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내 인생에는 어쩌다 보니 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늘 정확히 계획대로 애쓴 만큼의 결과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아마도 융통성이 없어 한 우물을 파는 데에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 성향의 덕을 본 것도 같다. A가 없으면 B를 찾으면 되는 건데 나는 그게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간혹 의외의 끈기를 발휘하기도 한다. 얻을 수 없는 무엇과 통제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오기로부터 비롯된 열정을 쓸모 있는 곳에 쏟아부을 때가 그렇다.
사람들이 흔히 '끈기'라 부르는 것이 알고 보면 어떤 결핍으로 인한 강박의 일면일 때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똑같은 오기를 부리더라도 그 결과가 무언가 그럴듯한 형태로 치환되면 '줏대 있다'라는 긍정적 평가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진 어떤 성향이든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을 가지기 마련이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세상과 타인의 평가에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왕 가지고 있는 결핍감이라면 그것을 다른 통로로 승화시켜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융통성 없는 사람과 심지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한 끗 차이일지 모른다.
A를 원하다가 뜻대로 안되어 B에 집념하고 있는데 제법 괜찮은 C나 D가 나타나기도 하는 게 인생이니까. 그러다 언젠가 알게 될지도. 내 인생에 A가 없다고 그리 섭섭해할 필요는 없었다는걸.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작가.
미드로 인생배우기 유단자.
집순이가 체질이자 숙명이며
우울함 속에 숨겨진 위트를 찾아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거북이, 달팽이 같은 느린 것들에게 주로 동질감을 느낀다.
- 인스타그램 : dancing.sn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