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던 자가용이 주유소에 도착하자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기름이 탱크 안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경유의 특유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볼록 올라온 배에 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교통이 복잡한 도로 위에서 메슥거리던 속이 뻥 뚫리면서 가슴이 후련했다. 그날부터였던가? 나는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임신 6개월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입덧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경유 냄새가 무척이나 싫겠지만 나는 케냐 하면 이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가만 생각하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냄새와 연관된 기억이 많은 것 같다. 사람, 집, 여행, 장소 등 냄새에 관한 스토리가 있다.
98년에 2주 동안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한 적이 있다. 공항과 아파트와 건물에 배어 있던 냄새가 떠오른다. 벽에 갓 바른 시멘트와 옅은 페인트가 섞인 냄새라고는 할까. 실내는 어느 지하실 같은 쾌쾌한 냄새가 났지만 7월의 햇볕은 따가울 정도록 찬란했다.
99년과 2001년 몽골을 2번 방문한 적이 있다. 한 번은 7월 그리고 11월이었다. 우유의 발효된 냄새와 고기의 비릿한 냄새가 겔 안에 가득했다.
나라마다 특유한 냄새가 있듯이 내가 사는 케냐도 그렇다.
케냐 사람들은 고수라는 허브를 꽤나 좋아한다. 2007년 전에는 한국에서 고수라고 불리는 이 채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먹어 본 적도 없었다. 케냐에서는 어느 마켓에서든지 살 수 있을 만큼 흔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고수는 그만큼 케냐 사람인에게 사랑받는 허브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물론 마늘과 김치 냄새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고도 남을 만큼 아주 강렬하다.
임신을 하면 모든 촉각과 청각과 후각이 예민해진다. 무엇보다 후각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은 냉장고를 열기조차 힘들어한다. 왜 그리 김치에서 풍겨 나오는 액젓과 양념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길거리에 쌓여있는 쓰레기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하수구 냄새 또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첫아이 임신했을 때 한국의 어느 음식점을 간 적이 있다. 깨끗한 행주로 테이블을 닦았는데도 불쾌한 냄새가 났다. 물론 케냐에서도 마찬 가지지만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가 아니다 보니 자주 창문을 열어 환풍을 시켰다. 그러다 보니 입덧이 조금은 수월했다. 반면 현지인들을 만나면 몸 깊숙이 배어 있는 고수와 양파 냄새는 참말로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양쪽 코에 휴지를 쑤셔 박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경유를 갖고 다니면서 속이 울렁거릴 때마다 냄새를 맡고 싶었다.
여기 사람들의 피부는 검고 참으로 예쁘다. 누군가 말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부는 거칠고 표피가 딱딱할 것이라고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외출을 할 때면 얼굴과 팔과 다리에 바셀린을 꼼꼼히 바른다. 햇빛을 받은 피부는 더 검고 윤기가 난다. 두 눈은 크고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굵은 쌍꺼풀에 속눈썹이 위로 쏙 올라간 모습은 정말이지 한눈에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몇 년 전부터 보습제로 자연 코코넛 기름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데 이 또한 싫고 좋음이 확실하게 나뉜다. 우리 집에서도 유일하게 코코넛 기름을 몸에 바르고 요리할 때 사용하는 사람은 아들뿐이다. 냄새가 고소한 나머지 느끼해서 나와 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날 큰 몰에 간 적이 있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나와 아이들은 서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8명쯤 되는 가족이 무리를 지어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고소하면서도 느끼한 코코넛 향이 마구 풍겨 나왔다. 달달한 냄새와 함께 검은 피부는 참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벌과 나비들이 훨훨 날아올 것 만 같았다. 달달한 코코넛 향과 함께 활짝 웃던 가족의 모습은 내 머릿속 한 곳에 저장되어 버렸다.
