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병실로 옮기고 다음날부터는 놀랍도록 호전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체온이나 혈압이 다 잡힌 건 아니었지만 내 자신의 의지가 굉장히 강했는 데다
그 의지를 받쳐줄 수 있는 젊은 신체 덕분이었을까. 기절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며 빠르게 회복세를 탔다.
교수님이나 병실의 다른 어른들께서 '젊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게 어쩐지 인정하기 싫은 기분도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꼭두새벽부터 허기짐에 깨어나서 눈 뜬 채로 아침 식사시간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평소엔 아침도 잘 먹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배가 너무 고파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아침 식사가 도착하자마자 누가 뺏어먹지도 않을 텐데 허겁지겁 음식들을 쑤셔 넣기 바빴다.
나는 식사 장면이나 누군가가 헐벗고 있는 사진이나 영상에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꼈었는데,
막상 내 자신이 힘겹게 음식을 씹어 삼키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마음 깊은 곳에서 역겨운 기분이 솟아올랐지만
얼른 잘 먹어서 빨리 회복을 하고 싶다는 묘한 집착이 나도 몰랐던 나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걸까?
'아프니까 빨리 영양분을 욱여넣어야 한다. 호불호에 상관없이 그저 먹어서 흡수한다.'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들어 괴로운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일단 아무 생각하지 말고 씹어 삼키자.
심지어 정해진 식단이 있다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며 아침 식사를 아주 싹싹 긁어먹었다.
아침을 마치 '짐승'처럼 욱여넣고 후식으로 딸려온 요거트도 전투적으로 먹어치웠다.
아버지가 천천히 먹으라며 걱정스레 건네준 물도 아주 빨리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런 나의 강력한 어필 덕분일까, 간호사 선생님이 생각보다 빨리 소변줄을 제거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소변줄을 뗀다는 생각에 너무 신난 나머지 밥을 다 먹자마자 소변줄은 언제 제거할 수 있는 거냐고 바로 여쭤보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그런 내가 귀찮지도 않으신지 많이 갑갑하냐며 바로 해드린다고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소변줄 제거는 생각보다 굉장한 고통을 수반했다.
소변줄을 잡아 다닐 테니 "아아아~" 해보세요라고 말씀하실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드디어 지긋지긋한 소변줄을 뗄 수 있다는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 대충 "와아~"하려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을 맛보았다. 목이 아파서 비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악우아악 같은 이상한 소리를 잔뜩 낸 채 소변줄 제거가 끝이 났다.
아프긴 아주 엄청나게 아팠지만 잠시뿐이었고 일단 속이 너무나 시원했다.
아픈 것보다 속 시원한 게 훨씬 커서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너도 3일간 내 안에서 고생 많았다.
사람이 참 간사한 동물 아니던가, 소변줄이 떼지자 머리에 박혀있는 핀은 언제 제거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주렁주렁 몸에 이것저것 달려있는 게 사실 너무 괴로웠다.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야만 집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텐데...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뽑아야 할 것들이 뽑혀있는 것보다 많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10시쯤 교수님 회진시간이 다가오고 교수님은 회복이 참 빨라서 다행이라며 뿌듯해하시는 걸 보니 어쩐지 기분이 으쓱해졌다.
코에 있는 패킹은 하루는 더 있어야겠지만, 머리의 핀은 오후쯤 뽑아주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이 어린아이를 달래주듯이 말씀하시자 내가 너무 징징거린 건 아닐까 싶어 괜스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환자'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자꾸 어리광을 부려왔던 걸지도 모른다.
교수님은 여기까지도 사실 다른 환자에 비해서 굉장히 빠르게 한 거라며 아직 피도 많이 흘렸고 체온이나 혈압도 정상은 아니니 조금 더 수혈을 받고 쉬다 보면 금방 퇴원날이 다가올 거라며 위로를 해주셨다.
내일 혈당과부하검사를 통해 성장호르몬 수치를 다시 한번 더 검사해 본다고 하셨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검사다.
여기서 성장호르몬이 정상수치라면 남아있는 잔여종양들은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라 완치에 가까워지고,
정상수치를 벗어난다면 감마나이프시술을 통해 계속해서 종양을 제거해 나가는 수밖에는 없다.
검사는 금요일 오전, 결과발표는 월요일. 지금은 목요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알고 있는 것.
'잘될 거야.' 나는 불안한 속을 연신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덮어씌우기 바빴다.
그래. 안되면 어쩔 건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나가는 수밖에 없지.
사는 게 그런 것 아닐까. 그냥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해보다가 그것마저도 안되면 그 아래에서 또다시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찾아 나서며 살아가는 거겠지.
담담하게 모든 걸 내려놓는 사람도 있을 테고, 손톱이 다 빠져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엔 전자의 담담함이 영화 같고 멋있다고 동경해오곤 했지만,
그동안의 나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 나는 후자가 아닐까? 후자일 것이다.
옹졸하고 비굴해 보여도 나는 끊임없이 '불편함'과 '힘듦'에서 도망가기 위해서 땅을 긁고 또 긁으며 길을 찾아 해메겠지.
지금의 나는 아직 옹졸해서 작은 빛이라도 보이면 아등바등 그 모든 것이 오롯이 나 혼자의 것인 줄 알고 기세등등하지만, 언젠간 세월이 흘러 손이 단단해져 남들이 눈치라도 챌 만큼의 빛을 공유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어쩌다 길을 찾으면 남들이 지나갈 수 있게 조금 더 큰 구멍을 파둘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삶에 초연하지 못하고 어쩌면 비굴한 내 자신이 좀 우스워도 글을 쓰면서 이것도 내 자신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왼쪽눈도 어느 정도 자의로 조금 뜰 수 있게 되었다. 완전 떠지지도 않고 분비물도 계속해서 나왔지만 그래, 어쩔 수 없지. 계속 감겨있던 왼쪽눈에 시원한 바람이 닿자 조금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계속 감겨있을 순 없지. 조금씩 노력해서 바깥공기에 왼쪽눈이 좀 익숙해졌다.
지금 당장 좋은 것만 떠올려보니 의외로 꽤 많았다. 운이 좋게 6인실 창가자리에 배치되고 회복력도 우리 병실 중에 내가 단연코 제일 좋았다.
코에 패킹까지 빼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에 핀도 뺄 수 있다면! 그래 그러다 보면 퇴원도 금방 하겠지.
퇴원이 조금 미뤄진 데다 퇴원 후에도 요양을 해야 하는 사실에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생각은 누군가가 돌려주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