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에 물을 주는 사이 고향 후배인 강 사장이 찾아왔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렸지만 강 사장은 사려가 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강 사장이 우리 집에 올 때면 동네에서 먼 한국 빵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단팥빵과 찹쌀 도넛, 생크림 빵을 사 온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식사는 잘하시죠?”
“그렇지 뭐……, 요즈음 자네 사업은 어떤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손님들이 안 온 지 오래되었어요. 여행사 사무실 월세는 계속 나가고……. 그래서 최근에 사무실을 정리했어요.”
“아이들이 한창 크는 나이인데, 걱정이 많겠어?”
“모두 힘든 시기이니 이번에도 잘 견뎌야죠.”
“그나저나 자네 아내는 잘 있나?”
“선배님도 알다시피 아내는 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요즘 들어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다고 하네요. 케냐에 살면 살수록 사는 게 지친데요. 어제도 셋째 고등학교 졸업하면 한국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강 사장, 우리 아내도 요즈음 그런 소릴 자주 한다네.”
강 사장은 마시던 새콤한 패션 주스가 목에 걸렸는지 기침을 해댔다. 나는 강 사장과 헤어질 때 주먹으로 악수를 대신하며 봉투를 그의 주머니에 살짝 넣어 주었다. 뒤를 돌아보는 강 사장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강 사장, 아이들과 함께 외식 한번 하게.”
강 사장이 우리 집에 오던 날 그에게 중고 CCTV 구매를 부탁했었다. 일머리가 좋은 강 사장은 내 방에 CCTV를 직접 설치해 주고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달아 주었다. 나 대신 기억해 놓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든든했다.
이번에는 아내가 나를 믿어 줄 것이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내는 딸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에 6개월 동안 나가 있었다. 아내는 주방을 담당하는 마마 사이먼에게 된장과 김치찌개,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을 가르쳤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과 계란말이 그리고 비빔밥과 깍두기, 배추김치 담그는 법까지 전수해 주었다. 가정부로 갓 일을 시작한 모린에게는 내 와이셔츠와 속옷을 다리는 방법이며 세탁한 옷을 어느 곳에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꼼꼼히 일러 주고는 딸과 함께 한국으로 출국했다.
마침 강 사장이 사업 리서치를 위해 우리 집에 머물게 되어서 나는 그를 위해 1층에 있는 방을 내주었다.
모린은 두 남자의 옷 세탁과 다림질을 하고 매일 아침마다 구두가 윤이 나도록 닦아 놓았다. 정이 많은 강 사장은 모린에게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팁을 챙겨주곤 했다.
연휴가 낀 주말이었다. 나는 금요일 저녁에 한국 청년들을 집에 초대해서 양고기 숯불구이와 함께 술을 거하게 마셨다. 다음 날 아침 나와 강 사장은 숙취로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아래층에서 강 사장이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옷 바람으로 나는 그가 머무는 1층으로 뛰다시피 내려갔다. 그의 방 한가운데에는 연휴와 휴일에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모린이 서 있었다. 모린이 정신없이 자고 있는 강 사장 침대로 살그머니 들어왔던 것이다. 다정다감한 강 사장의 성격이 아이 둘을 데리고 고되게 살아가는 젊은 싱글 맘에게 큰 사랑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모린을 우리 집에서 당장 잘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내는 모린은 잘 못 한 게 없고 착각하게 만든 강 사장의 실수라며 오히려 그녀를 두둔했다. 아내는 집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매번 이런 식이었다.
오래전, 나의 결혼반지가 모린 앞치마에서 나왔을 때도 아내는 나 보다 모린을 믿어 주었다. 모린은 청소를 하다가 침대 밑에서 반지를 발견했을 뿐이고 잠시 자신이 보관한 것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내가 믿어 주지 않는 눈치이자 그녀는 아내에게 직접 주려고 했다며 억울한 듯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나는 직장에서 수도 없이 이런 일들을 보았다. 직원들은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면 호텔 가시나무 울타리 속에 맥주와 와인을 숨겨 놓았다가 퇴근할 때 내 눈을 피해 챙겨갔다. 자기들끼리는 다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귀띔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케냐에서 나름 터득한 지혜가 있는데 물건을 훔치는 일은 절대로 눈감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가장 잘 먹혔던 방법은 호텔 물건을 도둑질하다가 현장에서 발각되면 즉시 일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었다. 나름 직원들을 다루는데 효과가 있었다. 이것이 내 철칙이고 신념이고 정의였다. 그러나 집에서 만큼은 이 법은 통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 의견보다는 현지인들의 말을 더 믿어주었다. 아내는 진짜 천사가 아니면 바보 멍청인 것이 틀림없다.
CCTV 화면으로 작은 체구의 여자가 2층 거실에서 왔다 갔다 했다. 화면 속에 보이는 여자가 아내 장희남인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 달 동안 녹음된 CCTV 화면을 돌려 보고 싶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괜스레 말소리를 죽이며 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사장, 강 사장 나야.”
“안녕하세요? 선배님 무슨 일 있으세요?”
