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bari Jan 30. 2024

우아한 거짓말

영화 감상문

  영화는 엄마인 현숙이 카레와 계란프라이를 준비해서 세 식구가 함께 아침을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거실 창문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평온한 아침에 밥을 먹던 천지가 엄마에게 조심스럽 MP3을 사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날 천지가 사고가 아닌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아이가 집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모녀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길 원했다.  모녀는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모녀가 새로 이사 간 곳은 오래된 5층짜리 초원아파트였다. 집은 좁고 지저분했다. 그녀들의 옆집에는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머리카락이 긴 추상박이라는 총각이 산다. 아파트 단지 가까이에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보신각이라는 중국집이 있었다. 그 집의 딸은 현숙의 둘째 딸인 천지의 친구 화연이었다. 이사 첫날 두모녀는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을 시킨다. 음식을 먹는 사람은 두 사람이지만 3인분의 양을 주문했다. 마치, 천지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

  자기표현이 확실한 고등학생인 만지, 그녀의 여동생은 똑똑하지만 조심스러운 성격인 중학생 천지다. 자매의 아빠는 9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고 동네 마트 식품코너에서 두부를 판매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천지의 죽음으로 남겨진 모녀는 괴로워한다. 천지가 살아있을 때 여러 모습으로 힘든 부분을 표현했것만 쿨한 언니와 생활을 책임지는 엄마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못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안 함과 죄책감을 갖었. 그리고 만지는 천지가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키가 작고 똑똑한 천지에게는 초등학교 친구인 화연과 중학교 때 같은 반이 . 돈쓰기를 좋아하는 화연의 주위에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천지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화연은 천지와 가장 친한 척을 하면서 천지가 다른 친구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가로막았고 결국 은따(은근슬쩍 따돌림)를 시켰다. 결국 천지는 친구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말을 친구들이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천지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우울증을 앓게 된다.  천지가 자주 가던 도서관에서 추상박을 만나게 되면서 천지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할 수없던 고민을 그에게 꺼내놓게 된다. 십 대의 아이들에게는 친구들은 전부이다. 친구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자존감을 갖게 되고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얻게 된다. 그러나 천지는 끝내 그 공동체에 합류하지 못했다. 화연이 그 중심서 천지를 밀어냈던 것이다. 천지는 결국 고민 끝에 죽음으로 은따의 삶을 종료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유언을 5개의 실타래 안에 남긴다. 실타래의 주인공은 엄마, 언니, 우아하게 따돌림을 한 화연, 한때 절친이었다가 뼈를 때리는 말을 하던 미라, 그리고 한 개는 미래의 그 누군가에게 전달을 한다. 천지는 작은 쪽지 안에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베푼다.


  우아한 거짓말의 영화를 보면서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그 영화에서는 가해자가 물리적으로까지 피해자를 괴롭혔고 문동은은 괴로움 끝에 복수를 준비했고  가해자의 중심에 있던 연지를 추락시키고 만다. 그러나 복수를 이룬 동은은 행복했을까. 행복은 아니지만 더 이상 마음과 생각 속에서 연지에 대한 복수는 멈추었을 것이다. 반면 우아한 거짓말 속의 어린 천지는 죽음을 선택함으로 복수와 용서를 함께 베푼다. 외람된 생각일 수는 있겠으나 과히 예수가 말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가까운 모습이다.

  화연은 천지가 죽은 뒤에서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그녀를 책망하는 듯한 친구들에게 오히려 공범자라고 한다.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친구들 또한 소극적으로 침묵한 공범자들이다. 그 심리를 다시 이용하는 화연. 영화 속 화연은 악 자체이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천지가 절친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용한다. 거기에다가 만 지가 자신을 자꾸 추적하자 그녀는 천지와 맺은 절친계약서까지 찢어버리고 추상박이 천지와 도서관에서 자주 만났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만 지에게 둘의 관계를 의심스럽다는 정보를 흘린다. 그뿐 아니라 하연은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다면 부모가 운영하는 보신각 중국집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내고 배달한 그릇들을 수거해서 다른 곳에 버린다. 이렇게 영악한 화연을 순진한 천지가 이겨 낼 수 있단 말인가. 끝내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만지는 화연이 미웠다. 물론 엄마 현숙은 그 사실을 알고 일부로 이사를 화연부모가 사는 아파트로 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만지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화연에게 용서의 손을 내밀고 현숙은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에 대한 뒤늦은 미안함으로 용기를 주기도 한다. 또한 모녀는 천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복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화연의 교묘한 성격이 얄미웠다. 칼보다 더 날카로운 미라의 말이 화연보다 더 밉기도 했다. 내가 만약 천지라면 화연과 미라와 한판 붙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얄미운 존재들이다.  특별히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피해자의 중심에 서 있다면 가해자를 용서하는 데는 그리 쉽지 않을뿐더러 어쩜 평생토록 마음속에 쓴 뿌리로 남을 것이다.


  나 또한 20대 초반에 신뢰하던 교회 사역자로부터 성추행과 신앙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적이 있다. 사건은 나의 삶과 가치관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참으로 그가 미웠다. 그 미움을 털어내기 위해서 수없는 밤을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용서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과정의 시간이 20년쯤이나 지나서야 해결이 되었다. 그동안 수시로 그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나를 자책하며 용서를 선포했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꿈속에 나타나서 괴롭혔다. 그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기까지는  20대와 30대의 많은 날들을 아파해야 만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내가 멈추지 않았던 것은 나보다 더 큰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작은 사랑의 행위였다. 그에 대한 용서는 어쩜 다른 이들을 보듬어 주면서 천천히 해결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사과를 듣지 않았지만 이젠 그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 그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그와 상관없이 자유롭고 평화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