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전도사는 8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저녁, 교회 청년 몇몇이 선물을 사들고 그의 집을 방문했다. 철 대문을 열자 곧바로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나왔다. 입구에는 신발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햇볕이 들어오는 곳이라곤 화장실 안에 있는 작은 창문뿐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부엌이 나왔고 더블 침대가 놓여있던 작은 방과 그 옆 큰 방에는 벽을 따라 나무와 천으로 된 옷장이 줄지어있었다. 그 앞으로 영적 자녀들이라고 하는 8명의 앳된 소녀들이 앉아 있었고 끝에는 전도사의 아내와 전도사를 쏙 빼닮은 5살쯤 돼 보이는 딸아이가 엄마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나와 잠시 눈이 마주친 아이는 쑥스러운 듯 엄마 품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던 어느 공휴일이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나는 전철역으로 마중 나온 지혜를 만났다. 쓰레기가 뒹구는 음식점 앞을 지나 우리는 지하실로 들어갔다. 전도사의 부인과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전도사와 한 명의 소녀가 손님인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첫째 딸이라는 그녀는 나를 위해 믹스커피를 타 왔다. 다른 동생들은 중,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검정고시 학원에 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은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나는 눈에 밟혔던 전도사의 딸을 위해 사온 토끼 인형을 넣어 온 쇼핑백을 만지작거렸다. 때마침 ‘타박타박’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환한 미소로 부엌을 지나 성큼 내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이는 함께 생활하는 언니들에게는 싫증이 났는지 내 곁을 맴돌며 동화책과 장난감을 가지고 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녘 나는 지하실에서 나왔다. 지혜와 아이는 나를 위해 전철역까지 배웅을 했다. 나와 지혜의 손을 잡고 종알거리며 걷던 아이는 까치발을 하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언니, 우리 아빠는 거짓말쟁이다.”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한 정신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살짝 뜬 눈 사이로 은갈치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꿈과 현실에서 조차 내 주위에는 성직자들이 수시로 등장을 한다. 머리가 찌근거려 눈살이 찌푸려졌다. 목에서 건조한 소리가 간신히 새어 나왔다.
“물……. 좀…….”
스티븐 목사는 얼른 시원한 생수 한잔을 갖다 주었다. 물을 마시자마자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마치, 우리 모두를 향해 마법을 거는 소리처럼 말이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 하하 호호거리며 웃던 젊은 무리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종소리가 멈추자 모두 모니카를 주목했다. 종 하나로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모니카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신화 속 여신 같아 보였다.
연주되고 있던 녹턴의 마지막 곡 21번이 멈추었다.
“까멜리아 데이의 마지막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소지품 중 하나를 테이블 위로 올려 주세요. 가격과 상관없이 아무거나 한 가지면 됩니다.”
교회 대학부에서 예배를 마치고 2부 순서 때 가끔씩 물건을 나누던 이벤트가 떠올라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동백꽃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빼놓았다. 한림 박 사장은 만년필을 꺼내 놓았고 스티븐 목사는 부드러운 가죽 성경책을 내놓았다. 서귀포에서 온 부부는 커플 모자를, 성산포 게스트하우스 사장 부인은 주황색 동백꽃이 달려있는 벨트를, 오늘의 주인공 모니카는 목걸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캐더린은 머리핀을 풀어놓았다. 파티에 온 사람들이 꺼내 놓은 물건들이 테이블에 쭈욱 펼쳐져 있었다.
“지금부터 멀리에서 오신 분부터 맘에 드시는 물건 하나를 골라 카페에서 나가시는 것으로 오늘 이 파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5회 까멜리아 데이에 오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손님들은 한 명, 두 명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건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집이 가장 가까운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핀을 선택했다. 사람들 손에는 크고 작은 액자가 들려 있었다.
낮에는 봄이 코앞으로 온 것처럼 따스했지만 아직은 섬의 밤은 추웠다. 밤바다에서 거친 바람이 휘몰아쳐와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헝클어트렸다. 나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길로 접어들면서 백미러로 모래언덕을 쳐다보았다. 6시간 동안 머물렀던 카페가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것 같아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신 제주 로데오로 출근을 하는 날이다. 나는 요가센터에서 1주일에 4일, 하루 2시간씩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수입의 전부인 곳이다. 10년 하고도 2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취미 생활로만 했던 요가가 나의 밥벌이가 될 줄은 몰랐다.
1교시 수업은 오전 9시에서 10시까지이고 20분간 휴식을 갖은 뒤 2교시 수업이 시작된다. 오전 11시 20분. 나의 하루 일과는 끝이 난다. 오전반 요가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30대와 40대이고 50대와 60대는 두세 명뿐이다. 모니카를 만난 곳은 요가 클래스였다.
주연이가 운영하는 카페는 삼양시가 끝나는 지점과 조천읍이 시작되는 귤 농장 안에 있다. 언제가 주연에게 카페 이름이 왜 아프리카냐고 물었다. 주연은 남편 상혁의 이모가 케냐에서 선교사님으로 일하고 있다며 이모를 존경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카페 이름을 아프리카로 정했다고 했다. 부부는 카페 수입의 10프로를 이모가 소속되어 있는 국제단체에 보내고 있었다.
