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디졌노라’
내 묘비명이다.
난 기다림이 싫다.
성격이 급한 것도 있지만, 뭘 해도 느리고 오래 걸리는 김씨들이랑 살다 보니 기다림을 운명이려니 해야 된다. 화장실이 두 개 인 집에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매일 아침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나의 숙명이다.
도대체, 들어가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나오지를 않는다. 뭐 했냐고 물으면 “씻었지” 한다. 몰라서 묻냐고. 너무 오래 걸리니 묻는 거지.
어디 한 두가지랴.
그래서 나는 늘 기다린다.
기질이니 성격이니, 엄마는 그런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된다.
그런데 때론 기다림이 득이 될 때가 있다.
어딜 가나 서두르지 않는다. 나서지도 않는다.
안 하려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 30년 넘게 살다 보니 이런 식으로 프로그래밍이 됐나부다.
운전을 안정적으로 한다느니, 차분하다느니, 침착하게 일처리를 잘한다느니. 이런 말은 30년 전 김씨들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내가 들을 수 없는 말들 일 것이다.
김씨들은, 엄마는 뭘 해도 빨라서 좋아.
우리 와이프는 부지런해...
정말 자기들이 얼마나 느리고 오래 걸리는지 모르는 것일까?
내가 낳았지만 신기할 뿐이다.
요즘 나는, 또 다른 걸 기다린다.
조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행복하게 기다린다.
막내아들이 군대 제대하면 엄마 아빠랑 유럽 자유여행을 가잔다. 얼마 안 되는 병사 봉급으로 적금을 넣고 있단다. 한 달에 10만원 내외로 쓰면서 저축을 한단다.
가고 안 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생각해 주는 아들의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래서 행복하다.
이렇게 기다림이 즐거울 줄이야.
딸은 자기가 엄마 보험이라고 해주고, 큰아들은 공부시켜주고 키워 준 빚 갚는다고 아프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 남편은 집 사준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여전히 조금만. 그 조금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기다림이 행복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난 복이 터질 것 같아!
조금만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