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멜리아

첫 번째 이야기

by Baraka

늦은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스마트 폰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계속 울리는 벨이 귀찮아질 때쯤 소리는 멈추었다. 곧바로 ‘띠리릭’하고 문자 한 통이 날라 왔다.

‘연희 씨 주말에 모래언덕에서 파티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분들을 초대했어요. 파티의 주제는 ‘까멜리아 데이’ 예요. 꽃 색깔 중에 원하시는 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오시면 됩니다. 금요일 저녁 6시, 모래언덕에서 만나요.’

몇 해 전 신혼살림을 제주에서 시작한 주연에게 선물로 받았던 손수건이 떠올랐다. 바다색 위로 갓난아기 주먹만 한 붉은 꽃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까멜리아는 겨울에 피기 시작해서 봄에 지는 섬의 꽃이다. 꽃이 질 때는 만개한 꽃송이가 통째로 ‘뚝’하고 땅에 떨어진다. 꽃말 뜻이 기다림, 애타는 사랑이라니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나는 잔잔한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에 벨 롱장에서 구입한 꽃 귀걸이를 귀에 걸었다. 벨이란 제주 방언으로 ‘반짝’이란 뜻이다. 마켓은 별이 반짝이듯 아주 잠깐 문이 열렸다가 닫힌다. 애머랠드 바다를 배경 삼아 벨롱장이 열리는 날에는 육지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 주로 고객이 된다. 서울에서 2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물건이 벨 농장에서는 두 배, 세배 그 이상으로 팔린다. 손수 만든 액세서리와 향초, 천연비누, 고래 도마, 천연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먹거리는 육지의 물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푸른 바다와 빨간 등대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환상적인 모습이 벨 롱장의 물건을 돋보이게 했다. 마켓 주인들은 헐렁한 몸매를 입은 것처럼 온몸에 자유라는 단어가 배어 있었다. 명예와 돈과 성공을 초월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또한 벨 농장의 이색적인 모습이다.

서울을 떠난 온 지 2년이다. 섬 생활에 슬슬 권태감이 몰려오는 찰나 까멜리아 데이라는 파티가 열렸다.


오후 5시 58분, 나는 함덕 모래언덕 카페 문을 열었다. 카페 안에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홀 중앙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로 붉은 꽃송이가 그려진 테이블보가 멋스럽게 씌워져 있었다. 꽃송이 위에는 고급 와인이 놓여 있었고 하얀 접시에 여러 종류의 치즈와 견과류가 담겨 있었다. 카페의 조명은 어두웠다. 카페 곳곳에서 향초의 달콤한 향기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구석구석에 호스트가 정성스럽게 파티를 준비한 흔적이 엿 보였다.

얇은 캐슈 미어 주황색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몇 겹으로 목에 감은 모니카가 나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왔다.

“연희 씨, 오늘 파티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요.”

그녀는 이미 도착한 사람들에게 나를 데려가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연희 씨, 편안하게 와인을 마시면서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세요.”

모니카는 신비스럽고 우아한 샤넬 No.5의 향기를 남기고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뻘쭘하게 서 있는 나에게 주황색 나비넥타이를 맨 남자분이 다가왔다. 그는 미국에서 온 스티븐 목사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목사는 보육원에서 나온 청년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말했다. 오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그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백발 그 자체였다.

그의 등 뒤로 찬바람을 몰고 카페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동그란 안경을 낀 6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남자였다. 박 사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한림에서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급하게 와인을 따랐다. 그는 브라운색 양복 정장에 흰색과 핑크색이 절묘하게 섞인 커다란 코사지를 가슴에 꽂고 있었다.

모래언덕 카페는 전체가 온통 유리로 둘러 쌓여 있다. 모래사장 쪽에서 카페를 보면 3층 건물이지만 주차장 쪽에서는 2층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1층 또는 2층인 것이다.

아래층에서 '딸랑, 딸랑' 기분 좋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두 번, 세 번의 종소리가 카페 안으로 울려 퍼져 나갔다. 1층과 2층 그리고 3층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와인 테이블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조명이 채 닿지 않는 쪽으로 슬쩍 몸을 피했다. 모니카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오프닝 인사를 했다.

“여러분, 오늘 모래언덕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서귀포에서 오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파티는 매년 한번, 2월의 마지막 밤에 만 열립니다. 지금부터 제5회 까멜리아 데이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니카가 와인 잔을 머리 위로 힘껏 들어 올리며 “건배”를 외치자 그녀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손을 치켜들며 따라 외쳤다.

“건배”

곧바로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20명쯤 돼 보였다. TV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눈앞에서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카페 안에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녁 식사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까지 와인을 드시면서 작품을 즐겨 주시면 됩니다. 단, 이 시간은 대화를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리창에 흔들리는 촛불이 파티를 한층 몽환적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평소에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 나지만 오늘 밤은 와인이 목덜미를 따라 '술술' 넘어갔다. 위장 끝까지 내려간 알코올은 긴장감을 풀어주는데 효과가 좋다.

초대된 손님들이 위층과 아래층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수십 개의 향초가 뿜어내는 향 냄새에 취해서 그런지, 와인에 취해서 그런지 몸이 바닥에서 위로 10센티나 붕 뜬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계단을 내려 간 박 사장은 1층 안을 한참이나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그림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림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무슨 말을 중얼거리더니 애도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어깨까지 들썩이는 박 사장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전시된 작품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림은 특이한 형태의 집과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느 그림은 머리에 작은 모자를 쓰고 까만 옷을 입은 남자들이 높은 벽에 두 손을 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통곡을 하며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옆에는 건물 지붕이 자로 잰 듯 네모난 모양에 색채는 온통 브라운 계열로 칠해져 있었다. 도시 전체가 붉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무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색과 검은색과 붉은색이 절묘하게 섞인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스라엘의 도시 한복판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림 오른쪽 밑에는 명함 크기만 한 종이 위에 가격표처럼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액수를 확인하는 순간 입이 '쫙'하니 벌어졌다.

