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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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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Jun 26. 2023

같은 줄 짝꿍

좋은 일과 나쁜 일

“새댁! 난 새댁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새댁 덕분에 이렇게 새집 짓고 따뜻하게 살잖아. 새댁이 은인이야!”

    

60대 중반의 여인이 웃으면서 30대 후반 새댁에게 말을 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중년의 부부를 몇 년 동안 지독히도 볶아대며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다. 의도적인 괴롭힘보다는 정당한 그녀의 권리주장이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일단 자기 손에 들어오면 자기 것이 아니어도 내놓기가 아까운 묘한 구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농지(답)와 맞물려 있는 구옥의 경우 영역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웃 땅을 먹어 들어가서 집을 짓는 경우도 이웃 간이니 크게 문제없이 사는 경우도 왕왕 있기는 하다. 또 설령 내 땅을 상대가 점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이미 지어진 건축물이면 당장에 땅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다.  

    

산골에 사는 60대 중반의 부부와 지인의 이야기다. 부부는 평생 운전을 배우지 않아 장에 나갈 때는 경운기를 타고 평상시는 자전거를 탄다. 아직 젊으니 운전을 배우면 여러 가지로 소용이 많겠건만 이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내 땅 돌려주세요

쓰러질듯한 슬래브 집에 사는 이들은 문전옥답에서 평생 밭을 일구며 살아왔다. 이웃과의 크고 작은 갈등조차 없이 그저 물 흐르듯 살아왔다. 그녀가 이사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루는 부부 옆집으로 이사 온 그녀가 부부의 낡은 집이 점유하고 있는 땅이 그녀의 땅이라며 내놓으라고 한다.     


“ 아니, 아저씨가 제 땅 100여 평을 먹고 있잖아요. 여기 토지대장을 보세요. 아저씨네 농지랑 집을 모두 저한테 팔거나 아님 구옥을 허물고 새집을 지으세요. 그래야 제 땅을 돌려받죠!”


사실 그녀는 부부의 땅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내심 자신의 땅을 핑계로 땅을 사고 싶었던 그녀는 부부가 땅을 포기하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웬걸 부부는 전혀 팔 생각도 땅을 내놓을 생각도 없었다. 뜻을 세우면 굽히지 않는 그녀가 여기서 포기할 일은 없으니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찾아가 땅을 돌려 달라고 달달 볶았다. 강약 불조절을 하면서 말이다. 부부는 비도 새니 당연 새집을 지으면 좋겠지만 당장 형편은 안되니 차일피일 미루었단다.      


협상을 시작했다

미룬 부부도 몇 년을 들볶던 그녀도 인내의 선수들이다. 결국 부부가 협상을 걸어왔다.     


“새댁, 지금 집을 당장 허물수는 없으니 농지 100여 평을 떼주면 어떨까? 그걸로는 안될까? 나중에 집 지으면 땅 돌려줄게”

“땅 돌려주세요. 집 허물고 다시 지으면 되잖아요!”


괜스레 문전옥답이라고 하겠는가. 그녀도 부부의 집이 있는 땅이 사용하기 좋으니 그런 것이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그녀는 집을 허물기 전까지 부부가 제시한 꽁지 부분의 땅 100평을 받기로 했다.      

잠잠해진 줄로만 알았는데 그녀가 또 찾아간다.   

   

“제발 낡은 집 허물고 새집 지으세요. 아니, 얼마나 좋아요? 새집에서 살면요. 깨끗하고 따뜻하고 비도 안 새고요. 그래야 제 땅도 돌려받죠”     



새집을 결국 지었다

한 번 볶기 시작하면 멈춤이 없는 이 여인의 시달림에 어르신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드디어 집을 지었다.       

문제는 새 집을 지으면서 구옥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옥을 허물면 구옥 자리의 땅을 새댁에게 돌려줘야 하니 이 핑계 저 핑계 온갖 핑계를 부부는 들이댔다. 그녀의 성격을 모를 리 없는 부부인데도 사람이라는 것이 막상 땅을 돌려주려고 보니 아쉬운 모양이었다.  


몇 년을 하루같이 볶아댔는데 또 다른 몇 년을 못 볶으랴.

그녀는 새집 옆에 보기 싫게 구옥을 왜 두냐며 조립식으로 창고 깨끗하게 짓고 허물라고 닦달을 했다.     

들볶이다 지친 노부부는 결국 구옥을 허물고 말았다. 그녀가 이겼다.

결국 그녀는 몇 년의 긴 실랑이 끝에 그녀 소유의 땅을 되찾았고, 노부부는 새집을 얻었다. 양쪽 모두 얻기는 얻었는데 참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한 줄에 나란히 있다

무엇이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일까? 부부가 시달릴 때는 그녀가 들볶는 것이 싫었을 것이고, 새집을 마련했을 때는 그녀의 들볶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니 좋았을 것이다. 같은 불에 볶아대도 결과가 정반대다. 매일 찾아가 싫은 소리를 했던 그녀도 쉽진 않았겠지만 덕분에 부부가 헌 집 주고 새집을 지었으니 큰 일을 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권리를 찾지 않았는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보이는 현상과 감정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가 보다. 감정이라는 것은 그저 느낌의 상태일 뿐 사실관계와는 다르니 말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한 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짝꿍 같다. 좋다고만 좋고 안 좋다고만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일은 더 좋고, 나쁜 일은 그냥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새집을 지은 그녀가 들볶인 세월을 생각하면 어쩌면 미워할 수도 있었을법한데 그녀를 볼 때마다 너무 고마워한다. 진심이다.      


나란히 앉아있는 짝꿍,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감사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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