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하수체 선종으로 인한 말단비대증 수술 후기
언제부터인가 생리를 안 하기 시작했다.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정직원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계속 계약직만 유지하다,
겨우 끈기를 인정받아 영업소 최초로 여자 팀장을 달 수 있는 기회가 왔던 해였다.
쓸데없이 연차나 휴가를 써서 병원을 갈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큰 병이었어도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팀장 진급을 앞두고 내 몸이 이상하다는 걸 최대한 부정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직장도 아닌데 말이다. 그놈의 자존심이 대체 뭐라고.
정직원이 되고 난 뒤 2017년쯤 정직원만 시켜주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한창 현장업무를 돌던 중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건강검진 결과 중 이상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생리 제대로 하고 계시나요? 프로락틴 수치가 500이 넘으시는데, 이 정도 수치면 큰 병원 가보셔야 해요."
프로락틴이 대체 뭐지? 수치가 500이 넘는 게 심각한 건가?
전화를 끊고 나서 기계를 돌려놓고 인터넷 검색창에 프로락틴 수치를 검색해 보았다.
프로락틴의 정상 수치는 여성 20ng/mL, 남성 30ng/mL 미만입니다.
정상 수치 20이라면, 지금 내가 전화받았을 때 500이라 들은 게 제대로 들은 건가?
기계가 다 돌아가며 완료상태를 띄웠지만, 나는 그대로 멈추어 서서 통화녹음 내역을 찾아들었다.
"프로락틴 수치가 500이 넘으시는데, 이 정도 수치면..."
뒤로 가기 버튼을 엄지가 닳도록 두드려댔다. 핸드폰이 아니라 심장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병에 걸린 걸까...? '
오랜 자취생활로 인한 엉망인 식습관 때문일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겠다며 가까이했던 술담배 덕분일까?
어렸을 때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다양한 문제들 때문일까?
원인을 찾으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어떻게 치료할지가 중요할 뿐.
어쩌면 이때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내 삶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가장 큰 병원의 신경외과에 진료예약을 잡았다.
MRI와 피검사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덤덤하게 말하셨다.
"뇌종양이네요, 정확히는 뇌하수체 선종이라고 뇌하수체에 생기는 종양입니다."
어렸을 때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에서 많이 나오던 질병 아닌가?
어쩐지 헛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눌러대며 의사 선생님께 질문했다.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은 정해진 답변처럼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종양이 커 보이진 않는데... 약물 치료가 가능하고, 물리적 치료가 가능한데 어떻게 하실래요?
물리적 치료를 권장하긴 하지만 약물치료도 가능은 합니다."
굳이.. 물리적 치료를 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 회사에서 입지를 제대로 다지지도 못했는데 굳이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픈 사람이라는 게 밝혀지면 버려질지도 모른다. 불안감이 날 감쌌다.
"그럼 약물치료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선택이 나에게 약 4년간 작았던 종양이 뇌하수체를 전부 감싸는 3cm가 되고 말단비대증에 걸리게 할 줄은,
카버락틴정 또는 팔로델정을 먹으며 종양이 뇌대경동맥을 꽁꽁 싸맬 때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큰 병에 걸리면 여러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라는 말이
헛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음을 직접 체험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제 내가 얼마나 미련하게 내 몸을 망쳤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그때 내가 했던 선택들이 나에게 최선이었음을 지금의 나라면 이해해주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뇌하수체 선종은 국내 3대 뇌종양으로 불리지만 또 흔히 보이는 질병은 아니며,
국내 질병분류에서는 양성종양으로 분류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병리학적 악성종양으로 분류하여 암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대에 큰 병을 앓고 30대에 이르러서 서서히 완치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처음 이 병을 진단받고 카페나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지만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신나게 병을 키워대다 2021년도에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물리적 제거수술을 받고 완치를 앞두기까지
메모해 두었던 사소한 일기들을 시리즈 형식으로 풀어볼까 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회상하면서 나 자신이 다시 열심히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