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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May 01. 2018

먼지와 소음, 그래도 아름다운 상탄지에

2018년 4월 30일, 열일곱째 날


노동절을 맞아 사흘을 연달아 쉬게 되었다. 그 사이 누구는 한국을 다녀온다 하고, 또 누구는 내게 상하이 여행을 가라는데, 나는 그냥 게으름을 부리며 가까운 쑤저우만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사흘을 쉰다고 해도 그중 하루는 오샹Auchan 마트에 가 대대적인 장보기를 좀 하고 싶었고,


(오샹 마트는 쑤저우에서 가장 큰 마트 중 하나이다. 계산대만 백 개가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규모는 꽤 컸고 그 안을 돌아다니느라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곳에 다녀온 덕분에 우리 집엔 드디어 이것저것 필요했던 물건들이 좀 갖추어졌다.)


하루는 밀린 일을 좀 해야 해서, 멀리까지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딜 갈까 하다가, 결국 선택한 것은 상투적이게도 상탄지에Shangtang Street. 山塘街라고 쓰니까, 우리말로 하면 '산당가'이다.




중국은 양쯔강을 경계로 해 그 남쪽 지방을 '강남'이라고 하고, 이 강남 지방에는 수로가 발달한 아름다운 '수향 마을'이 많이 있다. 쑤저우에도 바로 그러한 수향 마을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산당가'일 것이다. 만약, 우연히 인터넷에서 '쑤저우'의 사진을 보고 '예쁘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그 사진은 바로 산당가에서 찍은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이곳에 오기 전, 저런 곳에 가서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건 산당가의 사진을 보았을 때니까.


그러니까 이곳이 관광객 붐비는, 내 마음대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든, 그래서 쉴 자리 같은 건 찾을 수 없는 곳일 걸 뻔히 짐작하면서도 어쨌든 한 번은 이곳에 가보고 싶었다. 때문에 구글맵을 검색해보니, 우리 집에서 상탄지에까지 가는 방법은 15분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30분을 가, 다시 3~5분쯤 걷는 것. 그래서 쑤저우에 온 이후 처음으로 중국의 지하철을 타러 왔다.





역 안에는 이런 티켓 판매기가 배치되어 있다. '또 표 구매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우측 하단에 있는 'English' 버튼을 터치하면 영어로도 기계 사용이 가능하다.


쑤저우의 버스 요금은 1원인데, 지하철 요금은 거리마다 조금씩 다른 듯했고 상탄지에까지 가는 건 4원이었다. 버스 요금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쑤저우에서의 생활비가 서울에서의 생활비와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170원 정도밖에 안 하는 버스비는 정말로 저렴한 편이다. (택시 기본비는 13원이니까 2,200원. 스타벅스 카페라테 Tall size는 28원이니까 4,800원, 무제한 데이터가 제공되는 핸드폰 한 달 요금은 100원이니까 17,000원 정도다.)



그렇게 무사히 티켓을 사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탄다는 별거 아닌 기쁨에 들떠 사진도 찍고, 역 안으로 들어가려니 우선 이렇게 짐 검사를 하게 되어 있다.



사실 이 도시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짐을 다 찾은 후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 또다시 끝없이 늘어진 줄 뒤로 가서 한 명씩 한 명씩 모든 짐 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로 화가 났었다. 난 가진 짐이 정말 많았고, 그 짐들을 내가 다 들어서 이런 기계 위에 올려놓아야 했거든. 그러니까 중국은 어디서나 이렇게 짐 검사를 하게 되어 있다. 이건 참 귀찮은 일지만, 어쩔 수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고, 중국에 오면 중국의 법을 따라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매고 있던 가방을 저 기계 사이로 한 번 통과시킨 후, 지하철을 탔다. 




상탄지에에 가려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다가 '상탄지에' 역에 내리면 된다. 그리고 1번 출구로 나가 백 미터 정도만 걸으면, 아주 조그만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에 서서 북쪽을 본 것이 바로 아래 사진이다.



하지만, 이 풍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상탄지에로 갈 수 없다. 난 별생각 없이 북쪽으로 올라갔는데, 거리가 휑한 것이 관광객이라곤 한 명도 없고, 거리의 사람들도 다 나를 얼마쯤 신기한 듯 바라보기에 난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눈치로 알았다.


그러니까 상탄지에로 가려면 그 다리에서 북쪽이 아니라 바로 건너편인 남쪽 길을 따라 내려갔어야 했다. 찾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으니까 나처럼 잘못 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길을 잘못 든 나는 덕분에 이렇게 한가하고 조용한 거리를 만났다. 진짜 사람들이 사는 곳. 그래서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기 미안해지는 곳.




