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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Sep 19. 2021

치부를 들켰다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14)



그렇지 않아도 고갈티에서 종종 'Serious Dan'으로 불리던 나는, 7월과 8월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더 웃는 일이 줄어들었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나면 아이들은 어디론가 함께 몰려가 맥주 한 잔씩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그 속에서도 겉돌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타임 때도 혼자 몰래 빠져나와 카페에 처박혀 있기 일쑤였고, 일이 끝나면 늘 피곤하다는 이유로 곧장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지쳐 있었다. 이제는 에더의 웃음이나 라리사의 위로 같은 것으로도 쉬이 마음이 풀리지가 않았다.   




매일 아침, 더블린의 거리에서는 곳곳의 펍에 맥주를 배달하기 위한 '기네스 트럭'을 마주치고는 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때 나는 손님들이 지긋지긋했다. 몸이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바쁜 나를 붙잡고,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 손님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에게 상냥해지는 일이 세상에서 세 번째쯤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아이들은 자신이 맡은 테이블의 손님들에게 다가가 '오늘 어때?' '날이 좋지?' '너희 어디서 왔어?' 등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지만, 나는 늘


“지금 주문할 거니?”

“뭐 주문할 건데?”

“더 필요한 거 있어?”


라는 말들만 했다. 난 꼭 해야 할 말만 했고, 그들도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길 원했다.


사람들은 종종 음식을 다 먹은 후에야 음식이 별로였다며 값을 지불할 수 없다고 했고, 음식이 조금 늦어진다는 이유로 툭하면 매니저를 불러오라고 했다. 


"글루텐 프리 메뉴가 정말 스테이크 밖에 없니?" (글루텐을 안 먹을 거면 외식을 안 하는 게 낫지 않아?) 

"여긴 왜 에스프레소가 없어?" (여긴 커피 전문점이 아니거든.) 

"아, 이래서 아일랜드는 안 돼." (그럼 그냥 너희 나라로 돌아가든가.) 


그때쯤에 손님들을 대하는 내 마음은 고작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그중에서 최악은 음식과 술과 디저트까지도 다 먹은 후에, 계산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리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고갈티에서 일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물론 자신들이 내지 않은 돈을 웨이트리스가 내야 한다는 사실 따윈 몰랐겠지만, 그런 손님들 때문에 고갈티에서는 사흘에 한 명꼴로 웨이트리스들이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그리고 이 피곤한 하루하루 속에서, 나를 점점 더 견딜 수 없게 만든 또 한 가지는 다름 아닌 프랭크의 괴상한 편애였다. 당시, 고갈티에서는 너무 많은 플로어 스태프들이 일을 그만두어서 일손이 정말로 부족했다. 우리는 모두 점점 더 나빠지는 스케줄을 받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프랭크가 몇몇 웨이트리스에게만 일을 몰아 시키면서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고갈티의 레프트 뱅크. 퇴근할 때면 항상 이렇게 테이블을 정리해 놓고 가곤 했었다. 



그 금요일 오후에도 그랬다.


나는 오전 10시 30분에 출근해 오픈을 했고, 파울라는 오후 6시에 출근을 했고, 나는 다음날인 토요일에도 오픈을 해야 하고, 파울라는 다음날 오후 두 시 출근인데. 레프트뱅크에 나타난 프랭크는, 우리가 별로 바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나를 따로 밖으로 부른다. 


“단, 한 사람은 퇴근해도 되겠어. 누구를 집에 보낼래?”


스케줄 상 당연히 내가 퇴근해야 할 순서이다. 


“내가 가면 안 되니?”


하지만 프랭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 뿐이다. 안 돼. 


"파울라랑 제니퍼 둘 중에 한 명, 네가 정해서 집에 보내."


그리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둘 중에 내가 더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것이, 그나마 그가 나에게 보인 선의라면 선의이다.




하지만 둘 중 누가 집에 가고 싶으냐는 내 질문에, 파울라도 제니퍼도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  

  

파울라: 난 오늘은 정말 일찍 집에 가기 싫어. 지난주에 나는 28시간인가 밖에 일을 안 했어.

제니퍼: 난 24시간이야! 이번 주도 벌써 금요일인데, 열네 시간밖에 일을 안 했다고.

파울라: 단, 넌 지난주에 몇 시간 일했어??


내가 일한 시간은 주급 명세표에 찍힌 시간만 56시간.* 파울라와 제니퍼보다 두 배쯤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프랭크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어떤 아이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을 것 같고, 또 어떤 아이들은 일을 너무 적게 해서 죽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둘 중 한 명을 먼저 집에 보내고, 마지막까지 마감을 직접 해야 하겠지. 그래서 그나마 네 시간을 더 일한 파울라를 집에 보내는데, 제니퍼가 나를 보며 말한다. 


"단, 모두가 다 너를 좋아해."

"응?"

"프랭크도 너를 좋아하고, 도네도 너를 좋아하잖아."

"프랭크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싫어하지 않는 거지."

"그 정도면 엄청 좋아한다는 뜻이야. 난 프랭크가 널 집에 보내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래, 바로 그게 문제야."

"뭐가?"

"어떻게 하면 프랭크한테서 미움을 받을 수 있는 거니?"


그러자, 제니퍼의 그 커다란 눈이 절반의 진심과 절반의 장난으로 찡그러진다. 프랭크에게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제니퍼는, 그래서 일주일에 스물여덟 시간밖에 일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제니퍼는, 아마도 나를 향해 bitch! 정도의 말을 날리고 싶었겠지. 


"어쨌든 모두 다 단을 사랑한다니까. 넌 손님한테 별로 친절하지도 않은데. 그치?"


그렇지만 종종 나를 'My love'라고 부르는 제니퍼는 나에게 한 마디 욕을 해주는 대신, 그냥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되받아친다. 맞는 말이다. 요즘의 나는 손님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나는 점점 더 일을 잘하는 웨이트리스가 되어갔고, 덕분에 팁도 더 많이 얻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손님들에게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안나와의 사이에 조금씩 금이 갔다.  


사실 진짜 '단'을 알아본 건 안나뿐인지도 모른다. 도네는 내가 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유니폼도 단정하게 입는다는 것에만 신경 쓸 뿐 내가 점점 고갈티에서 마음이 떠나고 있다는 건 눈치 채지 못하는 듯했다. 프랭크는 내가, 자신에게 그러하듯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뚝뚝하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키는 늘 내가 부지런하다는 것에 만족할 뿐 다른 건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하지만 안나는, 내가 고갈티를 지긋지긋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고, 그래서 점점 더 사람들에게도 차가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처럼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갈티에서의 내 인내심이 극에 달해 있을 때이다. 내 쌀쌀맞은 표정에, 머쓱해진 손님의 부탁을 대신 들어준 안나가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단, 너 방금 너무 무례했어.”


그래서 나도 그녀를 쳐다본다. 창백하리만큼 새하얀 안나의 얼굴과, 그 얼굴만큼이나 차가운 눈. 나의 무례함을 딱히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고, 숨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막상 그녀의 눈을 마주 보고 있자니 마치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 부끄러워진다.


그랬다. 나는 그날 안나에게, 치부를 들켰다. 






*) 주급 명세표에 찍힌 시간이 56시간이라는 것은, 실제로 일한 시간은 60시간이 넘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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