“강 사장, 자네 오늘 시간 괜찮으면 우리 집에 와 줄 수 있나?”
모린과 아내에게 무시당했던 일들이 머릿속으로 스치면서 말할 수 없는 희열감이 생겼다. 방 안에서 서성이던 나는 2층 거실로 나왔다. 조바심으로 끝내 불편한 다리를 끌고 아래층까지 내려와서 강 사장을 기다렸다. CCTV 카메라 한 대는 2층 거실, 한 대는 부엌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는 1층 거실과 한 대는 내 방에 설치되어 있다. 강 사장만 오면 한 달 동안 녹음된 영상을 돌려 볼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강 사장을 조용히 이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한참 동안 화면 속은 지루할 정도로 같은 모습이 반복되었다. 넓은 집안에서 불편한 다리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 매일 똑같은 시간에 모자를 눌러쓰고 현관문을 열기 전에 거울을 한번 쳐다보고 나가는 사람 그리고 1시간이 지나면 현관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는 사람은 나였다. CCTV 필름에는 모린 모습이 가장 많이 찍혀있었고 그녀는 아침 8시에 출근을 해서 오전 내내 반쯤 허리를 굽히며 집안 바닥 청소와 부엌일을 하다가 오후 4시가 되자 빨래를 걷어 접었고 다림질은 이틀에 한번 꼴로 했다. 시곗바늘이 정확히 오후 5시를 가리키면 모린은 퇴근을 했다. 그동안 주방 일을 하던 아줌마는 코로나 19 때문에 게스트 하우스에 손님이 없어서 잠시 휴가 중이다. 주방 아줌마 모습은 CCTV 필름에는 그림자조차 없으니 녹음된 영상에는 나와 아내와 모린 그리고 가끔 차를 마시러 오는 강 사장과 아내의 젊은 친구 크리스틴이라는 인도 여자가 전부였다. 영상 속에서 아내는 2층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가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메모를 했다. 단조로운 행동이 반복되자 나와 강 사장은 번갈아가며 하품을 했다. 영상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는 집중해서 화면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오후 5시가 되면 퇴근해야 할 모린이 내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강 사장의 손등을 두드리자 그는 화면에 눈을 집중시켰다. 모린은 CCTV 카메라를 등지고 양복과 와이셔츠를 보관하는 옷장 문을 열었다. 그녀의 손이 옷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 내려갔다. 점점 빨라지는 손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모린이 손을 멈추더니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강 사장이 화면을 멈추고 그녀의 손을 확대시켜보니 동백꽃 모양의 브로치였다. 지난 12월에 한국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 온 강 사장 부인에게 부탁한 선물이었다.
올해 11월은 나와 아내 장희남의 결혼 50주년이다. 깜빡 잊고 있었던 물건을 모린이 찾아낸 것이다. CCTV 화면을 함께 지켜보던 강 사장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껏 혼자 의로운 척, 착한 척, 이해심 많은척하던 아내에게 꼭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그동안 아내에게 무시당했던 일들을 꼭 보상받고 싶었다. 모린을 미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오히려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짜릿했다.
“강 사장, 자네도 봤지? 오늘은 반드시 아내와 결판을 내야겠네.”
나는 강 사장에게 아내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강 사장은 우리 부부가 이런 일로 말싸움을 하던 것을 알고 있었다. 강 사장이 쭈뼛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것을 머뭇거렸다.
“자네, 왜 그러나, 자네도 내 억울한 마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강 사장은 무슨 고백이라도 하듯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배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말씀을 드리려고 했었는데 상황이 안되었어요.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거실로 나가서 이야기해요.”
따뜻한 물을 갖고 온 강 사장은 급한 내 성격을 식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물 한 모금을 삼키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마시고 잘 들으세요. 제가 누님이라고 불렀던 선배님의 아내 분은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던 분이세요. 선배님, 누님은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세요. 6개월 전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이 사람이 왜 그래, 자네도 CCTV 영상 속에서 아내를 봤잖은가. 살아있는 사람이 죽었다니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해.”
“선배님, 선배님은 지선이를 누님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지금 이 집에 있는 사람은 누님이 아니라 선배님의 딸 김지선이에요.”
“자네……. 안 되겠네. 여보! 여보! 어디 있어? 장희남! 장희남! 이리 좀 와봐.”
나는 직접 아내를 찾기 위해 일어섰다. 갑자기 머리가 핑하고 돌자 몸이 휘청거렸다. 강 사장이 나의 몸을 부축해 소파에 앉히자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강 사장이 자신의 스마트 폰을 켜서 TALK라고 쓰여 있는 노란색 화면을 눌렀다. 강 사장 이름 밑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보였고 김명진이라는 이름을 찾아 화면을 눌렀다. 바탕화면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가 내 팔에 팔짱을 끼고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여자는 한 집에 있는 아내와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선배님과 팔짱을 끼고 있는 분이 장희남 누님입니다. 선배님 아내이시고요”
강 사장은 다시 김지선이란 이름을 눌렀다. 사진 속에는 도도한 젊은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이 사람이 아내 장희남이 아니고 딸 김지선이란 말인가?”
