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시간이 되었고 분주히 움직이시던 간호사 선생님께서 "식사하실 수 있으시겠어요?"라고 물어보셨다.
하루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멍한 정신으로 있었던 탓인지 입맛은 없었지만
중환자실을 빨리 나가려면 잘 먹고 잘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먹을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환자실의 첫 아침은 하얀 죽과 잘게 잘린 소고기 장조림, 맑은 된장국과 동치미였다.
다른 분들은 식사를 못 하셔서 나 홀로 식판 앞에 힘겹게 앉아서 간호사 선생님께서 떠먹여 주는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중간정도 먹다 미안한 기분도 들고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 먹을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했는데,
맙소사 혼자 숟가락도 겨우 들면서 식판에 줄줄 흘려가며 먹는 모습이 아마 제삼자 입장에선 얼마나 추할까.
그래도 뭔가 혼자 다 먹어야만 어떤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간호사님 제가 이만큼이나 할 수 있어요, 저 진짜 괜찮아요!!' 같은 어필이라 해야 할까,
같이 딸려온 플레인 요거트도 비록 뚜껑은 못 뜯어서 부탁드리긴 했지만 숟가락을 엄지와 검지로 힘겹게 잡아서 박박 긁어먹었다.
그때 먹은 플레인 요거트가 얼마나 맛있던지 병실에 있는 내내 계속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아무 자극이 없는 방에서 시계만 보며 눈을 감았다 뜨기만 해야 하는 현실에 몸부림쳤지만
그래도 선물처럼 시간은 흘러갔다. 회진시간이 되었고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보니 교수님이 이마에 손을 짚어주시며 고생 많았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더 고생 많으셨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제대로 안 나와서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전에 먹었던 '카베골린'이라는 약 덕분에 종양이 혈관에 죄다 들러붙어 전부 제거는 불가능했지만
MRI상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최대한 제거를 했고 그 과정에서 눈썹뼈도 절개했던 대수술이었다며
교수님 본인 역시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다며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의사의 웃음만큼 안심되는 게 어딨겠냐만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100프로 제거가 안된 사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전부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들어간 수술임에도 '기적처럼 완벽하게 해결된 상황'을 은근히 바라왔던 나 자신이 참 어리석고 모자라다고 느껴졌다.
최악을 상상한다면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말해왔으면서도 항상 은연중에 그 바로 밑바닥 위에 쿠션을 깔고 어중간한 최악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다 보면 꼭 그 바로 밑에서 더욱 어설프게 떨어져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유리조각들을 온전히 온몸을 부딪혀 마음이 크게 다치곤 했다.
다음부턴 차라리 최악을 상상할 거라면 정말 최악을 상상하자고 되뇌면서도 아직도 쿠션 바로 밑에 어설프게 떨어져 마음이 다치게 되는 게 욕심이라는 게 참 어쩔 수 없나 보다.
조금만 더 욕심을 버리자, 항상 내가 모든 것에 최선일 수 없듯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되내어 본다.
언젠간 어중간한 최악이 아닌 완전한 최악이어도 맞이할 수 있는 배포가 생긴다면 좋겠다.
이번의 맞이한 최악을 통해서도 배운 게 많다고 느꼈다.
어쩔 수 없는 공포, 내 영역 밖의 일들, 하지만 벌어지는 일들을 이겨내는 법을 조금이라도 배웠기를.
왼쪽 눈을 스스로 뜰 수 없는터라 교수님이 강제로 눈덩이를 벌려 내 눈알이 잘 움직이는지 확인해 보시곤
마지막으로 안도의 웃음을 내뱉으셨다.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교수님은 미디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의사 선생님들 특유의 잔인한 표현을 굉장히 해맑게 내게 해주셨다. 혈관에 있는 종양들을 최대한 절제한다고 시신경을 엄청 주물럭거렸다며
왼쪽 눈알도 잘 움직이고 참 다행이라며 빠르면 오늘 오후에는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교수님이 떠나신 뒤에도 간호사님께 한두 번 더 물어봤었다.
확실히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오늘 일반 병실에 가게 되면 소변줄도 떼게 될까요?"
"아마 괜찮으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소변줄은 사실 신경을 안 쓰고 있으면 아프거나 거슬리는 기구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소변줄이 내 마지막 '인간력'처럼 느껴져서 얼른 떼어버리고 싶었다. 대소변은 스스로 가누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오후 점심이 나왔다. 간호사님을 쳐다보며 '혼자서 먹을 수 있어요'라는 눈빛을 보내보았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절반은 흘리고 절반은 먹었지만 어쨌든 해냈다.
기분 좋은 고양감을 느끼며 금방 잠이 들었는데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고
눈을 뜨니 아버지가 잘했다고 고생 많았다며 연신 칭찬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고생은 의료진이 했지 뭐 나는 누워있기만 했는걸."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을 툭 던져놨지만 그래도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가져다주셔서 메신저를 열어보니 친구들이 걱정하는 메시지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4~5시간 만에 돌아올 거라 말해놓고 하루 넘게 중환자실에 있던 터라 친구들이 많이 걱정할 것 같아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친구 중 한 명이 아버지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서 통화를 하고 나서야 안심했다고 한다.
어쩐지 걱정시킨 게 미안하기도 하고, 별일 아닌척하고 싶은 마음에 기억은 제대로 안 나지만 별 시답지 않은 골 때리는 답장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중환자실에서 제대로 쉴 수 없었어서 일반 병실로 가면 좀 쉴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