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행진 04화

한 끗 차이

by 민들레

휴가 나온 막내아들이 좋아하는 냄비밥 따끈하게

지어 올리고, 장조림에 된장찌개에, 좋아하는 참치 김치볶음까지 부랴부랴 해서 아점을 차려준다.

준 만큼 다 먹어주면 좋으련만,

꼭 남긴다.

버리기도 다시 넣기도 애매하게 남긴다.

밥 한 숟가락 떠 와서 점심도 저녁도 아닌, 그렇다고 간식도 아닌 잔반처리를 시작한다.

이러니 내가 살이 찌지, 미련 없이 버리면 될 것을. 아까워 내 배속에 저장한다.

겨울잠 자는 개구리도 아니면서...


난 체형도 체질도 날씬과는 거리가 멀다.

삼일을 굶어도 얼굴살도 안 빠진다.

혈색 좋다는 소리는 지겹도록 들었고, 먹는 게 복스럽다 소리는 욕으로 들린다.

다이어트는 밤에 다짐하고, 아침에는 무너진다.

어느 무인도에 고립되어 한 한 달 정도 못 먹으면 빠지려나…

누구는 상체가 비만이고 누구는 하체가 비만 이라는데, 나는 아래위 균형도 잘 맞다.

유일하게, 얼굴이 핼쑥하다며 밥 한 숟가락 더 얹어주는 우리 엄마. 안 돼요, 그러시면 안 돼요.

맨날 연구 중이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날씬한 내 모습을 상상한다.

실천도 못하면서…


사우나에서 아줌마들이 땀 잘 나는 약이라며 마시라고 준다.

색깔이 얄궂다.

포카리스웨트에 박카스를 넣고 블랙커피를 섞어서 만들었다며 땀나는 특효약이란다.

주는 성의를 생각해 조금 마셨는데 신기하다.

땀구멍이 개방을 했다.

장마에 댐의 수문을 열어 주듯 땀을 뱉어낸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런 레시피를 만들었고 공유하는가 싶어, 웃기면서 슬프다.

별의별 도구로 뱃살을 긁고, 두드리고, 난리도 난리도 아니다.

뺑둘러 앉아서 수건 돌리기 하듯. 한 사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마시고 긁고… 그 속에 나도 있다.

대장 언니가 나가면서 땀을 너무 많이 빼서 어지럽다며, 돼지국밥 먹으러 가자니 다들 “오케이 10분 뒤” 하신다.

아!!

이 속에서 빠지면 사우나 왕따 된다.

먹으러 가기 전 한 방울의 땀이라도 더 빼야 한다.


맛있다. 꿀맛이 이런 걸까.

그릇을 뚫을 것처럼 맛있지만…

우린 다이어터들이니, 약간의 국물과 파 정도는 양심 상 남긴다.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식사이길 바라지만.

배꼽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저녁 시간을 알려준다.

거지가 들어앉아 있는지...


거지를 빼내자.


언니들 건강하게 살자구요.

몸집은 커지고, 피부는 유자를 닮아가지만, 우리에겐 맛있는 것을 구별 하는 입과, 같이 웃고 울어 줄 수 있는 사우나 멤버가 있잖아요.

오랫동안 함께, 함께 땀 빼고 맛난 것 먹으러 다녀요.

keyword
이전 03화색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