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 사장 집에 가서 꼭 물어볼 일이 있다. 시곗바늘이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이나, 마이나 와피(Wapi)? 와피(Wapi)?”
늘 이 시간이면 현관문 밖에 있어야 할 마이나가 안 보였다.
“마이나, 마이나 어디 있니? 어디 있어?”
케냐 차이를 마시던 마이나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뛰어 왔다.
“꾸엔다 (Kuenda) 은제(Nenje), 밖에 나가자!”
“무제(Mzee), 싸와(Sawa), OK!”
하루 중 나와 마이나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요즈음 부쩍 아내는 밖에 나가는 나에게 마이나를 따라 붙였다. 내가 이 동네에 집을 사게 된 계기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하고 길거리가 깨끗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값이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국제학교와 각 나라 대사관들이 밀집되어 있고 인근 거리에 편리한 쇼핑몰이 있어서 이기도 하다. 나름 부유한 동네라고는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 철에는 수돗물 색깔이 붉은색에 가깝고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전기가 불안전한 것은 여전하다.
아내는 마이나에게 분명히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한시라도 나에게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우리 집에서 월급을 받는 현지인 중에 그나마 한국말을 잘 알아듣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마이나다. 내 성격이 급하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빨라지자 내 뒤에 좇아 오는 마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제, 천천히, 천천히.”
“마이나, 하쿠나 마타타. 걱정하지 마.”
양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려 앞뒤로 돌려 보았다. 제법 팔이 잘 돌아갔다. 그나저나 아내와 마이나가 나를 늙은이로 취급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기회를 봐서 한 번쯤 마이나에게 혼쭐을 내주고 싶어졌다.
“무제, 무제, 노우, 노우, 안 돼, 안 돼.”
한 문장에 스왈리어와 영어, 한국말까지 섞어가며 말하는 마이나가 참 기특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맞은편에서 어느 집 가드너가 사냥개 종류의 커다란 개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두 마리 개를 산책시켰다.
“무제, 잠보.”
“잠보, 잠보.”
내 뒤에 따라오는 마이나와 그는 악수를 하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것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도 곧잘 이야기를 잘하니 가드너와 마이너는 매일 보는 사이니 할 말이 더 많을 것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직원들끼리도 무엇이 좋은지 깔깔거리며 대화를 한다. 직장에 출근을 했으면 일을 해야지 잡담을 하는 것도 부족해서 어느 때는 아예 일손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인도 사람들이 주인인 가게에서는 감시 어린 눈초리에 수다는커녕 한순간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나는 마이너와 가드너가 악수를 하며 인사를 주고받자 마이나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마음처럼 발이 바삐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로터리에 하얀 시계탑이 보이자 속도를 내어 걸었다. 시계탑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금방 나오는 강 사장 집에 가서 CCTV 설치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다.
시계탑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선 것 같은데 도로가에 있는 강 사장 집 검은색 대문이 안 보였다. 나는‘애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언덕길이 나오더니 내림 길이 나왔다. 다시 언덕길을 오르니 커다란 기와집 같은 중국 레스토랑이 보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 식당이 가까워지자 기름진 중국음식 냄새가 허기진 배를 유혹했다. 한참을 걸었더니 다리에 힘이 빠져 걷는 것이 힘에 부쳤다.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가서 작은 연못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뒤 따라오던 마이나는 생각조차 안 났다. 중국식당에서 자주 먹었던 계란 볶음밥과 땅콩이 뿌려진 청경채 볶음, 씨즐링 돼지고기볶음과 튀긴 양파를 밑에 깔은 치킨 윙을 주문했다. 물론 따끈한 중국차도 시켰다. 나온 음식을 정신없이 먹다 보니 배가 불러왔다. 배도 부르고 햇볕이 어깨 위에 내려앉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한참이나 이렇게 졸고 있었나 보다. 잠 기운에 정신이 몽롱한데 가까운 곳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제, 무제”
당황한 표정으로 마이나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 작은 체구의 아내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터줏대감처럼 동네에 오래 살면서 나와 아내가 자주 오던 식당인지라 사장이 나를 알아보고 아내에게 전화로 일러 주었다고 한다. 마이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밥 한 끼를 식당에서 혼자 먹었을 뿐인데 다들 야단법석을 떨었다. 마이나의 온몸이 땀에 젖은 것을 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맸나 보다. 그나저나 마이나에게 말해 줄 것이다.
‘제발 쫌, 쫌, 샤워 좀 하고 다니라고 말이다.’
“마이나, 마이나 오늘은 시계탑까지만 산책을 가자.”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마이너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늘 웃음이 많은 마이나인데 말이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슬쩍 마이나의 손을 끌어당겼다. 아침부터 뾰로통하던 마이나의 얼굴에 웃음이 보였다. 마이나가 자주 흥얼대던 노래를 불렀다.
⌜ 잠보? 잠보 부와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르신.)
하바리 야코? 무주리 싸나.
(오늘 어떠세요? 아주 좋습니다.)
와게니, 와카리비시와.
(손님들, 환영합니다.)
케냐, 하쿠나 마타타.
(케냐는 모든 것이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비웃었다. 케냐에 무슨 문제가 없단 말인가? 문제는 가는 곳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말이다.
어느 나라든 부정부패가 없는 곳은 없겠으나 나는 지금도 눈속임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꼴을 못 본다. 무슨 일이라도 할라 치면 약속 시간 안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말로는 뭐든 다 된다고 호언장담 해 놓고 막상 당일 날이 되면 진행된 일이 하나도 없다. 내 생각에는 문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가장 큰 문제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일이 결정되면 신속하게 처리를 해야지 직성이 풀린다. 만약 현지인들에게 일을 보채기라도 하면 “볼레, 볼레, 천천히”라며 오히려 나를 진정시켰다. 결국 인내의 한계가 오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늘 나였고 인격이 부족한 나쁜 사람이 돼 버렸다.
