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 들어 간 삼계탕

케냐에서 아프면 큰일이다

by Baraka

닭 중에서 제일 작은 사이즈는 스프링이라고 한다. 이 작은 닭은 냉장 코너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냉동 코너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종종 닭백숙을 만들 때는 큰 사이즈를 반으로 잘라 물에 이것저것 넣고 손쉽게 끓여 먹곤 다. 그러나 오늘은 H의 가족을 위한 요리이기에 삼계탕을 만들기로 했다. 꽁꽁 얼은 닭 봉지를 물에 담가 한참이나 녹였다. 닭 몸통에 남아있는 털과 기름을 제거하고 뱃속에 고인 핏물과 찌꺼기를 손가락으로 후벼 파냈다.


며칠 전 H는 위출혈과 혈변으로 고생을 했다. 그녀는 새벽에 속이 불편해서 화장실로 달려갔고 전날에 먹은 것을 다 토하고는 기절하듯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나이로비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입원을 해서 검진을 받고 싶었지만, 한국돈 6백만 원을 데포지로 내야만 해서 수액만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H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하게 자신의 몸 상태를 말하며 어지러워서 수혈을 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될 수 있는 데로 빨리 한국으로 가서 검사를 받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그녀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아이들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과 주위 분들이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자 출국을 결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며 기도했다. 그녀는 부리나케 코로나19 부스터 샷을 맞고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곤 연락이 왔다. 도착한 다음날 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했고 그다음 날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십이장에 출혈이 있었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현재, 그녀는 한국에서 약을 복용하며 쉼을 갖고 있는 중이다.


나이로비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은 나이로비 대학 병원과 아가칸 종합병원이다. 병원비가 워낙 비싼 곳이다 보니 케냐의 부유층 사람들이나 갈 수 있다. 이곳 의사의 기술을 믿기 힘든 사람들은 인도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하는데 '의료 여행'비즈니스가 꽤 인기가 좋다. 백인들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남아공으로 가거나 본국으로 가기도 하며 한국인들은 당연히 고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의 막대 딸은 만 4살쯤에 복막염으로 나이로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2012년 병원비가 한국돈으로 약 5백만 원쯤 나왔다. 다행히도 여행자보험을 들어놓았기에 도움이 되었지만 그 돈으로도 부족했다.

요즈음도 한국인들은 출산을 위해 한국행을 선택한다. 15년 전에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비용은 2백만 원쯤 되었다. 한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비용 문제도 있겠으나 안전한 의료시설과 가족들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물기를 뺀 닭 배속에 불려놓은 숙주 콩을 한 숟가락 넣고 찹쌀 대신에 잡곡밥을 두 숟가락 넣었다. 밤 대신에 딱딱한 당근을 넣고 대추 세알과 알싸한 로칼 마늘과 다시 녹두 콩을 넣었다. 이쑤시개로 닭의 목과 속을 꽉 채운 배를 꼭꼭 여며주었다. 한 마리, 한 마리 들통에 닭을 눕혔다. 정수한 물을 넣고 남은 녹두 콩과 대추를 휘리릭 뿌려주고 황기 대신에 커다란 상황버섯 한 덩이를 넣었다. 닭에서 우러나오는 거품을 한국자, 한국자 건져 올리며 H의 건강과 그녀의 가족을 위해 기도를 했다. 부디, H에게는 건강을...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위로를...

다음날 오후, 삼계탕과 잘 익은 알타리와 배추김치를 오토바이 서비스로 보냈다. 나이로비의 한국 식당에서 파는 삼계탕처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엄마와 아내가 떠난 자리에 힘이 되길 바랄 뿐이다.

전기가 끊긴 지 4일째이다. 어젯밤부터 물까지 안 나온다. 미리 받아 놓았던 정수물로 아이들은 샤워를 했다. 아침에는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학교에 갔다. 불평이 별로 없던 큰아이 입에서 노트북 배터리가 방전되어 숙제가 밀렸다고 한다.

이 와중에 H의 가족을 위해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팍팍 넣은 닭조림탕을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도 요리할 정수물 한 통이 남아있으니 '하쿠나 마타타'다.

얼큰한 냄새가 주방으로 퍼지자 나는 H가 속히 쾌유되어 예전처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만나길 두 손을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