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13)
존은 고갈티에서 노래를 하는 뮤지션이었다. 고갈티는 ‘라이브 펍’이었기 때문에 매일 저녁 실제 가수들이 악기를 들고 와 라이브 연주를 선보였다. 대여섯 명의, 어쩌면 예닐곱 명의, 정해진 뮤지션들이 고갈티에서 노래를 했는데 그중에서 존은 주로 메인바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도, 또는 노래를 하던 중에도, 그는 종종 지나가는 나에게 살짝 손짓을 해 보이고는 기네스 한 잔을 주문하고는 했다.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기네스를 가져다주었고, 그러면 그는 기네스 값을 계산하면서 1유로나 2유로의 팁을 조금씩 더해주고는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고맙다고 말을 했고, 그리고는 곧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일들을 하러 갔다. 그를 대하는 그런 내 태도가 유별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그날도 변함없이 나에게 기네스를 전해 받은 존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더니
“You are so cheeky**.”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마주친 아이리쉬 펍. 세계 각국에서 '아이리쉬 펍'이란 이름을 볼 때마다 고갈티가 생각나고는 했다.
나는 존에게 무례하게 군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너는 이름이 뭐야?”
“단.”
“좋아, 단. 너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응.”
“너는 왜 잘 웃지를 않아?”
나는 잠깐, 그가 물어본 질문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에게 꼭 웃어 보여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가.
“내가 꼭 웃어야 했던 거야?”
“뭐?”
“웃는 게 내 의무는 아니잖아. 별로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는 웨이트리스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는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일이지 웃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cheeky한 것일까.
물론 그 후로 나는 존에게 좀 더 친절하게 굴었다. 어쨌든 우리는 몇 달 동안 같은 곳에서 일을 했고, 그는 너그러운 사람이었고, 늘 나를 친절하게 대했으니까. 그렇지만 웃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웃지는 않았다. 그건 꼭 존에게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웨이트리스가 해야 할 일들을 빠짐없이 잘 해내는 편이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바로 빈 테이블로 안내했고, 메뉴판을 준 다음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주문을 받았고, 주문을 받을 땐 음료와 사이드 옵션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먼저 커트러리를 가져다주고, 필요할 땐 핑거 보울이나 추가 접시를 챙겨주고, 손님들의 추가 주문이 있으면 그 또한 잊지 않고 챙겨 주었다. 칩스 좀 더 줄 수 있어? 포크 하나만 더 가져다 줄래? 그런 식의 문제들을 아무리 바쁘더라도, 최대한 빨리 해결해주려고 애썼다.
가끔 기네스를 마셔보고 싶은데 그 맛이 많이 쓰냐고 묻는 손님들에겐 내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기도 했다. '나도 흑맥주를 안 좋아하거든. 그래서 기네스를 마실 땐, 블랙커런트라는 시럽을 추가해서 먹어. 약간 단 맛이 더해져서 훨씬 맛있긴 한데, 그런데 이건 호불호가 갈려.' 나는 한국인이었지만 아일랜드 맥주에 대한 자부심을 갖춘 웨이트리스였고, 그래서 기네스를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아이리쉬 라거를 따로 권해 주기도 했다. '하프(Harp)나 합 하우스(Hop House 13)는 아이리쉬 라거야. 흑맥주가 싫으면 이걸로 한 번 마셔볼래?'
음식을 다 먹으면 지저분하지 않게 바로 테이블을 치워 주었고, 원하면 바로 계산을 할 수 있게 늘 내가 맡은 테이블에 신경도 쓰고 있었다. 팁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가는 손님들을 홀대한 적도 없었다. 메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음식을 잘못 주문한 손님이 있으면, 음식이 나온 후에도 기꺼이 다른 음식으로 바꿔주는 친절 정도도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메뉴판을 가져다주거나 음식을 서빙해 주는 나를 발견하고는, 아이리쉬 펍에서 일하고 있는 아시안 여자가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 무례한 줄도 모르고 내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별로 친절하게 굴지 않았다.
