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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 만난 물개 Jan 12. 2022

#11. 꼬인 매듭 풀기

사업가를 원하지 않는 사회


퇴사하고 나니 알게 된 

조금 불편한 사실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회사의 울타리는 생각보다 넓은 영역까지 닿아 있었다는 것.

둘째, 이 사회는 근로자를 원한다는 것.



사업가가 되겠다며 용감하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지만, 

현실의 나는 그저 밥값도 못하고 있는 무일푼 철부지일 뿐이었다.

보다 나은 5년 후,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10년 후의 

모습을 꿈꾸며 각본에서 벗어난 삶을 선택했지만,

홀로 사회에 내던져진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다름 아닌 회사라는 울타리의 '거대함'과 '안락함' 이였다.

사회에서 왜 이 길을 안전하다고 규정해 놓았는지 자연히 알 수 있던 순간이었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떠나고 나니, 가장 먼저 전세금 마련에 경고등이 켜졌다.

회사 기숙사를 떠나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알아봤지만, 

실업상태가 된 나에게 빌려줄 수 있는 돈은 없는듯했다.

월세방으로 들어가기에는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의 부담이 컸기에, 하는 수 없이 아버지의 신용에 기대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은행에서 빌려 잠시 묶어둔 돈에 불과한 전세자금이 재산으로 산정되어, 건강보험료가 대폭 상승한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고정비를 줄이고자 아버지 도움까지 받아 전셋집을 구한 건데, 건강보험료와 관리비, 공과금으로 오히려 월세보다 많은 돈이 줄줄 세어나가는 판국이 되어버렸으니..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 변화는 더 큰 위기처럼 느껴졌다. 

대처가 필요했다.  


이 뿐만 아니라 사소한 문제가 몇 가지 더 있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건 신용카드 발급 문제.

회사의 울타리 내에 있을 때에는 사내 전화로 재직 여부 확인 후 바로 발급이 가능했었다면, 이제는 통장 잔고 또는 본인 명의의 보험 납부를 증명하여야 하는 등 회사의 보호를 받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확인 절차가 요구되었다.

큰 어려움은 아니었지만, 절차가 복잡해졌다는 것에서 오는 이질감은 어쩔 수 없었다.



회사를 떠나 집단 밖의 사람이 되어보니 명확하게 느낀 게 있다.

우리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근로자로 남아있기를 원한다는 것.

사회의 시스템 대부분이 근로자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업가 지망생이 설 자리는 이 사회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없는 자리를 어떻게든 비집고 일어나려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우리 사회는 사업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교 교육은 우직한 근로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고, 사회 제도는 근로자를 기준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이는 곧,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매우 불편하게 디자인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기차가 움직일 길을 사전에 깔아 두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노동자로 이끌어갔다.

특히 나처럼 자본 없이 뛰어든 사람들은 특히나 더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디지털노마드', '지식창업'은 형체가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내가 움켜잡을 최소한의 방패도 존재하지 않았다.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러 변화가 눈앞에 불쑥불쑥 나타나 적잖이 당황스러운 요즘.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한걸음 한걸음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중이다.

거친 파도를 넘어 항해하는 것처럼, 위태롭지만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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