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미 씨의 삶은 별로 설렘이 없다. 끓다 만 숭늉처럼 밍숭밍숭하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에 가슴이 콩닥거리는 기쁨을 하나 만나게 된다.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보니 혼자서만이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었다. 그 일은 이제 막 4개월이 된 아기를 가슴에 안고부터였다. 젖살이 물씬 오른 아기의 두 볼을 마주 대하는 순간, 몸속 저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환희가 몰려오는가 싶더니 울컥한 감정이 솟구쳐 오른 것이다. 손자를 본 할머니의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싶은 것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희한한 감정이었다. 참 이상한 것은 이 고귀한 생명 앞에서 다 잊고 지내던 아픔이 살아났다.
봄바람이 칼날처럼 차가운 날이었다. 미미 씨는 선배언니의 자취방에 가기 위해서 지하철 2호선 아연 역에 내려서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유난히 지하가 깊었던 아연역은 지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만 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세 계단 씩 뛰어오르면 금방이라도 입구에 도착했을 텐데 한 발자국도 걷기조차 힘들었다. 모든 에너지가 몸 밖으로 다 빠져나간 것처럼 하늘이 빙빙 돌았다. 미미 씨의 앞으로 구부정한 허리로 계단을 등산하듯 오르시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보였다. 뒷짐을 진 할머니의 손을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붙잡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버거웠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까지 턱 찾다. 그녀는 차가운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차가운 벽에 한참이나 기대어 있었다.
미미 씨의 어린 시절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러다가 고 1학년이었던 무더운 여름에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된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는 수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들이 집 밖에서 놀기라도 하면 교회 종소리는 시계의 역할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종소리가 아닌 찬송가 멜로디가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미미 씨의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던 미미 씨는 처음으로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나가게 된다. 동네친구들은 혼자서 교회에 들어서는 그녀를 보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집안의 형편으로 여상을 다니던 미미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취업을 한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부지런히 자격증을 취득해 놓은 것이 빠른 취업에 도움이 되었다. 서울로 상경한 후 6개월은 친척 집에서 지내다가 어느 토요일 오후에 명동거리의 한복판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친구와 미미 씨는 곧바로 난곡사거리에서 자취를 한다.
교회는 자연스럽게 집 근처로 나가게 된다. 전교인 300명쯤 되는 교회였지만 청년부의 지도자는 없었다.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토요일 저녁마다 교회에 모여서 모임을 갖었다. 어느 날, 신학교를 다닌다는 삼십 대 초반쯤 돼 보이는 분이 청년부 담당자로 왔다. 교회에서는 그를 전도사님이라고 불렀다. 키가 작고 똘똘하게 생긴 전도사는 설교시간에는 피를 토하듯 열정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무척이나 강조했다. 교회 금요기도회가 끝나면 청년들을 인솔해서 구국기도를 한다는 삼각산을 올라갔다. 미미 씨 또한 교회 선배들 속에 섞여서 간절히, 열정적으로 민족의 평화통일과 경제성장을 위해 부르짖었다. 교회 청년들은 전도사를 점점 신뢰하며 존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