“니하오?”
까만 눈에 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면 그저 다 중국인인 줄 아는 그 무지함을 향해서까지 친절하고 싶지 않았고,
“헤이, 스마일! 스마일!”
술에 취해서는 허락도 없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사람들을 향해서까지 웃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걸 두고 ‘건방지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냥 건방진 사람으로 사는 쪽이 더 좋았다.
고갈티에서 일을 하는 동안, 실제로 몇 번쯤 그런 요구를 들은 적이 있었다. 헤이, 좀 웃어봐. 내가 20유로 줄 테니까, 웃어볼래? 자, 이거 팁이야. 웃는 모습 좀 보여줘.
그들이 왜 그렇게 ‘웨이트리스의 미소’에 집착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웨이트리스가, 동전을 넣고 태엽을 감아주면 미소를 지어주는 인형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사람들은 타인의 미소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까. 어째서 여자의 미소는 미덕처럼 평가될까.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말고는 자신들을 향해 웃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미소는 기분 좋은 것이지만, 결코 강요될 수는 없다는 것을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더블린에 살면서 내가 특별히 사랑하게 된 '아이리쉬 커피'. 사람들은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주문하면, 웨이트리스의 미소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고갈티의 매니저들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친절이나 미소를 강요하지 않았다. 언젠가, 술에 취해 자꾸 나를 귀찮게 하는 손님들을 보았을 때, 프랭크는 벌컥 바를 뛰어 넘어오더니 그들을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럴 땐 시큐리티를 불러. 알았어?’ 프랭크는 내게 그렇게 가르쳤다. 문 앞에 시큐리티들이 서 있다고. 저런 손님들은 언제든 쫓아내 버려도 된다고.
식사를 하는 내내, 온갖 트집을 잡는 세 명의 남자 손님 때문에 내가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도 나 대신 그들을 상대하러 나선 것은 비키였다. ‘좋아. 너희 지금까지 먹은 거 돈 안 내도 되니까, 그냥 가.’ 그들을 내보낸 후, 비키는 내 등에 살짝 손을 올렸다. 그들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 나에게 충고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냥 코끝을 찡긋하며 웃었다. '괜찮아, 세상엔 진상들이 많잖아.'
내가 고갈티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술과 음식을 서비스 하고 있긴 하지만, 친절과 웃음은 그와 별개인 거라고. 친절한 태도와 기분 좋은 미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베풀어지는 거라고.
적어도 고갈티는 그 정도의 상식은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고갈티를 떠나던 마지막 날, 일을 끝내고 몇몇이 모여 맥주를 마시러 가서는, 술은 마시지 않고 스테파니와 조곤조곤 이야기만 나누고 있는 내 앞으로 존이 와서 앉았다.
“Dan, I'll miss you."
물론 그럴 것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존은 그 '건방진 나'를 좀 좋아했었다.
“나 대신 더 좋은 웨이트리스가 들어올 거야. 너한테 기네스도 웃으면서 가져다주는.”
그러자 존은, 자신이 예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웃었다.
"안 웃어줘도 돼. 오히려 네 무표정이 그리울 거야."
나도 미소가 기분 좋은 것임은 안다. 하지만, 웃고 싶지 않을 때 미소 짓지 않을 정도의 자유는 웨이트리스에게도 있는 것이다.
*) 보통은 결제 금액의 10% 정도가 적절한 팁이다. 물론 팁 문화에 얼마나 익숙한 나라에서 왔느냐에 따라 팁을 남기는 정도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몇 시간씩 바에 머물며, 많은 음식과 술을 마시고도 팁을 전혀 주지 않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넉넉하게 15% 정도의 팁을 주고 가기도 한다. 팁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으나, 팁 문화가 자리 잡은 나라에서는 조금이라도 팁을 남기고 가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하다.
**) 'Cheeky'란, '(재미있는 방식으로, 또는 매력적인 방식으로) 건방진, 무례한' 의미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