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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Aug 10.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

모두 안녕!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긴장을 쓸어내리고 차분히 앉아본다.  입추가 사흘 지난 저녁 시간이다. 차가운 바람이 늦가을처럼 불어 재낀다. 싸늘하고 차가워 따뜻한 차 한잔이 어울리는 기온이다. 60여 년 된 낡은 흙집을 떠나 결국 입추에 나는 이사를 했고, 이사를 마친 다음날 태풍이 왔다.  그 집에서 태풍을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밤새 마음 졸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 텐데 이젠 안녕이다.



이렇게나 아파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갈 거면서 오지나 말지 뭐 하러 왔어! 차라리 오지나 말지… 왜 왔어?

몸무게라고 해봐야 35kg 정도 나가실듯한 나비 같은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어디서 힘이 나는지 나의 등을 사정없이 밀고 치면서 눈물바람을 하셨다. 올해 아흔하고도 여섯이 되는 할머니는 나를 친손녀처럼 살갑게 대해주셨다. 귀가 들리지 않아 입모양을 보고 소통을 하시지만 그래도 서로 눈빛으로 몸짓으로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대화를 해왔다.


눈물을 펑펑 쏟는 할머니를 보자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평생 홀로 사신 할머니는 그래도 내가 옆에 있어서 좋으셨던 모양이다. 혈육도 아니고 남이지만 그녀는 나를 의지했고 나 역시 그녀가 늘 마음에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미리부터 말씀드리면 마음 아파할까 봐 난 이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적잖이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다. 앞집 어르신도 눈물바람이다.


“바람처럼, 구름처럼…이런 게 어딨 나? 이제 못 보나?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 그렇게 가는 게 어딨냐…”

윗집 정이네 할머니 말씀이다.


“올찮은 집에 들어와서 고생만 하고 간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뜯어고치고 어른들한테 잘하고 살더니만 왜 가나? 왜 가는데? 이렇게 갈 거면 뭐 하러 왔나?…”

 나와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사시는 친정엄마같이 살가웠던 용이네 할머니가 마음 아파하시며 말씀하신다.

저 작은 창문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보고 살았다

“어머니, 재계약 시점이 오니 생각이 깊어져요. 지난겨울 한 달 난방비 60만 이상을 써도 집 평균온도가 10도인 데다 보일러랑 상수배관도 얼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돈은 돈대로 들면서도 근천 떨며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처음부터 잘 골랐어야지. 젊은 사람들은 이런 집에 못 산다… 고생 많았다. 좋은 집 가서 잘 살아라”



용이네 할머니께 정이 옴 팡 들었다. 나를 정말 딸처럼 대해주셨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사니 나의 동선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처음 이사 온 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나를 안타까워하시며 정성스럽게 밥 한상을 차려주셨던 그녀다. 사위가 바다에서 잡아온 한치를 회를 쳐서 한 접시 내놓고, 고사리 고등어조림, 토끼풀나물 등 정성 가득한 밥상을 그저 엄마처럼 차려주셨다. 평생 잊지 못할 밥상이다.


“엄마라고 불러. 나도 니 같은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정이 가고 마음이 스치며 그녀와 다른 어르신들과의 찐한 동거를 1년 했다. 가슴 아픈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지내놓고 보니 좋았던 일들이 더 많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정과 사랑, 그리고 인연을 얻었다. 조부모님과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비록 남이지만 8-90세 할머니들과 함께 지내본 것이 추억이 되고 낭만이 되었다. 비록 세대차이가 나 때론 고집이 세고, 또 때론 귀가 들리지 않아하고 싶은 말씀만 하시고 휙 떠나버리시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들이었다.



올찮은 집이라 추억이 더 많았다


올 겨울 바라본 집 외관이다


마루와 방에만 장판이 포도시 깔려있었다

집이 어르신들 말씀대로 올찮으니 시건장치도 제대로 돼있지 않고 별도로 현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샤워를 할 때면 온통 긴장을 하고 씻어야 했다. 나를 부를 땐 내가  눈에 보일 때까지 유리문을 내리치는 어르신들 때문에 창문이 깨질까 봐 작은 소리에도 번뜩 일어나 마루로 달려가 어르신들에게 내가 존재함을 확인시켜드려야 했다.  그런 지난 1년의 시간이 이제는 정말 끝났다.


이사가 이별 같더니만 나와의 이별, 그리고 어르신들과의 찐한 이별이었다. 고작 15분 거리로 이사하는데 해외이민 가듯 그렇게 이별식을 거하게 했다.  짧은 시간에 그렇게나 정이 옴팡 들었나…. 그래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스치는 깊이와 강도, 그리고 사연에 따라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맞을 것이다.


이사를 다 하고 한번 더 정리를 하러 간 날 어르신들은 내게 꼭 약속을 하라고 하셨다.


“내가 니 회사에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길에서 보면 꼭 아는 채 해라. 알겠나? 반찬 없으면 엄마! 하고 들어온나! 밥 한 숟갈 주라고. 알았나?”


홀로 타지에 와있는 나를 너무도 염려하시는 용이할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 왜 한 숟갈만 주시려고요? 반찬도 담아가고 자주 올 거예요. 어머니나 저를 잊지 마시고 꼭 아는 체 하셔야 해요. 자주 올 거예요”


“니 마음 안 아프나? 여기서 상처도 많이 받고 이사 가는데 괜찮나?”


“지나고 보면 좋은 게 더 많은 게 인생인 거 같아요. 어머니도 만났고, 낯선 지역이지만 찾아갈 수 있는 사람도 집도 생겼잖아요. 이 정도면 남는 장사 아닐까요? 저는 나름의 낭만도 행복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있어서 좋았어요”


“니가 그래 말해주면 내 고맙데이. 우리 자주 보고 살자. 꼭 온나!”


혹시나 남아있을 쓰레기나 잔짐을 정리하고 우리 집에 서식했던 고양이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아이들을 돌봐줄 어르신도 없고 키워줄 사람도 없다.

“애들아. 내가 이사를 해서 너희를 데려갈 수가 없어. 너희도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겨야 해. 건강하게 꿋꿋하게 잘 살아야 해. 알겠지?

마지막 사료를 듬뿍 챙겨주고 나는 새집으로 왔다.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


아직도 낯설다. 남의 집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태풍이 온 오늘, 나는 집에서 강제 연가를 쓰며 나무끄댕이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바람과 창문을 거세게 내리치는 비를 종일 눈에 담았다. 이 묘하고도 낯선 기분은 뭘까? 무대의 한 막이 끝나고, 다른 한 막이 시작되기 전 휴식이라고 해야 할까? 태풍전야의 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느껴보지 못한 그리고 정의하기 힘든 감정이다.  이 마음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도 분석하기도 어렵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려 한다. 인생은 언제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진실로 그러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만든 ‘인생은 아름다워’ost를 보내온 내 친구는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커피와 함께 이런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 슬프지만, 역설적이지 않나? 아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웃으면 가는 아버지의 그 마지막 심정이 말이야…”


그렇다. 그 영화처럼 인생은 아름답다. 태풍이 불어도 하늘의 푸른 별과 창백한 달이 찬란한 빛을 발해도 마음이 무너지는 아픔이 있어도 한숨을 꼴깍 삼켜보면 그러하다. 그러기에 살만한 인생이라고 하지 않은가?


1년간 정들었던 이웃들과의 이별, 지난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의 모습들을 태풍과 함께 보낸다.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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