우리 집은 해발 1,800미터쯤 되는 곳에 있다. 나이로비 시내보다 조금 더 놓으니 1,850미터쯤 될 것 같다. 집에서 40분만 위쪽으로 달려가면 해발 2,000미터에 '니므로’라는 도시가 있다. 그곳은 나이로비보다 훨씬 시원하고 기온도 낮다. 비가 오는 우기 철에는 사람들의 옷은 한겨울 한국에서 입는 두꺼운 잠바를 입기도 하고 털모자와 목도리까지 한다. 니므로 타운에서 20분쯤 더 가면 5,000천 평 되는 땅에 한국 선교사님이 지은 신학교와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우린 게스트하우스에서 약 1년간 지냈다. 그 후로도 나는 한참이나 니므로에 있는 로칼 시장을 갔다. 1주일에 두 번 열리는 큰 장날에는 싱싱한 야채와 과일이 시장으로 나왔다. 아이들의 신발을 그곳에서 종종 사 신겼다. 아이들이 핑크색에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을 좋아하던 시절 접착제를 신발 밑창에 잔뜩 발라 놓았던 중고 운동화와 샌들에는 신발 모양을 따라 실을 촘촘히 박아 놓기도 했다. 딸들은 접착제가 매끄럽게 발라있지 않아 발이 불편했지만 무척이나 좋아하고 행복했다. 그곳에는 기쁨, 감사, 행복의 냄새가 있었다.
니므로 시장 안에는 유명한 소고기 집이 있는데 소를 잡아 반을 가른 몸뚱이들이 장날에 맞춰 들어오면 정육점 철 고리에 고기를 철커덕 걸어 놓았다. 원하는 부위를 그 자리에서 칼로 싹둑 잘라 저울에 달아 팔았다. 로칼 정육점에 가기라도 하면 소고기를 10킬로 이상은 사 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비닐봉지에 한 봉지씩 넣어 냉동고에 보관을 해 놓았다. 그 고기 집에서는 아주 특유한 냄새가 났다. 풀냄새 같기도 하고 신문지 냄새 같기도 했다. '니므로'하면 단연코 로칼 정육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케냐 주식인 우갈리 냄새를 참 좋아한다. 우갈리는 하얀 옥수수를 곱게 갈아 만든 음식이다. 마치 한국의 백설기처럼 생겼지만 찰지지 않다. 시골 사람들은 수수를 갈아 섞어 요리하기도 한다. 우갈리는 숟가락이나 포크로 먹으면 제 맛이 안 난다. 따뜻한 우갈리를 손으로 쪼물쪼물거리다가 야채를 얹어 먹거나 소고기 스튜에 찍어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다. 늦은 저녁 구수하게 익어가던 우갈리와 불 속에 타들어 가던 나무 냄새는 참말로 좋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운동장에 흙이 깔려있었다. 주기적으로 그 위에 살짝살짝 모래를 뿌려 놓았던 것 같다. 학교 정문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면 흙길이 집 앞까지 이어졌다. 40분이나 걸어야 하는 길 주위로 온통 논과 밭과 나무와 풀이 무성했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땅은 무르고 웅덩이가 생겼다. 간혹 찰흙처럼 매끈거리는 곳을 지나가다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물 웅덩이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더운 여름에는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곤 했는데 마른 대지에 쏟아지던 빗물과 흙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과수원을 하던 아버지는 비가 오기라도 일손을 잠시 놓고 원두막 나무 계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셨다. 나는 원두막에 누워 솔잎에 대롱대롱 맺혔던 빗방울을 보았고 반들반들한 복숭아 잎사귀에 또르륵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보았다. 나른하게 쏟아지는 잠 사이로 엄마와 아버지가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와 땀 냄새가 기억난다.
냄새는 추억이다. 나는 새롭고 특이한 냄새를 맡으면 그 이야기들이 소복소복 쌓여 갈 것이다. 이렇게 가끔, 문득 추억이 담긴 냄새가 코끝을 스쳐가면 잠시 접어 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