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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 만난 물개 Mar 02. 2021

#4. 퇴사 선언

팀장님, 저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팀장님, 저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사직서는 금일 오후에 제출할 예정이니, 결재 부탁드립니다."


지난주에 나는 드디어 퇴사를 선언했다.
퇴사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팀장님은

 몇 차례고 되물으셨다.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다니던 막내가

난데없이 그만둔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셨던 모양이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팀 업무가 적성에 안 맞는지',
'다른 팀으로 옮겨볼 생각은 없는지' 등

여러 제안들을 하며 설득하셨다.

그런 팀장님께 나는 '더 넓은 세계를 알게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우물에서 살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세계를 무대로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고 지금부터라도 그 일에 뛰어들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이며, 그 일을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기 때문에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말씀드렸다.

이 말을 들은 팀장님은

내 결심을 돌이킬 수 없단 걸 깨달으신 듯,
퇴사 절차에 관해서는 인사팀에 이야기해서 안내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셨다.

신기하게도 이런 말을 한 사람들 대부분은 내 퇴사 이유 중 일부를 만들어준 '올드 타입'들이었다.


퇴사를 선언하고 며칠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말이었다.
'조금만 더 다녀보지 그러냐'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들으면서 이 말이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이런 말을 한 사람들 대부분은

내 퇴사 이유 중 일부를 만들어준

'올드 타입'들이었다.

겉보기에는 나를 걱정해주는 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엔 조직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허울 좋은 말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유종의 미'라는 말은 잘 포장되었지만
결국 일꾼 한 명이 빠짐으로써

다른 조직원에게 가중되는 업무의 양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조직을 위해 헌신하라는 말을 뜻한다.

'조금 더 다녀봐라'는 말도

 나를 걱정해주는 듯하지만,
조금만 더 조직에 남아있게 한다면

회사를 떠날 시기를 놓치고
평생 남아있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20대 후반이란 나이에는 잠깐 사이에
여러 가지 책임질 일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쉽사리 그만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한때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으나
조금씩 결정을 미루다가 떠날 시기를 놓치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면

 안정적인 회사의 울타리를

포기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결국 내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최적의 순간에 내린 최고의 결정을
놓치게 하고 조직에 충성하는 일꾼으로

남아있게 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속삭임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러한 속임수에

속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고
이에 흔들릴 정도로 가벼운 결심도 아니었다.


만족스럽지 않았던 직장생활이었지만
이처럼 좋은 분들과 함께 한 건 멋진 기억이었다.


물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며

붙잡는 분들도 계셨다.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과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그 이유였다.
이분들에게는 오히려 이 위기의 상황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과
내가 느낀 조직생활의 단점을

압축해서 말씀드렸다.

내 생각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시장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호황을 맞는 분야도 존재한다.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확실히 드러나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바이러스가 종식되었을 때,

그 기회를 잡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한다.

또한, 회사라는 조직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나를 방어해주는 만큼
내 행동과 시도, 성공에 제약을 건다.
나는 조직이 만들어내는

이 '유리천장' 또는 '목줄'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조직사회에서는

내가 더 높이 뛰어오를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비단 내가 다니던 회사뿐만 아니라,

관료제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날 생각해주시던 분들은

이 말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고,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 앞날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셨다.
만족스럽지 않았던 직장생활이었지만
이처럼 좋은 분들과 함께 한 건 멋진 기억이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퇴사 선언 후

 짧은 시간만에 많은 게 바뀌었다.
회사는 차장, 부장급들의 리더십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고
원급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나감으로써 위기의식을 불어넣어줘야지만
움직인단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나의 퇴사가 방아쇠로 작용하여

이 정도의 변화가 생겼다는 게 신기하긴 하다.

회사라는 조직의 최대 단점은

현실에 지나치게 안주한다는 점인 것 같다.
위기가 눈 앞에 닥치기 전까지도 방치하다가 뒤늦게 움직이는 것.
사실 이 정도만 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간혹, 닥친 위기에 대처할 능력도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도 있으니.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업무전화가 더 이상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의 분위기를 걱정한 팀장님이
가능하면 퇴사한다는 소문이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셨기에,
딱히 내가 퇴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소문은 저 멀리 뻗어 나간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에게 업무 연락은 하지 않았고
커피 한잔 하자는 전화만 무수히 걸려왔다





아무튼 퇴사를 선언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2021년 1월을 목표로 하던 퇴사였지만,
어쩌다 보니 2개월 늦은 3월에서야

겨우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2021년 3월,

나는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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