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lda Aug 01. 2018

평강로,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2018년 7월 28일, 백다섯 번째 날

 


당일, 또는 1박 2일의 짧은 시간 동안 쑤저우를 둘러보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있다면 바로 산탕지에(山塘街. 산당가)와 핑장루(平江路. 평강로)일 것이다. 운치 있는 운하 거리 산탕지에와 핑장루는 수향 마을인 쑤저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 도시에 살러 온 나는, 쑤저우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난 후에야 산탕지에를 찾았고 그리고 또 그로부터 석 달이 더 지난 후에야 겨우 핑장루로 걸음을 향했다.

  

1호선 Xiangmen 역에서 내린 후 택시를 탔다. 역에서 15분쯤 걸으면 핑장루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7월 말의 쑤저우를 오후 4시에 걷는다는 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니까. 그런데 지도상으로 보면 분명 직진하면 되는 거리를 어쩐 일인지 택시 기사가 이리저리 빙빙 돌았다. 그 후에 우리를 내려준 곳은 핑장루가 시작하는 지점이 아니라 끝나는 지점. 그냥 쭉 갔으면 시작 지점에 우리를 내려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택시비를 더 받으려고 그랬다고 하기엔, 그러고도 기본요금이 나왔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핑장루를 거꾸로 돌아보게 되었다.





쑤저우가 너무 서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실망하던 친구는 핑장루에 도착한 후에야 ‘중국이다! 중국!’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덕분에 이 더위를 이겨내고 이곳까지 친구를 데려온 나도 보람을 느꼈고. 토요일 오후라, 사람이 많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핑장루는 한가롭기만 했다. '상탄지에보다는 핑장루가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니, 그 이유가 뭔지도 조금 알 것 같았다.




홍등이 이뻐서 만져보는 중.



핑장루는 산탕지에보다 훨씬 긴 거리이다. 체감상 꽤 길게 느껴져서 집에 와 찾아보니, 산탕지에는 0.35km, 핑장루는 1.6km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관광객들로 가득 차 걸음을 옮기기 힘든 산탕지에와 달리, 핑장루는 훨씬 더 걷기 좋고 구경하기도 편하다.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 놓은 상점들이 많아서 눈이 즐겁고, 여기저기 군것질거리들을 팔고 있어서 입도 즐겁다.





핑장루는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이지만, 그 거리의 좌우로, 곁가지로 뻗어 있는 골목들도 보기 좋다. 관광객을 위하여 꾸며진 거리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바로 이런 골목들을 통해서 깨닫는다.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는 빨래들.


그렇게 핑장루를 절반쯤 걸었을 때 목이 말랐고, 그러자 갑자기 차가운 아메리카노가 너무나 간절해졌다. 모미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었기에 참으려고 했지만, 우리가 핑장루가 끝나는 지점에서 거꾸로 올라온 터라 이 거리의 시작 지점에 있는 모미 카페까지 가기에는 남은 길이 길었고 그래서 우리는 결국 중간쯤 옆으로 빠져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꽤 예쁘게 잘 꾸며진 카페였는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나는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아마도 '아메리카노'만 알아듣고 '아이스'는 알아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몇 분 후에 주문을 받았던 이가 다시 오더니 '뜨거운 거? 아니면 차가운 거?'하고 중국어로 물었다. 그래서 '차가운 거'하고 대답해주자 알았다며 가더니-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후에 겨우 커피 한 잔을 들고 왔는데, 그 커피에는 아이스가 없었고 입을 대보니 컵만 차갑고 정작 커피는 미지근했다. 이게 뭐야, 싶어 그 커피를 들고 다시 카운터로 가 '우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어/'하고 말하자, 또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그로부터 20분 동안 또 감감무소식이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다시 일어서려는데, 그제야  또 아메리카노를 한 잔만 들고 오는 남자가 보였다. 그렇지만 그 아메리카노에도 얼음 따윈 없었고, 처음보다 조금 더 시원해지긴 했지만 그 맛이 미지근한 건 여전했다.


그러니까, 아메리카노에 얼음만 넣으면 된다니까!


라고, 나와 친구는 괴로워했지만, 곧 '중국인들은 얼음을 즐겨 먹지 않는지도 몰라', '내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맥주를 시켰더니 뜨거운 걸 가져다줬어.', '어쩌면 이 카페에는 얼음이 없는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뭔지 아예 모르는 건지도 모르지.' 등등의 이야기로 중국에 왔으니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결국 그 커피는 한 모금만 마신 채 그대로 남겨 두고 나왔다.


 



그리고 너무 안타깝게도, 그 카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모미 카페. 분위기가 정말 너무 좋아서 한눈에 반해버렸다. 카운터 쪽이 정말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일하던 스태프들이 계속 사진에 같이 찍혀서 올리는 것은 포기.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집 내 책상도 그런 식으로 꾸미고 싶다는 것 정도이다.  





여기에 편지를 넣어두면 일 년 후에 보내준다고 한다. 그런데 난 일 년 후에도 중국에 있을지 아닐지 확실히 몰라서 편지를 쓰지 않고 그냥 나왔다.





카운터 앞에 진열되어 있던 커피들.



이 거리를 걷는 그 누구도 그냥은 지나칠 수 없게끔, 어여쁘게 꾸며진 모미 카페.



그렇게 모미 카페를 지나고 나면 스타벅스가 나오고 그곳이 바로 핑장루의 시작 지점이다. 두어 시간에 걸쳐 핑자루를 한 번 쭉 걸어본 우리는 이곳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산탕지에로 옮겨 갈 것인지 잠깐 고민을 했다. 산탕지에 가면 좀 더 반짝거리는 야경을 볼 수 있을 테지만, 친구와 나는 핑장루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이 거리에 해가 지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간 고민을 하던 우리는 결국 운하 옆에 자리한 바에서 맥주 한 잔 하자던 계획을 포기하고 (산탕지에에는 운하를 따라 쭉 바가 늘어서 있는데, 핑장루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곁가지로 뻗은 골목으로 들어와 찾아낸 카페. 안주거리는 없었지만, 그리고 메뉴에 있던, 나의 편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맥주인 파울라너와 크로넨버그가 실제로는 둘 다 없었지만, 그래서 결국 제3의 선택으로 코로나를 마셔야만 했지만, 그래도 이 카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조용하고 친절했던 곳. 맥주를 다 마시고 나자, 어느새 카페 안이 텅 비었다.





그래서 우리도 일어서 카페를 나오니, 어느새 핑장루엔 해가 져 있었다. 아주 많은 홍등이 걸려 있진 않아서, 그리 화려한 야경을 뽐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핑장루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그대로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대충 거리에 걸터앉아 내가 지금 중국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를 들었다.





반짝반짝 나름대로의 빛을 내고 있는 핑장루. 이 소박한 아름다움이 은근 마음에 든다.





어느 곳이 좋다 나쁘다 말을 하긴 어렵다. 나는 북적거리는 산탕지에에서도 즐거웠고, 화려하지 않은 핑장루에서도 많이 웃었으니까. 그러니 둘 중 한 곳만 선택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만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쑤저우를 너무 빨리 지나치진 말라는 것과. 이 평화로운 도시엔 은근 사랑스러운 곳이 꽤 많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석 달 반 만에 찾은 핑장루와 안녕했다. 언제 다시 찾아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이렇게 평화로운 핑자루를 만났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