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해서 두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보는 일은 내게 큰 기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커다란 아픔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했어야만 했던 일들이 아이의 성장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아이가 넘어져 생긴 상처에는 약을 발라주면서 내 상처에는 그 흔한 반창고 하나 붙여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모른 척했다.
작은 아이를 꽉 안으며 나는 한 번도 꽉 안겨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모른 척했다.
파란 하늘에 수 놓인 만국기 아래 운동장에서 달리는 아이에게 응원을 보내며 한 번도 운동장에서 엄마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역시 모른척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신나게 놀아야 할 놀이터에서 끝없는 기다림과 마주해야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역시 모른척했다.
아이가 아프면 안아주고 달래주면서 나의 아픔은 모른 척했다.
모른 척이란 절대로 모르는 척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외면이라는 것을, 모른 척이란 결코 잊히지 않는 아픔이기에 힘껏 애써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기에 더 아팠던 것이다.
외면하면 거기 없는 아픔이 될 줄 알았다. 들여다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모르는 척 아닌 척 외면해버렸고 나 자신은 그렇게 비를 철철 맞게 하고 아이에게는 우산을 씌워줬다.
엄마 팔이 젖는다고, 엄마 옷이 젖는다고 하나의 우산 아래서 나를 껴안은 아이가 말했다.
그제야 빗물에 젖은 내가 보였다.
지금 내가 슬픔에 젖은 것처럼 엄마의 젊은 날도 슬픔에 젖어있었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녀도 나처럼 안겨진 적이 없었고, 학교라는 곳에서 엄마를 본 적이 없었고, 한때는 자기 자신이었던 엄마를 그리워해야만 하는 운명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픔은 두배가 된다.
나도 슬프고 엄마도 슬프다.
그녀가 슬펐던 것처럼 그녀의 엄마도 슬픔에 젖어있었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슬픔은 세 배가 된다.
슬픔은 자꾸만 커지고 커지는 슬픔은 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슬픔을 가슴에 가득 품은 채 과거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미래를 살아야 하겠지..
엄마의 자리에 있었던 슬픔은 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고 살아있겠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사랑할 수 없는 슬픔들에게 이제는 손짓을 하려 한다.
이제 너를 모른 척하지 않겠노라고, 외면하지 않고 함께 머물겠노라고. 그러니 영원히 사라지지 말고 나와 함께하자고. 너는 나이고 나는 곧 너임을 받아들이겠노라고 조용히 부르려 한다.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따듯한 사람이 된다.
차가운 슬픔을 살아낸 사람만이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슬픔을 외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는 슬퍼할 때이므로.
깊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일, 나는 이제부터 그것을 시작하려고 한다.
슬픔, 이제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