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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 만난 물개 Jan 07. 2022

#10. 생계유지라는 작은 허들


"그럼 이제 뭐 먹고살려고??"


아마 내가 퇴사를 하고 난 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인 것 같다.

아니, 퇴사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듣기 시작했으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들은 말이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어찌 보면 내가 운이 좋아

배부르게 살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사정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방법이 없으니.

하지만, 나처럼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가정형편으로

적당하게 벌어 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생계유지에 대한 이 정도의 부담감은

사실 과한 걱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유튜버 '신사임당' 님의 책

'킵 고잉'에서 읽은 말이 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망해도 괜찮을 만큼만 투자하고 시도해보자.

투자금액을 늘려 인생을 '올인'하는 게 아니라

작은 시도지만 횟수를 늘려

성공확률을 높이는 거다.

그렇게 해야 망해도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망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내 인생에 그다지 심각한 타격이 오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계획을 행동에 옮길 때 머뭇거리지 않고, 시도에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말이 딱 내 생각과 똑같았다.

퇴사, 아마 내 주위의 직장인 친구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아무리 모른 척하려 해도

우리의 무의식은 이미 느끼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나와 내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다름 아닌

"회사 나오면 뭐해먹고 사나...",

"내 인생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 아닌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 세상에 고작 회사 하나 그만두었다고, 옛말처럼 길거리에 나앉고

모든 가족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망해버리고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도박이나 뭐 그런 류의 불법적인 행위를

한다면야 상황이 다르겠지만,

회사를 나와 여러분의 소중한 인생을

재설계하는 용기 있는 과정에서는

여러분의 상상 속 걱정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허구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기껏해야 잘못된 방향에서 헤매다 모아둔 자금과 시간을 조금 허비한 정도의 타격일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경험과 인사이트는

여러분의 다음번 시도를

더욱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게 만들어 줄

힘이 될 것이다.

정말 운이 좋지 않아

속된 말로 인생이 정말 '나락'까지 간다고 해도,

최저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만 성실히 해도

달에 150 이상은 받으며 생계는 유지할 수 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해볼까?

인생이 아무리 망한다고 해도,

단지 매달 넣던 적금을 넣지 못하게 될 뿐이다.

기존 직장에서는 당연하게 모아 오던

적금을 모으지 못해,

미래의 어떤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와 안정감이 없어진다는 것뿐.

이것 외에는 사실 크게 다를 것 없는 삶이다.

사실 그 적금이란 것도

매달 얼마씩 넣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든든한 안정감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삶을 살아보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던 것보다

실패라는 것이

참혹하고 끔찍하진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목표는 한 가지였다.

회사 없이도 나 스스로 현금 흐름을 만드는 능력을 키우고 싶었다.

이처럼 떠날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나는 입사 날부터 이에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퇴사를 하기 위해 자동차를 사지 않았다.

사회초년생들이 회사에 볼모 잡히는

가장 큰 요인이 자동차 할부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라고 신형 자동차를 사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미래의 내 도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소비를 조절했다.

아버지가 폐차하려고 하시던

주행거리 26만 km의 자동차를 받아와서 출퇴근용으로 사용하였고,

그 결과 월급의 70% 가까이를 저축할 수 있었다.

추후 수입이 없어진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 결과 나는 계획한 대로 퇴사를 하고,

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안감보다는 계획과 성취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안정감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에서 잘 느껴왔다.

한 꺼풀만 벗겨내도 그 부실한 지지기반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을.

그렇기에 안정감과 불안이란 감정에 속아,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최근에 유튜브를 보다가

여행 유튜버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구독자 10만 명에 임박한

유튜버였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취준생의 싱숭생숭한 그 감정을

나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안타깝고 응원하고 싶었지만,

만약 내가 그분의 가까운 친구였다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뜯어말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도 얼마 되지 않아

나올게 뻔하니, 평범한 사람들이 가는 길에

끼워 맞추려고 선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 가고 있는 길로

더 힘차게 나아가는데 시간을 쓰라고"

주제넘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나 조차도

정해진 길 밖의 세상을 꿈꾸기 시작하자,

일상적이었던 그 길에

더 이상 발을 딛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 위에서는 단 한순간도 버틸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구독자 10만을 바라보는 유튜버가

회사에 새로 입사한다?

내 생각에 그건 정말 후회가 남을 가능성이 큰 결정인 것처럼 보였다.

흔히 말하는 '현타'가 아마 입사 첫날부터

올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준비가 또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것도 아니기에...

시험 점수처럼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주제넘지만 구독자 중 한 명의 마음으로,

그 귀중한 시간을 본인의 사업을 위한

더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란 생각을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분의 유튜브는

현재 20만을 넘도록 폭풍 성장했고,

이제는 전업 유튜버로 살아갈 계획을 세우신 건지

지금은 해외에 나가서

여행 콘텐츠를 올리고 계셨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괜찮은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하며 먼발치에서 그분의 승리를 응원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렇게 담담하게 말해왔지만, 사실 나에게도 생계유지라는 작은 허들이 나타났었다.

갑자기 수입이 사라졌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을 리가 없었다.

생각했던 계획들을 3주가량 열심히 수행하다 보니 생계유지라는 허들이 느껴졌다.

'아, 이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지금처럼은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과 내 계획을 병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대신 일을 구할 때 아래의 조건을 염두에 두었다.


  1. 업무강도가 낮아 퇴근 후에도 체력적인 부담이 없을 것

  2. 추후 도움이 될 만한 고소득 스킬을 배울 수 있을 것


급여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우선 이력서를 넣어보았다.

이력서는 물론 '사람인 간편 지원'으로 이력서 작성에 쓰이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놀라운 게 뭐였을까?

일을 구하려고 마음먹고 나니

한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썩 괜찮은 일자리가 바로 구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빨리 구하고 싶진 않았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라

바로 일을 시작하는 걸로 했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퇴사해도 일자리 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

앞서 이야기했듯이

여러분 마음속의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내어도 괜찮다는 것.


물론 급여적인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짧은 근무시간에

세후 240 정도 받는 일이었으니

썩 괜찮은 조건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이전의 빡빡한 근무환경에

야근까지 해가면서 300을 받던 회사보다

100배는 좋은 근무조건이었다.

오랜 시간 의탁할 회사를 고르는 게 아닌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적당한 수입을 위한 일자리를 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출근해보니, 이 일자리...

생각보다 너무 꿀이었다.

꿀 중에 이런 꿀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죽하면 독기를 품고 회사를 뛰쳐나온 내가

"이만하면 계속 다녀도 편하고 괜찮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쉬운 업무난이도에 자유롭고 짧은 근무시간, 야근이란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 전 회사에서 착취란 착취는 다 당하다 보니,

이건 정말 파라다이스라고 할 만큼 좋아 보였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도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나 자신을 다잡았다.

기억하려 애썼다.

나는 일이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게 아니란 것을.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회사의 품에서 뛰어나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려 애썼다.

갈길이 멀다는 것을.

내 배는 이 정도에 안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가슴속 깊이 세기며

퇴근 후 소중한 한걸음 한걸음을

움직여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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