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NOLOGU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아름 Nov 04. 2023

오랜 친구

우린 각자의 위치에서 익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

캐나다를 떠난 지 22년이다. 같이 공부했던 로컬 친구를 못 본 지가 22년이라는 말이다. 가끔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아주 가끔 통화를 하면서 생존과 안부를 확인하던 우리였다. 서로의 성향을 너무 잘 아니 그다지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각자의 삶이 바빠 멀리 있는 친구를 서로 챙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22년 만에 비디오콜로 두어 시간 대화를 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외모며, 좀 더 희어진 머리카락, 가족들 소식 등 한참을 떠들어대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는 것은 왜일까? 캐나다가 그리워서도 아니고 친구가 갑자기 무척 보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뭐랄까. 오랜 친구와의 대화가 주는 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많은 설명이 없어도 그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대화. 속으로 눈물을 삼키긴 했지만 사실 울고 싶었다.



변함없이 읽고 쓰고 가르치고 사색하며 살아온 그 삶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신을 믿지만 교회는 가지 않는 그. 수십 년 동안 예배 한번 안 드린 그가 얼마 전부터 하루를 마감하며 감사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니 안정적이고 부유한 국가에서 태어나 고통받지 않고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한 첫 번째 감사를 하다 보니 감사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밤다 기도를 하는 것이 좋아서 이제 매일 할 것만 같다고 하는 그가 아름다워 보인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깊고 풍성해진 그는 확실히 익어가고 있었다. 그는 나를 iron woman이라고 부르면서도  너무 순진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가 맞다. 그럼에도 내가 순진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 올해 들어 깨달았다.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또는 멍청하게 아름답게만 보고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느끼는, 그리고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 내가 바보인지 모르지만 아름답다. 여전히. 나의 인생도 그렇게 익어가고 있다.


 나의 근황을 알고 있는 그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니 그의 기도 속에 나도 들어있겠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You are my dear friend…”

그랬지. 그리고 그러하지.

오랜 친구의 말 한마디에 마음의 피로가 사라진다.

작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아름답게 익어가는 인생을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