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첫 번째 이야기

by Baraka

도톰한 커튼을 살짝 올려보니 투명한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혀있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으니 회사에 일찍 나가봐야겠다. 지금쯤 마이나는 마른 수건으로 차에 묻어 있는 빗물을 닦아 내고 있을 것이다. 그의 나이가 아마 50살쯤 되었으니 나와 일한 지도 25년이나 되었다. 내가 개인 운전사를 고용하게 된 계기는 마타투라고 불리는 봉고차 운전사들 때문이었다. 운전기사들이 워낙 거칠게 차를 모는 바람에 출퇴근하는 시간에 매일 지옥 같은 경험을 했다. 그동안 내 차를 몰던 많은 운전사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마이나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아직까지 마이나에게 적응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다. 그의 몸에 배어있는 고수와 양파가 섞인 냄새다. 나는 워낙 후각이 예민한 터라 가끔씩 차 안에서 그의 냄새가 나면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만약 오늘이 그날이라면 마이너에게 꼭 말해 줄 것이다.

‘출근할 때는 꼭 씻고 오라’고 말이다.


귀 밑에서부터 턱 아래까지 꼼꼼히 면도를 했다. 옷장 옷걸이에 걸려있는 많은 양복 중에 네이비 색깔의 정장을 꺼냈다. 잘 다려진 옅은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고 오랜만에 넥타이를 목에 매었다. 왁스에 물을 살짝 섞어 머리카락에 발라 빗어 넘기니 제법 멋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은 호텔 잠보실에서 케냐 젊은 사업가 200명이 모여 아보카도로 기름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사업을 논의하는 콘퍼런스가 있다. 거울을 보며 다시 한번 옷맵시를 고쳤다. 발밑에서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만 빼놓으면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은 아침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가정부 모린이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허둥지둥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놀란 눈으로 이층을 향해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마담, 마담”

등 뒤에서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보면 몰라? 출근하지, 오늘은 스케줄이 많아서 바쁠 것 같아.”

나는 신발장 안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오래된 검은색 구두를 꺼내 들었다.

“정말 왜 그러세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작은 체구의 아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 사람이 왜 그래?”

“호텔에서 퇴직한 지 벌써 10년이나 되셨어요.”

아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나를 전신 거울 앞에 세웠다.

“지금 연세가 60세도 아니고 70세도 아닌 80세라고요.”

거울 속 얼굴은 눈가만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좋아 보였다. 아랫배는 제법 나왔지만 나름 옷맵시가 살아있다.

멋처럼 기분 좋게 출근을 하는데 아내는 나에게 새삼 나이를 확인시키며 소란을 피웠다. 나는 아직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쳤고 사람들하고 약속 시간을 잘 지킬 뿐 아니라 기억력까지 좋은데 말이다. 큰 소리로 나에게 표독스럽게 말하던 아내는 평소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내와 한바탕 소란을 피웠더니 무척 허기가 느껴졌다. 식탁에 준비되어 있는 식빵에 달달한 살구 잼을 바르고 구운 소시지를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삶은 계란을 식탁에 탁하며 깨뜨리는 순간 아내보다 모린이 더 괘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린만 조용했더라면 나는 지금쯤 호텔 사무실에서 최고급 케냐 AA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어제 모린이 퇴근하면서 그녀의 가방 안에 토마토 3개와 양파 2개를 넣어 간 것을 눈감아 준 사람은 나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모린이 내 옷장을 뒤졌는지 양말 몇 결례와 새 팬티 몇 장이 안 보였다.

달달 한 바나나를 입속으로 집어넣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수건 밑에 넣어 둔 봉투가 생각이 났다. 수건을 차곡히 정리해둔 수납장 안쪽에 현금을 넣어 두었던 것이다. 급한 일이 생기면 손쉽게 현금을 꺼내 쓰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 실내화에 대충 발을 집어넣고 2층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에서 35년을 일한 김명진이다. 그동안 못 볼 것, 볼 것 다 본 사람이다. 나이로비 라피키 호텔에서 일하면서 직장이든 집이든 차 안이든 물건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금방 알아채는 습관이 생겼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방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수건이 쌓여 있는 수납장 깊숙이 손을 넣어 구석구석을 뒤져 보았다. 손가락에 거칠고 두툼한 봉투가 잡혔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다.

‘두고 봐……. 모린, 한번 꼬리만 잡혀 보라고…….’

이번만큼은 증거가 잡히면 아내와 단판을 지을 것이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날씨가 흐렸다. 현관문 위 시곗바늘이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여 마시고 누가 볼 새라 하얀 대문을 살짝 열었다. 높은 담 자락을 따라 몇 보 걸어가니 도로 위로 차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직진으로 20분 걸으면 로터리가 나올 것이다. 로터리 가운데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하얀 시계탑이 서있다. 시계탑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느린 걸음으로 15분쯤 가면 강 사장 집이 나오고 왼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30분 걷다 보면 큰 성당이 나온다. 그리고 시계탑에서 직진으로 20분만 걸어가면 왼편으로는 아프리카 UN본부, 건너편으로는 미 대사관이 나온다. 그 지점에서 빠른 걸음으로 5분만 더 가면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자바 하우스’라는 커피숍이 나온다. 내가 이 동네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으니 어느 곳이든지 찾아다닐 만큼 길눈이 훤하다.

시계탑에서 시작될 나의 산책 코스는 직진 코스다. 심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양다리에 힘을 주며 한 발을 떼려는 순간 등 뒤에서 숨이 찬 목소리가 들렸다.

