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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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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Jun 25. 2023

마음에도 바를 수 있는 빨간약이 있다면

고양이 등 뒤에서 한없이 작아진 그녀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갑자기 연락드려 미안해요. 부탁이 있어요. 길고양이 두 마리를 돌봐주세요.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매월 사료도 보내고 돌봄비로 매월 5만 원씩 자동이체해서 보내드릴게요. 

제발 부탁이에요.... “

일주일 전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내 엄마에게 고양이 ‘호순이’를 입양 보낸 보호자다. 

그녀와 나는 호순이로 인해 5년 전 인연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정말 다급하게 들리다 못해 곧 울 것만 같았다. 

사실 입양받을 고양이를 찾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 호순이 짝꿍 나비가 세상을 떠났다. 호순이는 나비를 잃은 슬픔에 일주일간 곡기를 끊었다고 했다. 엄마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같다고... 호순이가 외로워 혹여나 잘못될까 봐 얼른 친구를 구해오라고 나에게 명을 내리셨던 터였다. 



”며칠 전 아기 고양이가 결국 하늘나라로 가서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그보다 지금 마음이 더 찢어질 것만 같아요."

”...... “

”제가 사무실에서 매일 밥을 주며 돌봐주는 고양이 세 마리가 있는데 제 직장 동료가 쥐약을 먹여 한 마리가 죽었어요. 지금 두 마리 애들이 위험해요. 구조를 해야 하는데 어디에 맡길 곳이 없어요. 

생각나는 곳이 여기뿐인데 어머니가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려요. 평생 은혜 잊지 않을게요... “

사실 이 통화를 하기 전 그녀는 이미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길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동물병원 잉큐베이터에서 2주 동안 정성껏 보살피며 치료했지만 결국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다. 수백만 원을 들이며 가슴조였던 그녀였다. 살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 새끼 고양이는 뒷다리 근육이 없어 걸을 수는 있지만 평생 뛰지는 못한다고 했다. 엄마가 당초 입양받을 아이였다. 

태어나자 마자 버려져 잉큐베이터 안에서 근 한 달을 보내다 하늘나라로 갔다.


고양이가 가여워 밥을 주었다

엄마도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키워본 적은 없으셨지만 어쩌다 보니 고양이 맘마가 되셨다. 5년 전 엄마집에 새끼 고양이가 들어왔는데 몇 날을 굶었는지 배가 홀쭉한 것이 짠하다고 급한 김에 맨밥을 물을 적셔 먹였더란다. 그랬더니 그 새끼 고양이가 매일 와서 엄마집에 밥을 먹으러 오다 아예 자리를 틀었다. 


엄마는 그 녀석을 나비라고 부르셨다. 밥도 잘 먹고 쑥쑥 크더니 몇 달 후부터는 각종 사이즈의 쥐를 잡아나르며 엄마의 예쁨을 온통 받았다. 강아지마냥 엄마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한시도 엄마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 강아지는 나비를 싫어했다.  

맨드라미 차를 만들려고 말려놓은 테이블에 올라가도 엄마는 혼내지 않으셨다. 나비다. 


그런 나비가 어느 날 얼굴이 다 찢어지고 피를 흘리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회수가 잦아지니 아무래도 친구가 없어 혼자 밖에 마실 나갔다 못된 고양이한테 얻어터지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역커뮤니티를 통해 호순이를 입양받은 것이다. 5년 전에 말이다. 


나비 부인 호순이가 왔다
호순이 엄마는 나비가 수고양이라서 짝을 찾아다니다가 서열에서 밀려 얻어터진 것이라고 했다. 우린 무지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나비가 암고양이이니 같은 동성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호순이를 데려왔던 것이다. 

여하튼, 호순이와 나비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부부로 늘 붙어 다니며 알콩달콩 잘 살았다. 더운 여름에도 꼭 붙어 잤고, 마실을 나갈 때도 쥐를 잡을 때도 나무를 타고 올라갈 때도 언제나 함께였다. 나비는 언제나 호순이를 리드했고 경계심 많은 호순이는 나비가 하는 것은 무조건 따라 했다. 

블루베리 나무백에도 각자 자리를 틀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언제나 함께였다.
나비와 호순이 때문에 웰시코기 '사랑이'는 늘 애정결핍증이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호순이도 호순이 엄마도 상처가 깊었다
호순이는 사실 유기묘다. 보호자가 일부러 내다 버렸고, 그것을 안 호순이 엄마가 보호자를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끝까지 내다 버린 까닭에 호순이는 버림받고 길에서 임신까지 해버린 것이다. 그런 호순이를 그녀가 구조해서 낙태와 중성화 수술을 동시에 해서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처가 깊은 호순이는 나비를 의지하고 따랐다. 밥을 주는 엄마와 가끔 보는 나에게는 언제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우린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건강히 우리 눈앞에서 살아만 있어 준다면 그뿐이었다. 

