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아이브와 에스파만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교실 노래방 신청곡 쪽지에서는 8090의 향취가 진하게 묻어 나온다. 나조차도 가물가물한 지오디, 버즈, 유재하, 코요태의 노래가 단연코 13년생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적어낸 곡이 맞는가.
버즈의 명곡,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반주를 틀었더니 자신 있게 칠판 앞으로 걸어 나온 녀석, 음정과 박자가 놀랍도록 정확하다. 어디가 하이라이트인지 아는 표정, 절묘한 애드리브,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이 한두 번 불러본 솜씨가 아닌데.. 너 사실 열두 살이 아니라 마흔두 살이지?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삼키고 돌려 돌려 말을 건넨다.
"지후야, 너 이 노래.. 왜 이렇게 잘 불러?"
"선생님! 이 노래요~ 우리 아빠가 노래방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한껏 질러버린 성대가 따가운지 컥컥거리며 말하는 지후의 얼굴은 너무나도 열두 살짜리다. 그 위로 얼굴도 모르는 지후 아빠의 모습이 겹쳐진다. 지후와 지후 아빠가 캄캄한 노래방에서 버즈의 락을 함께 부르는 모습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상상되고..
어떤 아이들의 취향은 부모로부터 넌지시 복사되어 나온다. 선뜻 보여주는 당신들의 기호, 함께 보내는 시간들, 그 속에서 부모의 취향을 천천히 닮아가는 아이. 한 가족이 쌓아왔을 소중한 추억들이 교실 노래방에서 빼꼼 모습을 드러낸다.
교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데칼코마니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