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8일, 여든다섯 번째 날
6월 29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무슨 일일까? 물이 나오지 않는다. 졸졸졸졸- 나올 듯 말 듯 하던 물이 결국은 나오지 않은 채로 끊겨 버리자, 순간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음, 그러니까, 이것은 '단수'이다.
욕실을 나와 주방으로 가보지만, 그곳에서도 물을 틀자 수도관 안에서 드르르릉- 하고 요란한 소리만 날 뿐 물이 나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제야 전날 저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 핑크색 종이 한 장이 거울에 붙어 있던 것이 생각난다. 어차피 못 읽는 글이니까, 읽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냐는 생각으로 읽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것이 단수를 공지했던 글인가 보다.
'사진으로 찍어서 미나쌤한테 물어볼 걸.'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어쨌든 후회는 후회일 뿐이다. 멍한 채로 앉아서, 어떡하나 고민을 하다가가 혹시나 하고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어쩌면 머리를 감지 않고도 출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하지만 어릴 땐 하루에 머리를 두 번씩 감아대던 이가 나이다. 깔끔을 떨어서라기보다는 윤기라는 게 지나치게 넘쳐 하루만 머리를 안 감아도 떡진 머리가 되고 마는 머리카락을 타고난 탓이다.
어쨌든 머리를 감긴 감아야겠구나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수가 딱 한 통 있다. 세수 한 번 하고 나면 끝일 물이다. 귀찮은 마음에 망설이고 망설였지만, 이쯤 되면 방법이 없다. 결국 대충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옷을 걸치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생수를 사러 나섰다.
그러자 여전히 엘리베이터 안에 떡하니 붙어 있는 단수 통지. 조금만 유의해서 봤으면 대충은 이해했을 내용인데, 왜 쳐다도 안 보고 지나쳤을까- 생각해 보았자 소용은 없다. 적힌 것처럼 단수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될 예정이니까.
그렇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 8.5L치 물을 사 와서 머리를 감고 샤워까지 대충 한 후, 겨우 출근을 했다. 그리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라고, 회사 사람들에게 이 어이없는 일을 이야기해줬지만, 다들 별다른 반응은 없다. 역시, 나에게 특별한 대부분의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별 의미 없는 일. 그래도 난, 이 날 이후로 조심성이 생겨서 엘리베이터에 뭔가가 붙어 있으면 나름 주의를 기울여서 무슨 내용인지 읽으려고 애쓴다. 덕분에 내 중국어 실력도 조금은 더 빨리 좋아질지 모르니, 하루아침 고생한 것 치고는 꽤 괜찮은 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