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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Sep 12. 2023

400년 된 은행나무나 노년의 인생이나 매 한가지

텅 빈 속마저도 내어주고 여전히... 인생으로 빛날 수 있는

보호수와 노거수

정부에서는 수형이 아름답고 보존의 가치가 있는 나이가 아주 많은 나무들을 보호수로 지정하여 별도로 관리한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회화나무, 팽나무, 향나무 등 보호수로 지정된 친구들은 모두 기본 100에서 500년 이상을 웃돌기도 한다.  보호수는 2006년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7조에 따라 생물다양성과 산림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딱딱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거수 역시 수령이 기본 100년 이상된 나무들로 주로 소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향나무 등이 많은데 노거수는 보호수 지정 기준에는 미달하지만 마을의 전설이나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특별히 지정해서 관리하는 나무이다.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보호수나 노거수나 생김새는 흡사하다. 노거수나 보호수 모두 나이가 오래되니 몸통의 한 중심이 썩어서 텅 빈 경우도 많고, 외과수술을 받아 군데군데 시멘트 이식 자국들도 많다.


사실, 오랜 기간 생물다양성에 대한 인문사회, 생태적 측면에서 업무를 해왔지만 나에겐 여전히 어렵고 실체가 잡히지 않는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마치 구름을 손에 넣어 형상을 빚는 것처럼 말이다. 현학적인 말과 각종 철학과 이념을 녹여 근사한 용어를 탄생시켰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시민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생물다양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제고 기회가 있다면 생물다양성에 대한 썰을 풀 날도 있을 테니 말이다.



400년 된 은행나무와 노년의 인생, 뭐가 달라?

달성군에 있는 400년 된 보호수다. 나무를 직접 안아 보고 난 그는 흥분해서 말한다.

“어마어마하게 크다. 네 차 너비의 절반은 될걸? 정말 크다. 팔에 다 들어오지가 않아..”

그렇게 큰 은행나무를 처음 봤을 리도 없을 텐데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서 느끼는 감흥인지, 아니면 비교적 생육상태가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만큼은 생각의 시력이 그와 동일하지는 않은 것 같다.


400년 된 은행나무, 달성군(출처: D.P)

조부모님과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 산골 오지에 와서 어르신들을 매일 보고 산다. 특히 지난 1년 동안은 아예 딱 붙어살며 생활을 같이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난생처음 어르신들과 같이 살았던 시간은 나로 하여금 인생에 대해,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처절하게 고심하게 했다.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노년에 있어 시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마지막 남은 한 호흡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인생의 참 행복은 무엇인지…그리고, 육신의 삶과는 다른 영원한 삶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 영원한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함께 생활했던 어르신들은 기본적으로 여든이 넘으신 90에 가깝거나 100세에 가까우신 정말 인생길의 마지막 선상에 계신 분들이었다. 시골이라 어르신들이 매일 밭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맑은 공기를 마셔서 그러한지 나이 아흔이 넘어도 허리가 굽은 분들이 별로 없었다. 102세를 넘으신 우리 마을 식육점 할머니는 지금까지 고혈압 약도 드시지 않는다. 도시에서 주변을 보면 나이 오십이 넘어가면서 고혈압 약을 꾸준히 먹는 사람들이 많고, 여든이 넘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도시를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은 보지를 못했다. 여든이 넘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시며 경제적 활동을 하셨고,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시며 오히려 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서로 돌보기도 하셨다.




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은 거야?


노년이 되면 자신의 경제력과 자녀들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노년의 위치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세대들이 노년이 되면 많이 달라지겠지만 지금의 1930년대 태어나신 어르신 세대들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겪어서인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신다. 다른 것은 둘째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자신을 돌보고 자존감을 가지고 품위 있게 사는데 상당한 불편함을 준다. 입고 싶은 옷을 사 입을 수도 없고, 겨울철에 난방을 마음대로 할 수 도 없으며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없다. 거주할 주거공간이 없으면 시설에서 살며 컨베이어 벨트의 기계부품처럼 남은 날을 매일 셀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때부터는 인생이 아닌 그저 존재 자체를 위한 생존, 즉 삶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고인이 되면 대서특필을 하고, 그들의 삶을 기린다. 같은 노년인데 왜 그들의 삶은 애도되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홀로 마지막 호흡을 넘기는 그들은 애도되지 못하는 것일까? 생물다양성, 물론 좋은 말이다. 나무에 얽힌 특별한 전설도 모두 좋다. 사연 없는 인생들이 어디 있겠는가? 늙은 나무들은 그리도 대접을 받는데 인생들은 노년이 되면 왜 아름다운 시선과 돌봄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특히, 경제력이 없을 때는 더욱 말이다. 그래서 생각이 깊어진다…


배우고 못 배우고, 또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문제일까? 우리는 어떠한 기준으로 노년의 인생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일까? 노거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끔찍하기도 하고, 아픔이 전해지기도 한다. 물론, 나의 인간적인 공감이다.  왜? 속이 다 파여서 텅 비어 있다. 온갖 벌레들이 파먹다 못해 아예 집으로 삼기도 하고, 속이 텅 빈 그 빈 몸통에 가녀린 가지를 뻗어 간신히 광합성을 하며 최소한의 양분을  흡수하며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버겁지 않을까? 아프진 않을까? 그렇게 몸을 버텨내면서 존재한다는 것이 나무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무는 그러한 삶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연의 섭리이기에 받아들이며 힘을 빼고 그 시간을 유유히 기다리는 것일까? 보호수로 노거수로 지정해서 멋진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근사한 양탄자 같은 잔디가 나무에게 위안이 될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노거수나 노년의 인생이나 고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갖은 풍파와 고난을 온몸으로 겪으며 결국 인생을 살아내며 존재하게 된 어르신들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년의 인생들을 나는 옆에서 생생히 보았다. 시설에서 가끔 좋은 옷을 나눔 하기도 하고, 최신상으로 주거공간의 일부를 고쳐주기도 한다. 정부가 사회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정도의 물질적 지원이다. 텅 빈 집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쓰지도 못할 최신식 보일러를 켜지도 못하고, 아까워 옷은 입지도 못했다. 남루하고 초라한 옷과 국그릇에 물 말아놓은 식은 밥에 김치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어려운 노년의 인생이나 보호수나 같은 짝인지도 모른다. 본질적인 고독과 쓸쓸함은 덜어줄 수가 없는 여전히 삶의 무게로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손길과 시선을 받는 노거수와 보호수들은 아주 살짝 사정이 나을 뿐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만 같다. 노년의 인생들과 비교해 보자면 말이다. 오늘 400년 된 은행나무를 안아보고 근사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할머니가 다음 달이 되면 100세가 되신대. 어때 근사하니?”

‘글쎄… 일단, 이 할머니가 누구신지 아는 정보가 없어. 질문의 의도가 뭘까? 100세를 건강하게 살아오신 것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인 관점에서 사람이 100세가 되었다고 할 때의 내가 받는 느낌을 묻는 것일까? ‘라고 분명히 말을 하겠지…


나의 의도는 보편적인 관점도 아니고, 할머니의 인생 관점도 아니다. 지금 존재하시는 그 모습이 얼른 안아드리고 싶을 만큼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냐는 것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도 바라보는 방법도 우리는 어쩌면 다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하지만, 나 역시도 껍데기 속의 알맹이를 보는 눈이 턱없이 부족하다.


본질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깊이 깨달을 수 있다면 인생 더 풍요롭게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으로서 나에게도 다가올 노년의 삶이 사랑받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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