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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Jun 19. 2018

나를 살린 건, 8할이 망고

2018년 6월 19일, 예순여섯 번째 날 


중국에 온 이후 얼마간, 심각하게 입맛이 없었다. 먹는 것에 썩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살면서 '입맛 없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먹고 싶은 게 싹 사라지더니, 나중엔 배가 고파도 먹기가 싫어졌고, 그러다 더 나중에는 뭔가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뭘 저렇게들 열심히 먹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할 때마다 '단이 씨는 늘 매가리가 없어 보여요.'라고, 미나 씨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 그래서 일부러, 문 열고 들어설 때마다 밝은 척 인사를 해보아도 뭘 제대로 먹질 않고 다니니 힘이 날 리 만무했다.




그러다 어느 금요일,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빙빙 도는 세상을 마주치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사실 웬만한 사람 몸에는 한 며칠 굶어도 될 만큼의 여분의 지방이 있어, 좀 굶는다고 죽지 않아, 뭐 그런 생각으로 버텼는데. 이렇게 안 먹고 돌아다니다가는 죽지는 않더라도, 쓰러질 순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입맛이 없더라도 뭔가를 좀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과일 가게에 들렀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들르는 후판 광장에는 건물 1층에 시장이 들어서 있는데, 그곳에 과일 파는 가게가 꽤 여럿이 있다. 그중 한 곳에 들러, 뭘 살까 고민을 하다가 샛노란 색이 좀 다정해 뵈는 망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 그 망고를 깎아 먹는 순간, 


정말이지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에 '꿀맛'이란 표현은 정말 망고를 위해 생겨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달까. 




이런 게 바로 '꿀맛'이구나, 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옐로 망고(Yellow Mango)'



그렇게 나는 앉은자리에서 작은 망고 두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후, 하루가 멀다 하고 망고를 사다 나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거의 매일, 과일 가게에 들렀고 그렇게 며칠 이런저런 종류의 망고를 맛보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했던 입맛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젠 다시, 배가 안 고파도 먹는 '보통의 인간'이 되어서 열심히 중국의 과일들을 탐방 중이다. 



옐로 망고와는 또 다른 느낌의 '그린 망고(Green Mango)' 


어떤 망고는 이렇게, 한끼 식사로도 손색 없을 만큼 그 크기가 크다.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던 리쯔


새콤달콤 복숭아


다양한 크기의 수박들


신기하게도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사 먹어 보는 게 은근한 재미가 되었다. 때로는 실패를 했고, 또 때로는 성공을 했지만, 어쨌든 다양한 과일 가게에 들러, 다양한 과일을 사 오면서, 이번 과일은 또 어떤 맛일까- 하는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 발견한 것은, 바로 이 두리안. 



과일의 황제라 불리는 '두리안'


한국에도 이 두리안이 있기는 있다고 하는데, 먹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그 냄새 때문에, 우웩- 하고 고개를 돌리게 되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맛을 잊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 번은 맛을 보고 싶었다. 그런 두리안을 집 앞 과일 가게에서 발견하긴 했는데, 저 큰 걸 사 와서 손질할 용기도 안 나고 또 다 먹을 용기도 안 나서 고민을 하던 차에 


맛있든 맛없든 한 번 먹어는 보자고 집어든 순간부터, 코끝을 확 찌르는 냄새 때문에 다시 내려 놓을 뻔 했던 두리안. 


이렇게 냉동 코너에서 팔고 있는 두리안을 발견하고는 얼른 집어 왔다. 


이걸 냉장고에 넣어둔 후, 출근을 했다 집에 돌아오니,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두리안 냄새가 났다. 저 조그만 녀석이 이렇게 강렬한 냄새를 내뿜는단 말인가 싶어, 냉장고를 열었더니 그 안은 어느새 두리안 냄새에 점령당해 있었다. 더 큰일 나기 전에 두리안을 꺼내서, 랩을 벗겨서, 한 입 입에 쏙 넣으니-


처음엔 그 맛이 조금 역했는데, 두세 젓가락 먹어 보니 확실히 맛은 있었다. 뭐랄까. 이 녀석의 어떤 맛이 그토록 매력적인 건지 알 것 같긴 했달까. 


하지만 나는 그 냄새를 아직은 이겨낼 수 없어서, 이 한 번으로 두리안과의 인연은 끝냈다. 사실 굳이 두리안을 먹지 않아도 먹을 과일이 너무 많기도 했고.



그 모양이 하도 요란스러워서 사 먹어 본 '용과(Dragon Fruit)'


속을 잘라보니 이렇게 생겼다. 생긴 것에 비해서 그 맛은 너무 싱거워서 하나만 사온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다음 만난 과일이 바로, 망고와 함께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미과이다. 



"전 하미과를 먹을 때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게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해요."


라는 내 말에, 물론 우리 회사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하셨다.


"아, 전 여름 되면 포도랑 딸기만 먹고살아서요."


라면서.


여행 좋아하는 건 비슷해도, 과일 취향은 반대인가 보다. 과일은 대체로 좋지만, 그래도 굳이 호불호를 가리자면 난 신맛 나는 과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수분 많고 달짝지근한 과일이 좋다. 배, 참외, 망고, 그리고 하미과 같은.


예전에 잠깐 중국에서 지낼 때도, 내가 가장 사랑한 건 하미과였다. 그때는 친언니네 집에서 머물렀는데, 언니와 나는 이 하미과 맛에 푹 빠져서 매일매일 하미과 한 통씩을 잘라먹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정말로 설탕물에 절여둔 것 같이 달디단 하미과를 만났지만, 또 어떤 때는 아무 맛도 안 나는, 맹맹한 무 같은 하미과를 만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그 사이 과일 보는 눈이 조금 나아져서, 무 같은 하미과는 사 오는 일이 없다. 아주 달거나 조금 덜 달거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참외가 멜론의 '변종'이라면, 하미과는 멜론의 한 '품종'이다. 그러니까 난 어쩌면 결국 '멜론'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하지만, 다른 멜론은 하미과만큼은 맛있지 않다. 이 하미과를 한 통 사두면 사흘 이상 가는 날이 없다. 사실 과일은 많이 사두고 천천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시장 나들이라는 더 자주 하게 되고, 과일 시장에 자주 가다 보니 더 자주 사 오게 되고, 자주 사 오다 보니 더 자주 먹게 되어서 요즘 난 의도치 않게 거의 Fruitarian처럼 살고 있다. 물론 커피를 끊지 못해, Fruitarian이 되고 싶어도 되지는 않겠지만. 




나름 열심히 과일 탐방 중이지만 여전히 먹어 보지 못한 것이 많다. 파파야, 망고스틴, 베이징과 등등등. 아직까지 중국에서 사는 걸 그다지 즐기지는 않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보다 더 다양한 과일을, 덜 부담스레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좋다. 그리고 이 즐거움과 함께 내가 중국에서 잘 살아남는다면 나중에-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내가 중국에 처음 와서 힘들었을 때, 그래서 빙빙 도는 세상을 마주쳐야 했을 때, 나를 다시 힘낼 수 있게끔 도와준 건 8할이 망고였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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