“무제(Mzee), 무제(Mzee), 어르신”

마이나가 언제 뒤좇아 왔는지 나의 오른 손목을‘휙’ 낚아챘다. 그 바람에 온 몸이 휘청거렸다.

“어르신, 밖에 나가실 때 혼자 다니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오늘만큼은 마이나를 따돌리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쳐 버렸다. 로터리 가운데에 서 있는 시계탑 시곗바늘이 오전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매일 이 시간 아내는 조용한 집안에 음악을 틀어 놓고 성경을 필사하거나 기독교 방송을 본다. 가끔은 찬송가를 크게 틀어 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나이로비에 한인교회가 있지만 아내는 한사코 현지 교회를 다닌다고 고집했다.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는 한국의 대형교회처럼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들이 다닌다. 처음 예배를 참석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찬양 시간이 되자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영어와 스왈리어를 번갈아가며 40분 이상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춤을 추웠다. 잠시 사람들이 의자에 앉자마자 정장을 입은 남자분이 앞으로 나왔다. 그가 온몸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열정적으로 말을 하자 청중들은 그의 말에 연신“아멘, 할렐루야”라고 화답했다. 내가 듣고 보기에는 분명 설교가 맞았다. 그러나 다른 신사분이 연이어 마이크를 잡자 그는 1시간 넘도록 설교를 했다. 설교시간 내내 졸음과 사투를 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0시에 시작한 예배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집 담벼락이 보이자 갑자기 아랫배가 팽팽해졌다. 외출하기 전에 미리 볼일을 봤는데도 방광이 꽉 차 올랐다. 걸음걸이가 마음과 다르게 더뎠다. 마이나가 커다란 대문을 재빠르게 열어젖히자 나는 얼른 현관문을 열고 화장실을 찾았다. 분명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할 화장실이 안 보였다. 35년 동안 살고 있는 집인데 화장실이 안보이니 당황스러웠다. 불안한 눈으로 아내를 찾는 동안 발 밑으로 미끄러져 나온 오른발이 신경에 거슬렸다. 점점 아랫배가 터질 것 같아 발자국을 내딛기조차 힘들었다. 부엌 한쪽에서 조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오븐 앞에 서 있는 아내에게로 갔다. 아내의 왼쪽 발꿈치를 살짝 잡아당기자 뒤집개를 들고 있던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내 옆에 서 있던 인도 여자가 눈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내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상하네……. 화장실이 안 보이네.”

아내는 뒤집개를 팽개치고 나의 오른손을 잡아끌었다. 부엌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짙은 갈색 문이 보였다. 아내는 잽싸게 문을 열고 나를 밀어 넣었다. 하얀 변기 앞에 서니 마음이 급해졌다. 벨트를 제치고 재빠르게 바지 지퍼를 내렸다. 변기 안으로 쏟아지는 노란 액체를 보니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현기증이 일어났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시켰다.

“손은 씻으셨어요?”

“당연하지, 매번 확인은 왜 해?”

아내는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폈다.

“크리스틴에게 집을 내놓는다고 말했어요. 크리스틴 남편이 부동산 사업을 하는 거 아시죠? 우리 집 판매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조금 전 부엌에서 보았던 여자가 크리스틴인가 보다.

“나와 상의 한마디 없이 집을 판다고?”

아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몇 개월째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도 이야기했고 그 전날에도 얘기했는데…….”

“요즘이라니……. 무슨 말을 했다는 거야.”

아내는 미간을 좁히며 먹다 만 부침개 위에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매일 1시간씩 산책을 하고 특별히 노래를 좋아해서 이층 거실에 노래방까지 설치했다. 1주일에 한 번은 동요, 가요, 팝송, 성악까지 부른다. 아내는 지난번 아침에는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몰아 새우더니 오늘도 마찬가지다.

나이로비에서 45년 동안 살면서 아내는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사람은 나였다. 나의 정년퇴임 이야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아내는 일사천리로 넓은 정원 한쪽에 게스트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정원이 있는 집은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 다며 말이다. 그랬던 그녀가 요즘 부쩍 집을 팔려고 하는 것이 아무래도 나 몰래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아내의 부모님은 작은 교회를 중형교회로 성장시키고 같은 교회에서 명예롭게 퇴임하셨다. 장인은 목회를 하기 전에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종종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으로 출장을 다니셨다. 어느 해 장인은 베트남으로 출장을 갔다가 영적 경험을 하고부터는 잘 드시던 술과 담배를 끊고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내는 4남매 중 첫째 딸로 온순하게 성장했고 중학생 때부터 예배 시간에 피아노 반주를 했다. 그녀의 활동영역은 집과 교회 그리고 학교가 전부였다.

우린 대학생 때 봉사동아리에서 만났다.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간 학생들은 20명이었는데 1주일 동안 짜증 한번 안 낸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취업을 앞둔 27살의 나는 여름방학이 끝나가기 전에 아내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나는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 가끔씩 집 앞에 있는 교회에 다니다가 마음속으로 아내와 결혼을 생각하고는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 나갔다. 우리 사이에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부모님은 사윗감이 믿음이 약하다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장인은 주일예배만큼은 꼬박 나오는 나를 지켜보시고 결혼 조건으로 8주 동안 본인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제안하셨다. 내가 세례를 받던 날 교회 분들은 희남 자매는 천사 중의 천사라며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내와 살다 보니 그녀의 마음은 천사 중에 천사였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5년째 되던 해 기다렸던 아기를 낳았다. 케냐로 떠나는 세 식구를 위해 교회 분들은 축복의 기도를 해 주셨다. 아내는 생후 6개월 된 딸아이를 안고 나이로비로 오는 내내 평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