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동네 술집
집에서 가까운 곳에 좋아하는 동네 술집이 있다는 건 일상 속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단골 술집에서의 맛있는 음식과 술 한 잔은 고단한 하루의 끝에 가장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퇴근 시간이 맞는 날, 오늘은 맛있는 것 좀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 싶은 날엔 고민 없이 이곳으로 향한다.
사장님은 매일매일 가장 컨디션이 좋은 제철 재료로 그날의 메뉴를 선보이신다. 수산시장에서 직접 공수해 온 제철 재료들과 함께 오늘의 메뉴를 인스타에 올리시는데 SNS를 하지 않는 오빠가 이 집 사장님은 팔로우한다. 오늘은 어떤 생선이 들어왔는지, 이번에 나온 신메뉴가 뭔지 등 이 집 소식을 나는 오빠를 통해 가장 빠르게 접한다.
여기서 먹는 음식엔 실패가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도 입 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놀랍다. 첫 한 입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음식은 단새우 들기름 파스타다. 들기름의 고소함은 말할 것도 없고, 고명으로 올라간 모든 재료들의 조화에 진실의 미간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맛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음식은 아귀간초회. 마냥 비릴 거라 생각했는데 크림치즈처럼 부드럽고 고소해서 어느 날은 오빠보다 내가 먼저 아귀간초회를 찾기도 했다. 최근 사장님이 시즌 메뉴로 내놓은 초당옥수수크림파스타 또한 올여름 어김없이 집 나간 내 입 맛을 되살리는데 한몫했다.
이 곳에서 좋아하는 음식과 술 한잔을 기울이면서 우리는 그날 하루의 뿌듯함과 빡침을 쉼 없이 이야기한다. 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 들을 오빠에게 굉장히 디테일하게 말한다. 오빠는 마냥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닌데, 그래서 오빠랑 대화하다 보면 내가 나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내 생각과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일에서도 마음가짐에서도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다짐할 수 있어서 오빠랑 대화하는 시간이 좋다.
음식과 술 대화까지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우리의 단골집. 나만 알고 싶으면서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데려가고 싶은 그런 동네 술집. 적어도 우리가 이 동네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켜줬으면 한다. 단골인 우리를 '젊은 부부'로 핸드폰에 저장해 둔 사장님이 '중년 부부'로 이름을 바꾸는 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