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굳이 '나'라서가 아니야.

by HONG

입원은 7월 5일에 했지만 당일 이것저것 급하게 검사받는 게 너무 많아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입원하고 나서 잠도 거의 못 자고 뇌내비게이션과 MRI와 각종 피검사에 무슨 검사의 검사를 한밤 내내 해댔다.

발까지 부러진 덕분에 직접 움직이진 못하고 간호사님이 휠체어를 밀어주셨는데,

그때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6인실에서 나와 비록 검사실로 가는 중이었지만 여기저기 병원 복도를 휠체어로 쏘다니며 얼굴에 시원하게 닿는 바람이 좋았어서 못 잔 잠이 아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수술시간은 오전 일곱 시 삼십 분이었지만 한동안 머리를 감지 못할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미리 씻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수술시간까지 멍하게 앉아 간호사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일곱 시쯤 되었을까 침대째로 수술실로 이동한다는 말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물건을 잘 챙겨달라는 부탁과 함께 아버지와 꼭 마지막 같은 인사를 나눴다.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인해 아버지는 수술실 끝까지 따라올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연신 눈물을 훔쳐댔지만 나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연신 물건 안 잃어버리게 잘 챙기라는 당부를 하고 그대로 수술실 엘리베이터로 옮겨졌다.


걸어서는 이동을 못해 침대째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 뭔가 누워있으려니 멀미가 나는 기분이 들어서 혹시 그냥 앉아있어도 되냐고 간호사님께 여쭤보고 침대에 앉은 채로 슝슝 수술실로 이동했다.

어쩐지 알라딘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혼자 우뚝 앉아있어서 좀 웃기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입원할 때부터 실감도 나지 않고 별로 긴장도 되지 않았다. 항상 잡생각이 많은 편이라 생각이 복잡해질 것 같았는데 별 생각이 안 들어서 더 놀라웠다.

하루 종일 현실감각 없이 붕 떠있던 내 정신을 돌아오게 한건 마취과에서 교육이 끝난 뒤 수술대기실 같은 곳에서 어린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을 보고 나서였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는 아빠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아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손을 놓으면 잃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 모습이 아직도 너무 선명하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불행한 일들이 대체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끝없이 고민하고 이유를 찾아대던 나를 마주 할 수 있었다.


그냥 질병은 존재했고 그게 내가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누구보다 나쁘게 살아서? 또는 불행해서? 아니면 그럴만한 사람이라서?

그렇다면 내 옆에 작은 아이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아이에게 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던 내가 다시 보였다. 그저 나는 질병이 있었고 걸린 거다. 그게 굳이 '나'라서가 아니다.

이름도 모르는 가족에게 혼자 이상한 위로를 받고 복잡했던 마음이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씩씩하게 아빠에게 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너도 잘 될 거야, 나는 행복이나 행운은 믿지 않지만 그냥 잘 될 거라고 생각할게. 너도 나도 잘 나오자'


수술 전에는 치아검사를 하는데 수면 마취 중 약해진 치아나 임플란트가 기도를 막히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다음 간호사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해서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취약이 들어갈 땐 조금 아플 수도 있다. 환자분은 워낙 젊어서 잘 해내실 거다. 조금 추울 수도 있다 등등...

이런저런 대화가 끝나갈 무렵 수술실 문이 열렸다. 수술실 내부는 마치 게임화면 같았다.

다들 진지한 상황에서 게임화면 같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진지하지 않은가 싶기도 했지만

과하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마취과 선생님과 가볍게 인사를 했다.

누워서 조금 눈부신 수술실 천장을 바라보며 마취과 선생님이 여쭤보셨다.

"마취약 들어갑니다. 어떠세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전신마취는 혹여나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 굉장히 긴장이 되었는데 "와 천장이 막 돌아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마취과 선생님이 살짝 웃으시더니 입에 호흡기를 씌우시고나서 기억이 끊겼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 아니 중환자실이었다. 와 현대의학 진짜 최고.


의사 선생님이 수술 전 브리핑 때 강조 아닌 강조를 하셨던 말이 있다.

내 종양은 3cm 정도의 거대선종이며 비기능성이 아닌 기능성으로 끊임없이 뇌하수체를 자극해서 호르몬을 뿜는 종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최대한 절제를 해야 하며 어느 정도 절제 후에도 종양이 계속 호르몬을 뿜어내면 방사선치료와 주사요법으로 무조건 치료는 해야 하지만 완치가능성은 뇌하수체종양 쪽에서는 조금 희박한 케이스라 하셨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종양 녀석이 '시신경'은 조금 누른 정도라면 '뇌대경동맥'을 꽁꽁 싸맨 수준이라

완전 제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셨다. 하지만 크기가 워낙 크고 최대한 절제해서 물리적으로 없애야 하고 최대한 제거 가능성이 보인다면 왼쪽 눈썹 뼈를 절개해서 공격적으로 제거를 할 것이고 그러면 수술시간은 5~6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말하셨다.

하지만 제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코내시경으로만 절개하고 나머지 부분은 건들 수 없으므로 3~4시간 정도면 금방 끝나지만 절개를 하지 못하는 부분은 감마나이프요법으로 몇 년씩 치료를 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그래도 젊으니까 끝까지 해보자며 응원해 주신 기억이 난다.

완치가 힘든 병이라고 하니 사실 아버지와 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젊으니까 잘 버틸 수 있을 거라며 의사 선생님도 아버지도 위로를 건넸던 게 기억이 난다.



수술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6시간을 훌쩍 넘겨 8시간, 10시간이 넘어가자 아버지는 내 수술도중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대경동맥을 건드려서 잘못된 줄로만 알고 난리가 났었고,

연락했었던 친구들도 금방 다시 연락하겠다던 애가 연락이 안 되니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고 한다.


수술은 장장 12시간을 넘게 했다고 한다.

keyword
이전 03화엎친 데 덮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