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 날

후련하지도, 그렇다고 찝찝하지도 않아

by 춤추는 목각인형

한동안 멈춰있던 나의 권고사직 일기를 이어가 본다.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나온 지 1년이 훨씬 넘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이 주제 말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쓰는 나 말고 지금의 나를 기록할 수 있는 글을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며 아직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해본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마지막 출근 날의 몇몇 장면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화창했다. 4월의 봄날, 나는 출근길에 장기하의 '그건 네 생각이고'를 꺼내 들었다.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그냥 니 갈 길 가' '친절히 설명을 조곤조곤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적당히 빠른 비트감과 내 맘을 대변해 주는 듯한 가사까지. 나에게 딱 필요한 최적의 플레이리스트였다.


내 맘을 대변해주던 그 날의 노래


몇 번이고 같은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듣고 있는데 아빠한테서 문자가 왔다. 아빠는 내 마지막 출근길이 내심 맘에 쓰였던 모양이다. 굿모닝 인사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온 '화이팅! 사랑해요'에 눈시울이 좀 붉어졌지만 'ㅋㅋㅋ'으로 가득 채운 카톡을 보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씩씩하게 답장했다.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나오게 됐다는 소식을 맨 처음 전한 날부터 마지막 출근 날까지 아빠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자'라는 말로 조급한 내 맘을 달래주었다. 언제든 날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음에 힘이 났다.


항상 스윗한 우리 아빠


이 날 회사는 한적했다. 작년 4월만 하더라도 재택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팀장도 출근하지 않았다. 그래도 같이 땀 흘린 시간이 있는데... 수고 많았다 마지막 인사 정도는 직접 만나서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직접 만나서 인사하는 게 어렵다면 고생 많았다 응원한다는 문자 한 통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이내, 살면서 더 이상 마주칠 리 없는(제발 마주칠 리 없었으면 하는) 사람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감정이 쓸데없음을 깨달았다. 도움 받으며 일했던 분들께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하고 따뜻한 응원을 받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기에 불필요한데 에너지 쓰지 말자며 애써 무시했다.


마지막 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신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한강뷰의 구내식당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여유롭게 커피도 한 잔 했다. 바쁘고 정신없어서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사내 복지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맛보았다.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아늑한 안마실, 야경이 끝내주던 헬스장, 해외 음악과 서적을 즐길 수 있는 라이브러리 공간까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하나씩 해보는 내 모습이 조금 웃기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좀 덜 아쉬울 것 같았다.


회사 복지는 알아서 잘 챙겨먹자 다짐햇다.


그렇게 오후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서야 나는 그 회사를 나왔다. 마지막 출근길 이자 마지막 퇴근길이기도 했던 그날. 후련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찝찝한 것도 없었다. 무언가 '0의 상태' 에 가까웠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꽤나 가벼웠다. 나 너무 고생했다고, 그래도 잘 버텼다고, 재정비하고 다시 잘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내가 나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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