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 30분쯤 수술이 끝났다. 눈을 뜨자마자 서너 명의 간호사가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고
나는 당장 목구멍에 걸리적거리는 고통스러운 산소호스를 잡아당겨 빼내고 싶었지만,
막상 그럴 힘은 하나도 없어 앞니와 혀를 이용해 산소호스를 엄청나게 밀어댔던 기억이 난다.
고통을 상쇄시켜보려 했던 걸까? 치아로 호스를 얼마나 깨물어댔는지 퇴원 후에도 앞니가 너무 시려 치과에 방문했더니 과하게 힘을 주어서 신경이 눌려있다고 했다. 결국 한동안 치과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
핑핑 도는 눈앞과 계속해서 토해내는 피거품덕에 점점 힘이 빠지고 얌전히 굴기 시작했다.
폐 안에 남아있는 수면가스를 다 빼줘야 한다며 강제로 호스를 더 쑤셔 넣고 계속해서 숨을 쉬라고 하는데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아무 생각도 저항할 마음도 없어졌다.
'그래요, 나를 고무인형처럼 대해주세요. 힘없이 고통을 받으리라.'
평소 주삿바늘이나 스케일링 같은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고통에는 엄청 민감하게 반응했었는데,
오히려 내가 계산할 수 있는 역치를 넘어선 고통에는 현실감각이 희미해지며 점점 아무런 생각도 없어지는 게 신기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시는 여러 의료진들이 돌아가며 정말 나에게 잘 참으신다고 계속 칭찬해 주셨다. 아파죽겠는데 자꾸 칭찬해서 정신이 더 없었던 기억도 났지만 또, 내심 묘하게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나 보다.
간호사님들이 쉴 새 없이 나의 피와 땀을 닦아주시는게 참 존경스럽고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거의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아홉 시가 넘어갈 때쯤, 어느 정도 숨이 돌아와 호흡기도 떼고
아래에서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산소호흡기 같은 것을 턱에 대주고 가셨는데 그것 덕분에 드디어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중간중간 엑스레이도 찍고 피범벅이 된 옷도 갈아입혀주시다 오후 11시쯤 호흡도 알아서 잘하신다며 호흡기도 떼주셨다.
계속해서 드는 오한에 이불 두 겹에 나를 꽁꽁 싸매주셨는데 내 체온이 계속 오락가락했는지
정신이 들고 보니 이불은 두 겹에 양 겨드랑이엔 아이스팩을 하고 있는 '살아있기만 한 인간' 그 자체가 되었다.
오른쪽엔 심박수를 체크하는 기계와 알 수 없는 무수한 선들이 가득하고 왼손에는 링거, 식염수, 진통제 따위의 무수한 선이 연결되어있었다.
그 선들이 마치 중환자실을 가득 채울 것 만 같은 압박감에 나는 애써 벽에 붙어있는 시계만 바라보았다.
아래에는 소변줄과 왼쪽 눈에 계속해서 흐르는 피 그리고 코도 거즈로 꽁꽁 싸매져 분비물이 계속 흘러서 옆에 앉아서 쉴 새 없이 간호사분이 닦아주셨는데 뭔가 우스운 꼴이 된 것 같은 기분과 또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당장 가장 큰 나의 숙제는 '살아있기' 니까. 버텨내는데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때때로 의료진분들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어 몇 개인지, 여기가 지금 어디 병원인지, 보호자 성함이 무언지 물어보시곤 했다.
정신도 없고 말을 내뱉으려고 몸에 힘을 주는 것 자체가 힘에 겨워서 대충대충 대답했는데 꽤 집요하게 물어보셨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지능력이 제대로 돌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던 것 같았다.
중환자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뜨면 벽에 붙어있는 시계만 보며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빠지며 속으로 불평하는 일 밖에 없었다.
잠들었다 눈을 뜨면 고작 30~40분밖에 흐르지않았다는 사실에 매번 절망했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코가 거즈로 잔뜩 막혀있었기 때문에 입으로만 숨을 쉴 수 있어 잠결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면 숨을 못쉬어서 그럴때마다 간호사선생님이 와주셔서 강제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주셨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정확히 네 가지였다.
첫 번째 시계 보기 그 다음 눈감기 다시 또 눈뜨기 마지막으로 가만히 생각하기.
어쩐지 관 속에 누워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관이 점점 물에 잠기는 듯 했다.
가만히 누워 과거의 일들을 떠올렸다. 어느날 친구들과 죽기 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단 죽기 싫어 아등바등거릴 것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중환자실에서 어쩌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살아남기. 아마 나는 평생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에만 해도 한 단계 한 단계 더 편해지고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생존본능이 머리를 좀 더 차갑게 만들어주었던건지
눈을 감았다 뜨면 30분도 지나가지 않은 현실이 괴로웠지만 속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달랬다.
내일 좀 더 회복해서 일반 병실은 언제 갈 수 있는지 꼭 물어봐야지,
호스는 언제 뗄 수 있는지, 소변줄도 언제 뗄 수 있는지, 밥은 언제부터 먹는지...
계속해서 질문거리를 생각해 보며 시간을 하염없이 흘려보냈다.
그리고 언제나 지나가지 않는 일은 없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