카페 입구에는 목각으로 만든 검은색 마사이 전사가 서 있었다. 전사는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작은 두상에 용맹스러운 얼굴과 양쪽 귀 볼에는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탄탄한 어깨에는 얇은 담요가 걸쳐 있었고 오른손에는 나무 모양의 망치가 들려 있었다.
나는 시원한 한라봉 에이드를 주문했다. 당근 케이크를 만들고 있던 주연은 의아한 듯 나를 건너다보았다.
“너, 속 타는 일 있어?”
나는 캐더린의 삔 안쪽에 꽂혀 있던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노란색 종이 위에 3월 5일, 오후 2시, 아프리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주연아, 너 아프리카 언제 간다고 했지?”
“이번 여름에는 꼭 가려고. 요즈음 상혁 씨가 이모하고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이모가 사는 곳이 나이로비에서 12시간이나 떨어진 루오라는 지역이래. 동네 가까이에 빅토리아 호수가 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주연은 당근 케이크를 오븐에 넣고는 내 앞으로 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연희야, 무슨 일 있어? 차가운 음료수를 다 마시고.”
그녀는 내가 생각이 많을 때면 왼손으로 왼쪽 턱을 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래언덕 알지? 모니카가 한 달 전에 요가 클래스에 등록을 했거든. 제주 생활이 따분했는데 모니카가 파티에 나를 초대한 거야. 주연아, 파티에서 안 마시던 술을 너무 마셨는지, 그 똘아이 전도사 알지? 그때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더라.”
“연희야, 너 아직도…….”
주연의 입에서 안타까움이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카페 처마 끝에 달려있던 풍경이 흔들리며 카페 문이 열렸다. 시간은 정확히 오후 2시였다. 청바지 차림에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눈 아래까지 올라온 검은색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까멜리아 데이 때 쇼팽의 녹턴을 연주했었는데…….”
캐더린이라고 했던가. 나는 유난히 길고 하얀 그녀의 손이 기억났다. 그녀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제 이름은 제인이에요. 까멜리아 데이 때 이모가 저를 캐더린이라고 소개했었죠. 모래언덕 카페 1층 액자 속에 있던 그림 속 인물이 진짜 캐더린이에요. 모니카 이모는 제 엄마가 아니라 이모예요.”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을 정신없이 쏟아 놓았다.
“이모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아주 친절해요. 상대방을 금방 파악해서 마음을 사로잡아요. 하지만 상대가 내 사람이 되었다 싶으면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해요. 이모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족과 친척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무참하게 이용하는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녀는 숨이 가쁜지 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캐더린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모를 만나러 한국에 잠깐 나왔어요. 언니와 이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언니는 미국에 오자마자 잠적해 버렸어요. 제가 제주도에 오기 전에는 언니가 왜 사라졌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
캐더린이 아니라고 말하는 제인에게서 분노가 느껴졌다.
“이모는 저를 조카 제인이 아닌 자신의 딸 캐더린이라고 아예 믿고 있어요. 처음에는 이모가 저를 캐더린이라고 착각하는 줄로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까멜리아 데이 때 모니카는 제인에게 강제로 그림 속 캐더린과 똑같은 옷을 입혔다고 했다. 제인은 이모가 자신의 여권과 카드를 숨겨 놓고 통제와 감시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모의 본모습을 더 알고 싶으면 한림 박 사장님을 만나 주세요."
슬픈 눈을 가졌던 지혜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소녀는 나에게 작은 쪽지를 남겼었다.
‘언니, 그놈에게 걸려들면 불행해져요.’
요가 수업을 마치고 숨을 고르는 사이 모니카가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잡티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곱게 화장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연희 씨, 저와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나요?”
나는 고개로 대답을 대신했다. 햇살이 내려앉은 카페 창가에 모니카가 앉아 있었다.
“까멜리아 데이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날 피아노 연주도 너무 좋았고요.”
그녀는 샤넬 반지를 낀 왼손 중지로 테이블 위를 살살 두드렸다.
“캐더린이 연희 씨를 만났다는 것, 알고 있어요.”
나는 캐더린을 미행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 대신 캐더린은 자신의 이름을 제인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나를 엄마가 아닌 이모라고 말했겠죠? 라며 내 얼굴을 살폈다. 모니카는 모래언덕 카페를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입술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의 성공을 위해 희생된 사람이 캐더린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는 차근차근 말을 시처럼 읊어 나갔다.
“저와 떨어져 지낸 캐더린은 다행히 조카 제인과 잘 지냈어요. 둘은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좋아했고 능력까지 인정받아 같은 음대에 입학을 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외할아버지의 피가 외손녀들에게 흘러간 것 같다며 그녀의 입가에 기묘한 웃음이 보였다. 그러나 얼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아이는 친자매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어요. 둘은 가끔씩 바닷가로 수영을 하러 갔어요. 그날 제인이 파도에 떠내려가지만 않았어도 캐더린은 자신을 제인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웠다. 창 밖으로 가느다란 눈발이 햇살에 부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