라피키 호텔에서 내가 과장으로 일을 시작한 나이는 35살부터였다. 젊은 남아공 사장은 호텔 물건이 말도 안 되게 사라진다며 나에게 주방과 식당, 룸에 제공되는 물품까지 확인하라고 했다. 케냐인 제임스가 물품담당이었지만 사장은 그를 믿을 수 없으니 내가 직접 하기를 원했다. 서비스 쪽 일은 물건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리스트에 적혀있는 물품과 실제 물건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라피키 호텔이 나이로비에서 꽤 수준 높은 곳인데 레스토랑에서 종종 이가 나간 접시와 컵을 손님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제임스는 호텔에 가끔씩만 보이더니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름 제임스를 신뢰하고 있었던 터라 운전기사를 앞세워 그가 사는 집으로 갔다. 호텔에서 1시간을 달려간 곳은 ‘강게미’라는 동네였다. 복잡한 시장 골목을 간신히 빠져나와 사람들에게 물어 제임스 집을 찾아갔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큰 차가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길은 좁았고 오래전에 비에 쓸려 내려간 흙길이 나오자 더 이상 차가 올라갈 수 없었다. 결국 운전기사와 나는 아내가 챙겨준 선물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쓰레기와 흙이 뒤섞인 언덕길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조용하던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이‘우르르’ 몰려나왔다. 아이들 눈에 동양인인 내가 신기하게 보였던지 ‘무중구, 무중구’ 외국인이라며 뒤 좇아왔다.
제임스가 사는 집은 다른 집에 비해 그나마 좋아 보였다. 바나나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벽돌로 지어진 집에 지붕은 양철이었다. 제임스는 핏기 없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나는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고 그는 “무주리, 싸나”괜찮다며 힘없이 웃기까지 했다. 그의 아내에게 밀가루와 쌀, 식용기름, 설탕과 고기를 선물로 내밀었다. 임신 막달인 듯 한 그의 아내는 우리를 위해 홍차와 생강 비스킷을 내 왔다. 그녀가 머그컵에 홍차를 듬뿍 채웠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컵을 들어 올렸다. 눈에 익은 하얀 컵 위에‘라피키 호텔’이라고 인쇄된 글자가 보였다. 컵뿐 아니라 접시와 티스푼 그리고 쟁반까지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기분 나쁜 표정이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났을 텐데 이상하리 만큼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제임스의 고향은 빅토리아 호수 근처라고 했다. 나이로비에서 버스로 16시간 이상 비포장도로를 달려가야지만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집안의 대들보처럼 큰 아들인 제임스는 100불이 안 되는 돈으로 자신의 가족과 부모와 형제들까지 돌보며 살고 있었다. 정작 자신은 결핵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에 입원조차 할 수 없었다. 나의 권유로 제임스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그는 호텔에 출근하지 못했다. 제임스의 장례식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치러졌다.
예전 생각에 빠져드니 마음이 착잡했다. 앞서 걸어가던 마이나가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무제, Are you OK?”
“마이나, I am OK, 무주리 싸나.”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한 옥탑 올라간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조금 전에 부동산 사업하는 크리스틴의 남편 소개로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집을 언제 팔 수 있냐고 묻기까지 한걸 보면 우리 집이 맘에든 것 같아요.”
“집을 사고팔 때 조심해야 해. 여기 사기꾼들이 많은 거 알고 있지? 지난번 사건 기억 안 나? 딜러가 사기꾼들과 짜고 내 차 상태를 확인한다며 집 밖으로 끌고 나가서 어떤 짓을 했어? 동네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세큐리티 직원들이 발견하지 못했으면 큰코다칠 뻔했었다고.”
한숨 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 나오자 아내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깐, 이곳을 빨리 정리하고 떠나요.”
우리 부부는 케냐에 온 지 10년째 되던 해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입했다. 직장 생활로 모았던 돈과 신혼집으로 샀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 나이로비에 1,200평이나 되는 오래된 집을 샀다. 아내는 오래된 집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넓은 정원은 좋아했다. 아내는 가장 좋은 잔디를 정원에 심었다. 정원 한쪽에는 코스모스 씨를 뿌리고 보라색과 흰색 그리고 분홍색 수국을 심었고 도로 쪽 담가로는 파파야와 아보카도, 바나나 나무를 심었다. 평평한 정원 밑으로 비탈진 곳에는 빼곡히 로즈메리와 라벤더, 민트 등 각종 허브를 심었고 아래쪽 땅에는 상추와 부추, 대파, 고추, 쑥갓, 알타리와 얼갈이 그리고 삼겹살 구이에 빠질 수 없는 깻잎을 심었다.
아내는 한국을 방문할 때면 사다 나른 빨간색 목장갑을 끼고 호미로 밭을 일구며 매일 식물과 야채에 물을 주었다. 사실 나는 정년퇴임을 하면 한국에 가서 살고 싶었지만 오히려 아내는 이웃집 담을 따라 다섯 채의 게스트 하우스를 지었다. 방안에는 각각 화장실을 넣었고 작은 거실에는 소파와 식탁, 부엌 쪽으로는 오븐과 세탁기, 냉장고와 식기류를 준비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는 무척 행복했다.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은 인생 제1막을 내려놓은 나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