아빠 몰래 연애하는 거 같지 않니.”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젓는 수연을 보니 윤찬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러고는 가볍게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연은 갑자기 있던 자리를 벗어나 서점을 방문한 손님 쪽을 향해 걸어갔다.

윤찬은 의아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대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다급하게 수연을 불러봤지만 듣지 못했다.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뒤따라 눈길을 돌려보니, 끝 쪽 서가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윤찬과 수연을 바라보는 꼬마 남자아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서 있었다.


“할! 머! 니! 여기 왜 있어요? 어? 옆에 누구예요?”

씩씩한 목소리로 말하는 손자를 따라 손녀도 큰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어지이? 누구우세여?”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수연과 윤찬은 마음이 녹아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와 눈웃음을 보였다.


수연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출입문 열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목소리, 발걸음은 익숙한 소리였다.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갑자기 서점에서 윤찬과 손을 잡고 빠져나간다면 더 이상하게 볼 거 같았다.


동네 사람들이 이 날의 일을 소재 거리로 삼아 떠들고 다닐게 뻔히 보였다.

수연은 차라리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여렸던 그녀가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다가섰다.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죄를 지은 건 아니었으니깐.


수연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유연하게 이 상황을 매끄럽게 이끌어 가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찾아와서 당황스러움이 앞섰지만 이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 손자와 손녀, 그리고 며느리와 아들까지 볼 줄이야.‘

‘애들에게 잘 설명을 하면 되겠지.’


병아리 같이 작고 귀여운 두 아이 뒤로 천천히 다가오는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수연의 아들 영준, 며느리 연주였다.

며느리는 놀라며 그대로 서 있었고, 아들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하얀 피부가 더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하… 하…아…! 어머니… 저… 잠깐! 여기 애들이 갑자기 들어가자고 해서… 요…호호호.”


연주의 어색한 대답에 수연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수연의 미소 따라 연주도 비슷하게 지어 보였지만 영 어색해 보였다.

눈만 반쯤 웃고 있고 약간 실성한 듯 보였다.

영준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 이 가족들의 평화가 시급해 보였다.


수연 옆에 낯선 노인이 함께 있는 걸 본 순간, 영준의 마음이 울컥거렸다.


‘아빠 돌아가신 지가 언제 되었다고, 벌써…‘


서로 불편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서점 주인은 계산대로 조용히 걸어갔다.

중앙에서 멀리 내다보기 딱 좋은 위치에 잡으며 모니터를 보는 척했다.

서점 주인 옆구리에 팝콘만 있으면 딱이었다.

얼어붙은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은 듯, 손자는 수연에게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아… 할머니! 왜 여기 있어요? 나 할머니 같았는데… 엄마가 아니래요.”


“서우야! 쉿! 무슨 소리야… 엄마가 그랬었나… 네가 잘못 들은 걸 거야.”


“맞아. 맞아 아아 아. 엄마가… 굴랬잖아요.”


“서율아! 조용히 해줄래… 어른들 이야기에 껴드는 거 아니야.”


“아니 아니 저 할아버어지… 누 구우세요… 친구예요?”


윤찬은 지금이 대답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궁금해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따라 윤찬도 바로 대답을 하였다.


“응, 할아버지는 너희들 할머니 친구야. 동네 친구지.”


“와? 그럼 우리 할머니랑 같은 여기 아파트 살아요? 이든이처럼요?”


“이든? 이든이는 누구니? 그리고 할머니랑은 다른 아파트에 산단다.”


그 소리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쉰 영준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윤찬을 천천히 살펴봤다.


‘휴우, 다른 아파트라 다행이네. 엄마 옆에 저분은 도대체 누구신거야. 외모와 옷차림은 단정해 보이네. “


영준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윤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저리 장황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우리 엄마한테 얹혀 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은데… 모르지. 요즘 황혼에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하니깐.‘

갑자기 수연의 재산을 노리고 다가온 건 아닌지, 영준은 윤찬을 의심했다.

모든 게 곱게 보이지 않았다.

영준의 걱정과 달리, 아들 서우는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든이는요. 제 친구예요. 저랑 같은 사랑 2반 친구요.”


“오, 그렇구나. 너는 유치원 다니니? 몇 살이지? 이름은?”

윤찬은 인자한 할아버지 미소를 지으며 수연의 손자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당차고 대답도 잘하는 손자의 모습이 수연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했다.


“저는요. 6살이에요. 이름은 이서우요.”


“옆에 동생은? 이름은?”


“아, 제 동생은 이서율이요. 3살이에요.”


그렇게 두 사람은 이름과 나이를 주고받으며 계속 대화를 했다.

그 뒤로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어지자, 영준을 조르며 계산대와 가까운 곳으로 밀고 갔다.

아빠에게 사달라며 떼쓰는 모습이 딱 제 나이 또래 같았다.

윤찬은 서둘러 수연에게 다가가 손을 살며시 잡으며 긴장을 풀어줬다.


“수연아, 이거 내가 계산할게. “


윤찬은 수연과 맞잡은 손을 톡톡 두드리며 풀었다.

수연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지만 걱정스러운 눈길로 윤찬을 봤다.

그런 수연의 표정을 읽었는지 윤찬은 짧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기, 이든이라고 했니? 옆에 동생은 뭐였더라…”


“아뇨! 그건 제 친구 이름인데요. 제 이름은 이서우, 동생은 이서율입니다.”