호순이 엄마는 30대 후반의 아리따운 아가씨다. 그녀는 집에서 7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마을마다 그녀가 돌보는 고양이가 스물다섯 마리가량된다고 했다. 매월 그녀는 하절기에는 150 가량, 동절기에는 200만 원가량을 사비로 고양이 돌봄에 지출한다고 했다. 겨울에는 핫팩과 스티로폼 박스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니 돈이 더 많이 든다고 했다. 아무리 공직에 있어 고정수입이 있다고 해도 200여만 원을 매월 그것도 7년 동안 지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고양이를 돌보게 된 사연이 있었던 건가요? “

”저에게는 쌍둥이 여동생이 있어요. 동생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어요. 

결혼한 지 1년도 안되었었죠. 제부가 계속 간병을 하니 집꼴이 말이 아니겠다 싶어 동생집에 갔어요. 

동생이 키우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동생이 저고 제가 동생이잖아요. 


동생은 저를 못 알아보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요. 젊은 제부한테 동생만 바라보고 살라고 할 순 없잖아요. 사돈어른도 동생이 식물인간이 되니 제부한테 재혼을 독촉하시더라고요. 몰래 맞선을 보게도 하시고... 빨리 서류정리를 하기 원하셨어요. 제부는 마다했지만, 제부 발목을 잡을 순 없잖아요. 


제가 후견인이 되어 후견인 자격으로 동생을 이혼시켰어요.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죠. 

자신이 결혼한 것도 그리고 이혼한 것도요. 제부는 바로 재혼을 했어요. 이해해요. 

그도 그의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요... 이젠 동생과 제가 남아있어요. 세상에 우리 둘 뿐인 것만 같아요.. “

그래서인지 그녀는 결혼 생각도 없다고 했고, 동생이 식물인간이 된 지난 7년 동안 그녀는 고양이들을 돌보는데 그녀의 모든 시간을 쓴 것만 같았다. 고양이는 그녀가 숨을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식처인듯했다.  

그렇게 그녀와 인연이 닿은 나는 본가에 갈 때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다. 호순이를 염려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호순이 소식도 보내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유기묘 입주 준비를 했다

길고양이 두 마리가 드디어 오늘 엄마집에 입주했다.  지난주에는 이들이 살 대형 개집을 주문해서 엄마집에 조립하러 왔다가 결국 못하고 갔더란다. 잔무는 당근 언니네 부부 몫이었다.

대형견용 집이다. 두 마리가 살 집이란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뭣하러 이렇게 돈을 많이 써. 고양이야 안이든 밖이든 편한 데서 자면 되지 40만 원이 뉘 개 이름이야? 돈 그만 써... 고양이도 그만 돌봐. 그만큼 했으면 할 만큼 했어. 이제 그만해 “


”안 하려고 해요. 그런데... 아픈 아이들을 보면 그게 잘 안돼요. 그렇지만 정말 안 하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어요.. “


엄마가 호순이 엄마한테 그러셨단다. 호순이 엄마 사정을 빤히 아시는 엄마로서는 안타까웠던 것이다. 마음씨 곱고, 얼굴도 예쁜 그녀가 고양이한테만 옴팡 신경을 쓰는 것이 엄마는 속상하다신다. 엄마는 뜨거운 낮부터 온 호순이 엄마에게 점심과 저녁을 차려주며 시간을 함께했다고 하셨다. 




드디어 고양이들이 입주를 했다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노랑 놈과 검은 놈이 두 마리인데 배가 나와도 너무 나왔다고 했다. 그녀가 너무 살뜰히 살폈나 보다. 사람 손을 잘 안타니 어디로 도망가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밥이 있으니 분명 올거라고 한다.


그녀는 여기 오기 전 가지고 있던 사진을 내게 보내왔다. 
아이들이 행여나 어떻게 될까 CCTV까지 달아놓은 그녀의 마음이 아련하게 전해온다. 마음을 다해 돌본 고양이를 동료가 쥐약을 먹여 죽였으니 그 마음이 오죽이나 했을까...



호순이 엄마가 동굴밖으로 나오면 좋겠다

나는 고양이도 고양이이지만 호순이 엄마가 더 염려된다. 1년에 두세 번씩 만나는 그녀이지만 이번에 만나면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고양이 뒤에 숨지 말고 그녀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치유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결혼은 선택이니 꼭 해야 할 이유는 없겠으나 그녀가 고양이보다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녀만의 동굴에서 이제 걸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호순이 엄마가 보낸 세 마리 고양이가 엄마 집에 서식 중이다. 엄마는 딸이 하나 생겼고, 호순이 엄마도 엄마가 생겼으니 서로 잘 된 일이다.

그녀의 마음이 조금 편안해져서 다행이다. 살이 터지고 까지면 빨간약을 바르면 되는데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가 고양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듯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이번에는 꼭 말해야겠다.  


엄마는 오늘 저녁에도 호순이 엄마를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고 하셨다. 

참 좋다. 그녀의 행복을 두 손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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