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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행진 06화

밥과 반찬

by 민들레

오늘도 아침을 차린다.

다섯 가지 색깔이 다른 채소와 abc주스, 삶은 계란, 요거트...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거 같은데,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꼭 밥이랑 국을 찾는다.

아침 국은 꼭 맑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집 국룰이다.

김치도 하얗게 씻어야 한다.

까다롭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어보면 다 좋다고 하면서, 국이 빨가면 밀어내고 김치는 컵에 하나씩 씻어 먹는다.

이걸 보고 있느니… 김치는 아예 씻어놓고, 하얀 국을 끓이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남편은 마른 체질이다.

운동도 선수처럼 했었다.

그리고 소식을 한다. 식탐이 제로다.

배고프지 않으면 안 먹고, 명절 때나 어쩌다 과식을 하면 혼자 살짝 나가 옷이 흠뻑 젖도록 뛰고 온다.

내가 체질이 저러면 먹방을 찍고 싶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나?

살찔 걱정 안 하고 정말 매일 먹방 찍고 싶다.

또, 외식도 싫어해서 난 항상 밥을 차리느라 바빴다.

그래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면 살이 좀 붙으려나 싶어 매일 고민하고, 매일 새로운 반찬과 국을 끓인다.


나는 모태 통통이다. 키도 크고 등빨도 좋다.

운동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 몸은 선수급 체형이다.

아무리 굶어도 별로 안 빠진다. 내가 찍은 최고의 몸무게는 58킬로. 이 몸무게를 만들려고 일주일에 삼일은 굶었다.

결혼하고 삼시세끼 먹고 애들 남긴 과자 부스러기 좀 먹었더니 밝힐 수 없는 몸무게가 나왔고, 말한 적도 없는 내 몸무게를 사람들은 아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남편은 언제나 내가 최고다. 이쁘단다. 뚱뚱했을 때도, 늙고 있는 지금도.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준다.

우린 이때까지 살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순탄하지 않았다.

순탄한 건 우리가 서로 사랑했다는 것, 뿐이었다.

결혼 초반엔 내가 다 내어 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야 했다면, 지금은 남편이 다 양보해 준다.

몇 가지 빼고는.


밥은 모든 것을 품는다.

어떤 종류의 반찬과 국을 만나도 스며들어, 어울리게 녹아든다. 자신의 맛과 색깔을 뒤로하고 반찬과 국이 돋보이고 빛나게 해 준다. 그러나 먹다 보면 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된다.

밥이 맛이 없으면 아무리 맛있는 반찬과 국 일지라도, 그 맛은 빛나지 않는다.

밥은 조연이지만 주연이 잘 살아나고 칭찬을 받도록 도와준다.

난 반찬보다, 밥이 되고 싶었다.

밥과 반찬 중 늘 반찬이 더 칭찬을 받지만 진짜 밥상의 주인공은 밥이다.

밥은 질리지 않는다. 매일 매번 먹어도, 늘 새롭다.

반찬에 따라서.


밥처럼 살았었다.

늘 있었지만, 별 존재 감 없이.

사실은 주인공이지만, 조연처럼.

때론 설익은 밥처럼 반찬의 맛까지 확 떨어뜨려 가면서, 그렇게 살았었다.

지금 반찬이 되고 싶냐고?

왜? 뭐 때문에? 노노.

난 밥이 좋다.

반찬 같은 김 씨들 빛나게 도와주는, 밥이 좋다.

어디든 어울리는 밥이 좋다.

걱정이 있다면, 나이가 드니 밥이 자꾸 마른다.

윤기도 떨어지고 구수한 맛도 줄어드는 것 같다.

전부 반찬이 되고 싶어 하는 세상이다.

더 튀려고 더 뽐내는 세상이다.

반찬이 짜면 밥을 한 술 더 먹는다.

밥은 순수하다.

쌀만 좋으면 맨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다 알 것이다.


내가 밥이어서 좋다.

다양한 반찬과 섞일 수 있어서 좋다.

세상에 빛과 소금은 못 되지만,

우리 아이들과 남편의 밥이어서, 행복하다.

우리 집 밥상에선 너희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보렴.

밥이 맛있게 준비되어 있으니 주저 말고 뽐내어라,

나의 소중한 반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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