진지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본 윤찬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내 정신 좀. 그래 그래, 서우야 할아버지가 사과할게.”

윤찬은 순간 머쓱해졌지만 바로 고개를 숙이고 서우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손을 내미었다.


“대신 사과의 의미로 너희 둘이 고른 책이랑 퍼즐을 할아버지가 사주고 싶은데, 괜찮니.”

서우와 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의 눈치를 살펴봤다.

며느리 연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두 아이의 아빠 영준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윤찬과 서우, 서율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 아이는 윤찬의 손을 잡고 휘두르며 계산대로 걸어갔다.


조금 놀란 서점 주인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계산을 하였다.

윤찬은 흘끗 봤다가 모니터를 봤다가, 다시 흘끗 봤다가 영준을 살짝 봤다.

여전히 심통 난 표정이었다.

계산을 마친 윤찬은 책 봉투를 아이들에게 건넸다.

이에 신난 아이들과 며느리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나가려 했다.

그러자 윤찬은 못다 한 말이 있는 듯 잠깐 수연을 보다가 다시 아이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여기 근처에 아이스크림 가게 있던데 거기에 가서 같이 먹을래?”


”예예~아이스크림~먹고 싶어요. “


“저도요! 아이수쿠리 먹어보고 싶어요.”


영준은 불편한 내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영준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 끝에 윤찬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청했다.

마지못한 영준은 손을 내밀어 맞잡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어머님, 아무래도 애들 아빠 따라 나가야 할 거 같아요. 다음에 저희 함께 해요.”


“그래, 너도 고생이 많구나. 애들도 잘 챙기고,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네, 어머님 어디 가시는 길이셨어요? 댁으로 돌아가세요?”


“아니, 여기 근처에 화실… 작업실에 가려던 길이였는데… 잠깐 들른 거 지모…”


“아…그러면 어머님 볼 일 보시고 댁에 도착하시면 연락 주세요.”


“그러자꾸나. 어서 저기 영준이 따라가 보렴.”


마지못해 떠나는 연주는 윤찬에게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서점 밖을 나갔다.

두 사람은 조금 어색해진 기분이 들었는지, 품에 안고 있던 책을 제자리에 다시 꽂고 나왔다.

말없이 걷다가 수연은 조금씩 걸음을 늦추며 멈춰 섰다.


“오늘 내가 그림 그리고 있는 작업실에 같이 가보려 했는데… 날이 아닌 거 같아.”


“알지, 그럼 그럼. 다음에도 있으니깐, 그때 다시 초대해 줘.”


“초대라고 할 것 까지야… 그냥 습작일 뿐인데 뭘… 요즘 취미로 하고 있어.”


“우리 나이에 취미는 꼭 하나씩 있어야 하잖아. 멋져.”


수연과 윤찬은 작업실 일정을 다시 잡기로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다소 수연에게는 아쉬웠던 하루였지만 조금은 후련한 마음도 있었다.

아들 영준이 그렇게 거리감을 두고 떠날 줄은 몰랐지만 예상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된 대책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헤어지고 나니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아들 영준에게는 미안함, 죄책감, 서운함의 감정이 겹겹이 쌓였지만 이제 와서 털어놓는 것도 못나게 여겨졌다.

나이 들어서 이게 뭐 하는 일인가, 왜 일을 벌이기만 하는가 싶었다.

수연은 위축된 감정을 붙잡고 화실로 조용히 들어섰다.


진득한 물감 냄새와 마르지 않은 기름 냄새가 공간을 채웠다.

수연은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며 다른 작업실 칸도 둘러보았다.

마르지 않은 유화 물감과 보존제가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같이 준비하는 동료들의 노력을 떠올려 보았다.


수연이 살아온 세월, 서서히 잊혀 갔던 자신을 다시 있게 만든 공간이다.

재현과 결혼 후에 엄마와 아내 역할에 매몰되었던 삶, 그것은 당연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이젠 재현 죽음 이후로 남은 것을 둘러보니 텅 빈 집뿐이었다.

서서히 꺼져가는 불씨처럼, 수연 자신도 죽음이 찾아온 듯, 사라지고 있었다.


‘재현의 아내’, ’ 며느리‘, ’ 애들 엄마’, ‘할머니’, 가족을 위해 움직여왔다. 수연은 붓을 들며 본인 존재를 깨달으며 찾고 싶어 보였다.


그녀는 작업실 안으로 들어와 중간에 멈췄던 그림을 다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따뜻한 햇빛에 반사되어 펼쳐진 갈색과 황금빛 풍경의 갈대밭이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흔들리는 줄기를 따라 가득 채우는 넘실거림을 채색한 수연은 그 부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늦가을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을 수연을 꼭 그려보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곳은 수연과 윤찬의 추억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거 같았다.


습지를 따라 걷다 보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그 주변에서 서식하는 조류를 천천히 관찰하는 재미까지, 윤찬과 함께 했던 시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벤치에 앉아있는 어느 연인, 갈대밭의 군락을 따라 걷는 또 다른 연인, 그리고 가족들까지. 수연은 붓끝에 떠오르는 영감을 따라 갈대밭을 더 그려 나갔다.


그리움을 채운 수연은 아직 감정이 유효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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