창가 선반에는 작은 팸플릿이 놓여 있었다. 맺음말에 작가는 이스라엘에 여행 중에 예수를 만났다고 했다. 6개월 동안 예수의 발자취를 좇았던 그의 이름은 김 기수라는 작가였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삶의 모든 에너지를 그림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벽 중앙에는 수채화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깊은 산속에 젊은 연인이 발가벗은 채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울창한 숲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들리는 것 만 같았다. 연초록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가르며 내려오는 빛줄기는 마치 행복과 환희, 기쁨, 만족, 희망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이 세상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충만함이 느껴졌다. 성경 첫 장, 첫 줄에 시작되는 말씀처럼 말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막다른 벽에서 왼쪽으로 살짝 돌아서자 희미한 조명 아래 검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화폭에 서 있었다. 소녀의 두 손에는 활짝 핀 블랙로즈의 동백꽃이 들려 있었다. 소녀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있었다. 소녀가 무슨 말을 걸어올 것 같아 나는 ‘휙’ 하니 등을 돌려 버렸다. 뒤에서 소녀가 나를 자꾸만 눈으로 좇고 있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거렸다. 분명 술기운만은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이층에서 들려오던 쇼팽의 녹턴 1번 곡이 멈추자 연주는 2번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키고 주입시켰다. 왜, 하필 이런 좋은 날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림 속 소녀의 눈빛이 지혜와 닮아 있었다. 나는 어렸고 두려웠다.

기독교 모태신앙인이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같은 교회를 다녔다. 교회가 커서 주일 오후 예배에는 젊은 사역자들이 돌아가며 설교를 했다. 사역자들은 설교시간에 야구 선수처럼 홈런을 치려는 듯 청중을 향해 설교를 쏟아 냈다. 어느 분은 설교 시간 내내 성도들을 향해 훈계를 했고 어느 분은 웅변가처럼 강단 앞에서 ‘이 연사 이렇게 외칩니다.’라며 목에 핏줄을 세웠다. 식상한 설교에 흥미를 잃었던 나는 교회 청년부에 새로운 사역자가 온 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떤 사역자가 와도 2년쯤 스펙을 쌓고 가는 게 뻔 한 터라 나는 사역자에 대한 기대감이란 없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전도사는 청년들에게 기도 생활을 강조했다. 그가 교회를 올 때면 두세 명의 소녀들이 긴치마에 단정한 머리를 하고 동행을 했다. 그녀들은 전도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영적 아버지라고 말이다. 서른세 살밖에 안 된 사람에게 16살에서 18살쯤 되는 소녀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같잖아 보였지만 충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지혜라는 소녀는 그와 매번 대학부 예배에 참석을 했다. 어느 날은 지혜가 청년들 앞에서 간증을 했다. 지혜의 친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는 술을 먹기라도 하면 모녀를 때렸고 엄마가 집을 나가 버리자 그녀도 집을 나왔다고 했다. 지혜는 골목길을 헤매다가 붉은 십자가 보이자 지하에 있는 교회에 들어갔다가 지금의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한참이나 반복해서 연주되던 녹턴 No. 2번 곡이 멈추었다.

첫 번째 종소리가 3층에서 들리는 가 싶더니 두 번째 종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계단을 또각또각 내려오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세 번째의 종소리가 멈추었다. 카페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또다시 2층 테이블로 모였다.

"카페 한쪽에 음식을 차려 놓았습니다. 맘껏 식사를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부터는 자유롭게 교제하시면서 서로 좋은 추억을 만 드시길 바랍니다."

아주 매끄럽게 파티를 주도해 가는 모니카는 진행의 달인 같았다. 요가 클래스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음식은 뷔페로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과 음식 사이에는 고개가 꺾인 꽃송이가 흐트러져 있었다. 블랙로즈, 주황색, 핑크색, 하얀색의 동백꽃이었다. 나는 제주산 치즈가 듬뿍 올라간 피자 한 조각과 버터로 구운 전복과 과일 샐러드 위에 상큼한 귤 소스를 얹어 소파에 앉았다.

40대 초반의 부부가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신혼부부는 세계여행을 하다가 1년 전에 성산포 부근에 정착을 해서 한라산 등반 가이드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파티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는 부부는 서귀포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일한 지 8년쯤 된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다. 캐나다인 남편분이 한국말을 잘하고 서글서글하니 성격이 좋아 보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한국의 남쪽 섬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니카조차 말이다.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3층 계단에서 조용히 내려오는 소녀를 쳐다보는 순간 삼키려던 전복이 목에 걸릴 뻔했다. 아래층 액자에서 보았던 소녀가그림을 막 찢고 나온 것 같았다. 까만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연한 핑크색 동백꽃 머리핀으로 반쯤 머리카락을 묶고 있었다. 모니카는 그녀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 세웠다.

2월의 마지막 밤인 까멜리아 데이를 빛내 줄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딸 캐더린입니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마치고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니카의 말투에서 자랑스러움이 새어 나왔다. 게스트들이 큰 박수로 캐더린을 환영했다. 그녀는 고개만 까닥거리곤 시선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는 전공자답게 악보 없이 쇼핑의 녹13번을 연주해 나갔다. 캐더린의 하얀 손이 나비처럼 춤을 추듯 건반 위를 날아다녔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편안해 보였다. 나와 한림 박 사장만 빼고는 말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골칫거리인 편두통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한산한 카페 3층으로 올라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귀에서 녹턴 19번이 점점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