그렇게 얼마쯤 거리를 방황하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 져서 딱 중국식으로 꾸며져 있다는 산탕지에 스타벅스에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구글맵을 다시 검색했다가 내가 원래 가야 할 쪽과 반대쪽으로 왔다는 걸 확실해 깨달았고, 마냥 낯선 곳을 헤매기엔 목이 너무 말라서 일단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곧 스타벅스에 도착했는데, 1층엔 테이블 자체가 없고, 2층은 빈자리 없이 꽉 차서, 흩날리는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밖에 나와 앉았다. 


(한 가지 알아둘 것! 이 스타벅스에선 현금을 받지 않는다. 아직 중국 계좌를 만들지 않아서 현금을 냈더니, 주문을 받던 여자가 '난 캐시 없어'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중국에선 비자도, 마스터도 잘 안 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당황했는데 다행히 국민은행 카드가 유니온 페이였다. 그래서 얼른 꺼내서 건네주기. '이걸로 되지?' 그러자 그 여자애도 같이 기뻐해 줬다. '응!' 쑤저우에선 영어가 안 통하지만, 스타벅스에서는 통한다. 말이 하고 싶으면 스타벅스에 와야 하는 걸까?)





그렇게 성공적으로 받아낸 커피를 손에 들고 밖에 나와 앉았다. 그런데 저기 저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를 보면 알겠지만, 야외에 앉아 있노라면 주위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담배를 펴댄다. 금연석 같은 건, 아직 중국에서는 보지 못했다. 게다가 인사동 거리처럼 사람들로 꽉꽉 찬 그 좁은 거리로도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다니기 때문에, 단박에 갈증을 없애줄 아이스커피를 손에 들고 앉아서도 '평화' 같은 건 맛볼 수 없다.


음, '평화롭다'라는 건 역시 중국과는 어울리지 않아.





그래서 조금 우울해졌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짜증이 났고. 그래서 그냥 집에 가버릴까 싶었다. 이곳은 야경이 예쁘대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기분이 나빠지자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어 졌다.


'예뻐봤자 얼마나 예쁘겠어? 오는 토요일에 일 끝나고 다시 오면 되잖아? 어차피 여기서 사는 중인데, 오늘 꼭 이 거리의 야경을 봐야 할 이유가 뭔데? 노동절이라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든 걸 거야. 다음에 좀 더 한가할 때 다시 오자.'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다 마신 커피를 쓰레기통에 던져 놓고, 지하철 역을 향해 다시 길을 거슬러 내려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나를 밀치고 지나갔고, 또 그들 중 누구도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울었고,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이 야단쳤고, 문득 그런 식의 소음을 더는 견딜 수 없어진 나는 조금 덜 붐비는 것처럼 보이는 거리 쪽으로 슬쩍 몸을 틀었다가,




이런 풍경을 마주쳤다.


아, 그러니까, 이곳에 올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로 하여금 '쑤저우로 가자'라고 마음먹게 만들었던 풍경.  



사실 나는, 내가 중국을 좋아하지 않게 되리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곳으로 떠나오기로 한 건, 나에게 더 이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이유였다. 그래서 다시 짐을 쌌고, 다시 또 살아본 적 없는 도시로 떠나왔으면서, 적어도 이곳에선 내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히 기뻐했으면서, 지난 2주 내내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계속 불만을 터트려온 내가 조금 못마땅했다.


그래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대신,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마침 비어 있는 어느 Bar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아주 순한 얼굴을 한 남자가 주문을 받기 위해 내게로 다가왔다. 아무런 스스럼이 없는 그의 중국어 앞에서, 중국어를 못하는데 외국인 취급도 받지 못하는 처지의 곤란함 때문에 나는 잠깐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미안, 네 말 못 알아듣겠어."

"아, 알았어. 너 영어는 할 줄 아니?"

"응."


다행히 그가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무사히 맥주 한 잔과 칩스 한 접시를 시켰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수많은 이들의 방해를 받으며 상탄지에에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오후 여섯 시 사십 분.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이 거리에 불이 켜진다.



그러자 오후 내내 나를 괴롭혔던 먼지와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지만, 어쩔 수 없지.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는 건 나 하나가 아닌 거니까.



그렇게 어두워진 거리를 다시 한번 걸어본 후 지하철역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은 분명히 꽤 멀었는데, 이상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내가 사는 동네에 도착하니,


이곳은 또 이렇게 조용하기만 하다.



'하늘엔 천당이 있고, 땅 위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고 중국의 옛 시인은 말했다지만, 사실 이 도시는 결코 지상낙원과 닮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곳에서 같이 점심 먹을 친구 하나 없는 혼자이고, 주 6일을 일하고 있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집에 있는 동안에도 종종 일을 해야만 한다. 공기는 맑지 않고, 집 안은 추우며, 사람들과 의사소통은 거의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분명, 살면서 또 종종 많은 것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겠지만,


그럴 때마다 오늘처럼 내가 이곳으로 왜 떠나오기로 했는지 기억해냈으면 좋겠다. 먼지가 가득하고, 소음은 끊이지 않고, 사람들은 나를 밀치고 지나가도, 여전히 이곳은 아름다운 ‘이국’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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