“네, 선배님, 두 분은 6개월 전에 골프장에 갔다 오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비탈길에서 큰 트럭이 추월하면서 선배님의 랜드 크루저를 박아 낭떠러지로 굴렀고요. 사고가 나자마자 두 분은 앰뷸런스로 아가칸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누님은 응급실에서 1주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지선이에게 두 분 소식을 알렸고 따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케냐로 온 것이에요. 저와 지선이가 누님 장례식을 치렀는데 그때 선배님은 응급실에 계셨어요. 신의 도움으로 선배님은 3개월 전에 퇴원하셨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거예요.”
강 사장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래층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아내라고 믿고 있었던 딸 김지선이 눈앞에 서 있었다.
“아빠, 죄송해요. 제가 먼저 아빠에게 엄마의 소식을 말했어야 했는데, 아빠가 저를 엄마라고 믿고 계셔서 아직까지 말씀을 못 드렸어요. 제가 아빠의 외동딸 김지선이에요. 생후 6개월에 엄마 품에 안겨 나이로비에 온 딸이에요.”
어디에서부터 기억이 엉켜버린 것일까. 강 사장과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나는 지선에게 말을 꺼낼 기운조차 없어서 눈으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건너편 소파에 앉아 있는 강 사장은 착잡한 표정이었다. 지선이는 두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조심히 말문을 뗐다.
“저는 혼자 자랐지만 아빠의 넉넉한 수입으로 좋은 집에서 살았고 나이로비에서 비싼 국제학교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3년 동안 교육을 받았어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살다가 졸업 후 처음으로 케냐에 왔어요. 1년에 한 번 아빠와 엄마가 한국으로 나오셔서 한 달 동안 저와 시간을 보내셨고 가끔 유럽에서 만나서 여행을 다녔고요. 2년 전 스위스로 여행을 함께 갔었는데 기억 나시죠?”
말없이 앉아 있던 강 사장이 지선의 말을 거들었다.
“스위스 여행을 갔다 오시면서 저희 막내에게 초콜릿 하고 목각으로 만든 소 인형을 선물로 사다 주셨잖아요. 선배님과 누님은 젊었을 때부터 주말이면 집에 한인 분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셨어요. 나이로비에 사는 한인들 중에 선배님 댁 양고기 야마 초마(숯불고기)를 안 먹어 본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겁니다. 케냐에 근무하는 S상사와 L상사 직원들과 대사관분들 그리고 미국, 캐나다, 영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인들까지 초대하셨잖아요. 제가 케냐에 처음 왔을 때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NGO 단체에서 근무하던 청년들을 초대해서 술을 거하게 마셨다가 다음날 아침에 모린에게 혼쭐났었고요.”
꽉 다문 나의 입술 사이로 쥐어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장희남은…….”
“엄마는 ……. 거실 장식장 위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계세요.”
CCTV 한쪽 화면 안에는 넋이 나간 사람이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다른 화면에는 2층 거실과 아래층에 있는 부엌과 1층 거실이 보였다. 현관문 옆에 커다란 전신 거울이 보였고 왼쪽으로는 브라운 색 엔틱 장식장이 보였다. 장식장 한가운데에 옅은 옥색 용기가 놓여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들여다보니 용기 가운데 붉은색으로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몇 시간째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는지 다리가 굳어 일어서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나는 불편한 다리를 슬리퍼에 집어넣고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장식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심장이 벌렁거리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코끝에 타이어 타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CCTV 화면으로 보았던 사기 모양의 용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용기 겉에는 ‘고 장희남 여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안에 아내가 있다니……. 여기에 장희남이 있었다니…….’
아내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아내를 소록도에서 처음 만났던 날, 케냐에 지선이를 품에 안고 오던 모습, 정원을 꾸미며 행복하게 웃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엠보셀리 공원으로 달리는 차 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보였다. 운전하는 마이나에게서 시원한 데톨 비누냄새가 풍겨 났다. 마이너 옆에는 강 사장이 앉았고 뒷자리에는 딸 지선이와 내가 앉았다. 우리를 태운 차는 암보세리 국립공원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한국의 겨울이 그리울 때면 눈 덮인 킬리만자로 산을 보러 왔던 아내를 위해서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뒤좇아 오던 사파리 차 한 대가 앞서 나가며 흙먼지를 쏟아 냈다. 울퉁불퉁한 흙길 위로 차가 뒤뚱거리며 나아갔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아내의 유골함이 춤을 추듯 흔들거렸다.
오늘은 아내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킬리만자로 산과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차를 멈추었다. 저 멀리 지나가는 코끼리 가족들에게도 안녕을 고했다. 아내의 유골이 주름진 손가락 사이를 지나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
광활한 초원으로 흩어지는 아내의 영혼이 마치 킬리만자로의 산 정상을 향해 날아가는 나비 떼처럼 보였다.
어디에선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냐 하쿠나 마타타, 김명진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