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하수체 선종으로 인한 말단비대증 수술 후기
2017년쯤 가을쯤 처음 뇌종양을 진단받고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약만 먹으면 금방 사라질 거라는 심드렁한 의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탓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심각한 이야기만 가득했지만,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취사선택해가며 납득했다.
'그래 나이도 젊고, 종양도 크지 않댔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안타깝게도 이 무렵 나에겐 나를 도와줄 수 있을만한 어른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독립했던 나에겐 가족이라곤 아버지와 나. 단 둘만 있었는 데다
아버지의 처절한 현실감각 덕분에 우리 집은 늘 부유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도 암수술을 받고 회복기간에 있던 중이라 나를 신경 써 줄 여력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의 수술비와 생활자금이 필요해 내 이름으로 대출받은 돈을 내가 갚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회사에는 알릴 수 없었다. 나는 당장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처음엔 팔로델정을 처방받았을 무렵 약을 소분하여 용량을 점차 늘려가는 방식을 알지 못했다.
(애초에 설명도 안 해준 데다 시간 맞춰 먹으라고만 말해줬었다)
약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속 쓰림과 어지러움, 두통 등등...
그래도 하루에 한 알씩 같은 시간에 먹으라는 말에 알람을 맞춰놓고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약을 먹고 나면 신물이 올라오고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매번 잠을 설쳤지만,
어차피 먹어야 하는 거고 이만하면 수술하는 것보다는 싼 대가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반년 정도마다 경과를 관찰하러 갔을 때, 매번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며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의사는 이상하게도 종양이 잡히지 않는다며 약을 더 먹어볼 것을 권유했고
속이 너무 쓰려서 다른 약이 없냐고 물어봐서 그때부터 카버락틴정으로 바꿔줬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3년쯤 지났을 무렵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여전히 카버락틴정을 매저녁마다 먹었고 매년 건강검진에서 프로락틴 수치가 들쑥날쑥 이었다.
건강검진 결과 전화가 올 때마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과 함께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는 잘라냈다.
그리고 내가 다녔던 병원 신경외과의 담당의가 바뀌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환자분 수술을 받으셨어야 했을 거 같은데, 사정상 수술이 어렵다고 써져 있네요?
이 정도 기간이 지났으면 약으로는 어렵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성장호르몬도 이 정도 수치면 말단비대증일 것 같은데, 당과부하검사는 계속하셨었네요?"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료가 끝나고 병원 로비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말단비대증을 검색하자 인터넷에선 최악의 상황과 예시만을 내게 보여줬다.
목이 뻣뻣해지고 과도한 긴장이 내 몸을 압박했다. 숨을 쉬기 힘들고 이내 식은땀이 맺혔다.
'당과부하 검사가 성장호르몬 수치랑 관련 있는지도 전혀 몰랐어...'
철썩 같이 믿었던 병원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까, 아무것도 아닐 거라며 몸관리를 전혀 안 한 내 탓일까.
결국 수술을 해야 하면 회사에는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지?
갑상선 암도 확인해 보면 좋을 거라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 몸이 망가진 거지?
나한테 지금 보호자가 어디 있지?
괜찮냐고 연락 오는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메시지를 보냈다.
'나 병이 좀 심각한 것 같네'
화들짝 놀란 친구들에게서 지방에서 제일 잘한다는 내과를 추천받아 예약을 잡았다.
다행히 당일에 초진을 봐주겠다고 하여 바로 가서 피검사를 했던 것 같다.
mri 영상도 CD에 담아 병원에 제출하고 다음 진료는 평일에만 가능하다는데 괜찮냐는 접수처의 질문에
'회사에다가 뭐라 말하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이젠 안돼. 이제 진짜 내 몸도 생각해야 돼.
"네 평일도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게 목이 졸린 듯이 힘들었다.
지금 글을 쓰며 돌이켜보면, 사람이 기댈 곳 없이 재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몰리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는다.
저때의 무렵 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데다
성인이 되자마자 들어갔던 그 직장이 내게 항상 과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모두에게 나는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나는 도무지 용서가 안 됐다.
회사에 하루 휴가를 냈지만 내가 하는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반차로 바꾸면 안 되겠냐는 소장의 말에
최대한 빨리 오겠다고 대답하고 결과를 들으러 갔던 날이었다.
노년의 의사 선생님이 따뜻한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검사결과가 엉망이네...
솔직히 말하면, 그 병원에서 왜 이렇게 진찰을 내렸는지 모르겠어.
아 그리고 초음파 검사 결과에 종양 중에 좀 애매한 게 있어서 그 부분 조직검사를 하면 좋겠는데...
진찰이 끝나면 여기 말고 서울에 큰 병원에 가보는 게 낫겠어"
마취를 해야 하는데 다음 일정이 있냐는 간호사 선생님의 질문에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제가 반차를 써서... 마취 없이 해도 될까요?"
"중심침생검은 마취 안 하면 많이 아프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당장 회사에 못 간다고 말하는 것보다 아픈 게 나았다.
조직검사 부분의 감각을 최대한 없애려 간호사 선생님은 차가운 무언가로 쉴 새 없이 내 목을 문질러주었다.
이윽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고 목 아래쪽에 두꺼운 바늘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흔히 느껴본 고통과는 다른 종류의 생경한 고통에 눈을 질끈 감고 옷 끝자락을 움켜쥐었다.
'목을 찔리면 이런 기분일 수도 있겠구나'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체감상 영원 같았던 조직검사가 끝났다.
아픔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렸지만 애써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사무실에 복귀했다.
목에 밴드를 붙이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직원들이 무슨 죽을병에 걸렸냐며 실없이 말을 던졌다.
어쩐지 웃음이 나와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 뇌종양이라는데, 갑상선 암도 있을 수 있다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