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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May 14. 2018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2018년 5월 14일, 서른 번째 날


당분간 이곳에서 살 예정이니까, 당연히 은행 계좌를 열어야 했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 있는 중국의 '건설은행'을 찾아가 보았지만, 외국인에게는 계좌를 열어주는 업무를 해주지 않는다며 퇴짜를 맞았다. 대신,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건설은행에서는 외국인 업무도 취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곳을 찾아갔으나, 그곳엔 아주 간단하게라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어서 이번에도 실패. 이러다가는 월급날이 되어도 월급을 못 받게 생겼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뭐든 문제가 생기면 구글에게 물어보는 게 최선이니까, 결국 이번에도 구글링을 시작했다. 그러자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은 나에게 썩 괜찮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러니까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과 같은 우리나라 은행이 중국에 진출해 있고, 쑤저우에도 그 지점이 있다는 것.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내 


'혹시 거기 영어나 한국어 할 줄 아는 직원 있나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곧 반가운 한국어가 들려왔다. 


"여기 오시려면 택시를 타고 Suzhou Zhongxin Office A로 가자고 하세요. 그럼 기사들이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난 문제는 그렇게 해결된 줄 알았다. 이제 택시를 타고 우리은행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순진하게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내가 탄 택시의 기사는 나를 Office A가 아니라 Office C앞에 버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Office A까지 가는 길은 얼마나 험난했는지. 


경비원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Office A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난 영어 못해!"


라며 휘휘 손을 내젓고는 도망가 버렸다. 저기요, 그냥 듣다 보면 내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다니까요! 나도 방금 댁이 한 말을 나도 모르게 알아 들었단 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사정을 하기도 전에 이미 두 명이나 다 내게서 도망가 버렸고, 믿었던 구글맵마저도 왠지 계속 미묘하게 잘못된 위치를 알려주어서, 분명 근처 어딘가에 '우리은행'이 있긴 한 것 같은데 거기가 정확하게 어딘지는 알 수 없는 상태로 한 20분쯤을 더 헤맸다. 


아, 진짜 출근해야 하는데. 대체 은행 하나 찾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람.  





순간 막막해져서 나는 잠시 대로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주위에 은행이 많았는데, 어쩐지 우리은행으로 보이는 은행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떡하나, 다른 날 다시 와야 하나, 이렇게 헛걸음을 하는 건 싫은데, 하고 생각할 때쯤 갑자기 내 앞을 쓰윽 지나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30~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네 명. 넷 다 양복바지에 흰 와이셔츠. 어느 회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목에 건 사원증. 갓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인지 저마다 손에 든 커피. 그러자 순간, 그들에게 길을 물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영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도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있잖아. 나 좀 도와줄래?"

"응?"

"혹시 근처에 우리은행 어딘지 알아? 한국 은행인데 말이야."

"아, 잠깐만, 난 영어 못하고, 쟤, 쟤한테 물어봐."


그리고는 자신들의 무리 중 한 명을 내 옆으로 불러왔다.  

 

"너 어디 찾는데?"

"여기, 우리은행."

"음,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 너 그 은행 중국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잘 모르겠어."

"잠깐만, 내가 검색해 볼게."


그러더니 남자가 역시 구글을 켜서 뭐라 뭐라 중국어로 검색을 하더니 '우리은행'이 중국어로는 '욜리인항'인 걸 알려주었고


"다음부터는 물어볼 때 욜리인항이라고 물어봐."


라고 당부도 해주었고


"한국에서 왔니?"

"응."

"여기서 사는 거야?"

"응."


이라고 신기하단 눈빛도 보였다가, 


"나도 그 은행은 가본 적은 없는데, 지도 보니까 저기 보이는 저 건물에 있는 것 같아. 어딘지 알겠어? 여기서 제일 가까운 저 빌딩."

"응."


이라고  내가 이해했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하더니


"잘 가."


라고 친절하게 인사도 해주었다.


음, 그러니까 세상에 '친절'이란 게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사실 구글맵이 계속 이상하게 위치를 알려주어서 또 잠깐 헤매기도 했지만, 끝까지 남자의 말을 믿고 그가 손짓으로 알려준 건물로 찾아가자, 그곳이 정말 Office A였고,


건물로 들어가 '저 은행 찾아왔어요.'라고 하자, '우리은행을 찾아온 한국인'이라는 너무 뻔한 경우인 것인지 어느 은행을 가는지 묻지도 않고 그냥 나를 엘리베이터에 태워주었다. 몇 층이라고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수많은 엘리베이터 중 한 곳에 태워만 주었고, 그 안에 얌전히 서 있다가 문이 땡- 하고 열리기에 나가보니 그곳에 우리은행이 있었다.






아, 반갑다. 우리은행아.



이곳에서 업무를 보는 직원들은 대부분 조선족 출신인 듯했다. 은행 앞에 서계시던 아저씨는 한국어를 못하셨지만(내가 계좌를 개설하는 동안, 왠지 믹스 커피를 직접 타서 쓰윽- 가져다주고 가셨다. 더웠지만, 고마워서 기분 좋게 마셨다.), 창구 안 여직원들은 조금 어색하긴 해도 다들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드디어 내가 이곳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앞으로 여기서 받은 월급을 내 한국 통장에 넣어두고 싶어서 '한국으로의 송금' 방법을 물어봤더니- 


이곳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이 아니면 송금은 불가능하고, 직장인이면 여기 적힌 서류를 가지고 와야 한다며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네줬는데 거기 적힌 서류만 무려 아홉 가지였다. 


아니, 내가 무슨 천억 돈을 송금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냥 내 월급 내 통장에 보내겠다는 건데. 


그래서 과연 이것이 진짜인가 싶어 구글링을 해보니, 중국은 자국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엄격하게 통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로 송금하는 것이 무척이나 까다롭다고. 그러니까 아홉 가지 서류를 다 준비해서, 한국계 은행인 우리은행에 찾아와도, 송금하는 데 짧으면 30분, 길면 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내 통장으로의 송금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 수고를 하느니 내가 그냥 한국에 들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드디어 계좌를 열고, 다시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니 출근 시간 3분 전에 회사에 도착했다. 험난한 아침이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험난함을 마주치게 될 것을 예상한 아침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 곳 중국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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