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실 일반병실로 옮겼지만 아쉽게도 소변줄은 제거하지 못했다.
하긴, 스스로 움직일 힘이 전혀 없었다. 아뿔싸.
그래도 일반 병실로 돌아오니 핸드폰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 삼긴 했지만 사실은 그것마저도 좀 버거웠다.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 우리 집 고양이를 돌봐주는 친구에게 고양이는 잘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워낙 정신이 없어 같이 하던 게임의 아이템 이야기라던지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고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일반 병실에서 간단한 인지검사를 한번 더 했다.
지금이 몇 월 몇 시인지, 이름이 뭔지, 생년월일은 무엇인지 하는 간단한 내용들을 중환자실에서도 계속 물어보던 질문들이라 조금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있었는데 내 옆에 계신 환자분께서 속옷들이 막 널브러져 있어서 국가경제가 위태로워지고 세상이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 된 이야기를 너무나도 진지하고 단호하게 아무런 내용들을 나열하시는 그분을 보며 무서움을 느꼈다.
내가 정확히 인지능력이 되돌아온 상태가 맞는 건지, 내가 듣는 내용이 진짜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무서웠다.
그도 그럴게 간호사 선생님이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게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부러진 오른쪽 발도 다시 검사를 했어야 해서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침대째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발 CT와 뇌 MRI, 엑스레이 등을 다시 촬영했다. 여기저기 침대와 함께 엄청 돌아다녔지만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오는데 진이 잔뜩 빠진 터라 어지러웠지만 그저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
다른 뇌종양 환자들의 후기를 보았을 때 수술 끝나고 바로 다음에 하는 뇌 MRI가 그렇게 지옥 같다고 하는 글을 보고 지레짐작 겁먹었었는데,
내가 둔감한 건지 간호사 선생님이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고 당부의 당부를 하시며 힘내라고 응원해 주셨는데,
나는 MRI만 하면 왜 그렇게 잘 자는 걸까. 뇌에 버튼이라도 달린 것처럼.
어렸을 적부터 몇 번이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서도 항상 깊게 잘 자고 있어서 아버지가 참 민망해하셨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MRI 통(검색해 보니 환자가 들어가는 원통형 구조는 보어 Bore라고 한다)에만 들어가면 잠에서 방금 깬 비몽사몽한 상태로 누워있어서 검사 끝나면 항상 간호사 선생님이 웃으셨다.
그러면 나도 그냥 씩 웃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번에 일어나지 말고 천천히 옆으로 움직여 보라고 하셨는데 의외로 그 과정이 소변 줄 때문인지 어쩐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부러진 발은 핀을 박거나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운이 좋다면 그냥 알아서 잘 붙을 것 같다는 말에 골골대면서도 기뻐서 웃음이 나왔다.
문득 내 주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예전처럼 마실 수 없겠지, 아니 마시면 안 되고.
코에 달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패킹은 단 한 개도 제거를 못했다. 좀 더 걸릴 거라고 하셨는데
그 사실이 굉장히 화가 났다. 입으로만 숨 쉬고 밥 먹고 잠에 드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는데 아직 한참 남았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심술이 났다. 그래도 사회화된 어른으로서 티를 안 내려고 많이 참았지만 아마 티는 났을 것 같다.
하지만 계속 두 코가 막혀있다 보니 눈을 뜨고 말하고 숨 쉬는 모든 삼박자가 불편해 견딜 수 없었다.
특히 잠에 들 때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되면 스스로 목을 조르는 기분이라 눈이 번쩍 떠지면서 잠에서 깨는데 항상 그때마다 식은땀 범벅으로 깨는 기분이 최악이었다. 코막힘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라 해야 할까.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난 뒤의 긴 하루는 여전히 끝나지 않고 요동치는 혈압과 피를 많이 흘려댄 탓인지 오후엔 결국 수혈을 다시 받았다. 열도 높아졌다 낮아졌다 도저히 잡히지 않아서 이불 두 장을 덮고 아이스팩을 둘둘 두른 이상한 꼴로 잠을 청했다.
뇌하수체 종양은 채혈과의 싸움이라고 했던가, 중간중간 계속된 채혈과 혈당 체크, 혈압, 체온... 일반병실에 와도 쉬운 건 없는 거구나. 병원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엄청난 존경심이 생겼다.
그리고 신기했던 점이 뇨의가 있어야만 소변이 나오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소변이 착실하게 잘 찼었는지 중간중간 간호사선생님 혹은 아버지가 소변통을 체크하고 비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마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자괴감과 무기력함에 항상 일부러 자는 척을 하곤 했다.
소변줄이 갖다 주는 감정이 코 패킹과 부러진 발보다 더욱 비참하고 싫어서 얼른 소변줄을 떼고 싶었다.
하지만 자의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안달이 난 내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했다.
예전에 읽었던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의 구절이 생각났다.
우울한 생각이 꼬리를 물며 점점 더 깊은 우울의 상태로 빠져드는 현상을 '우울증의 하강나선'이라고 표현했다. 또 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상승나선'을 제시했다.
아주 작은 긍정적인 행동이나 선택으로 뇌에 긍정적인 회로를 자극하여 계속해서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래. 그래도 하나 해결하고 나면 또다시 다른 목표를 찾아서 힘을 내는 거야. 이 쓸데없는 목표의식 덕분에 좀 더 힘을 내서 빨리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나만의 상승나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주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일반병동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