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들뜸과 새해의 설렘이 교차하던 날들이었다.
연예인들이 눈부신 드레스를 입고 손을 흔드는 장면들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카운트다운으로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즈음 어느 날부터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미열로 시작해 고열로 향해가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기가 겁이 났다. 너무 뜨거워서 혹시 아이가 그 열기에 불타 죽어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체온계가 고장 난 건 아닌가 싶어 내 체온을 다시 재봤지만 체온계는 고장이 아니었다.
아이의 귀 아래 목이 부어오르며 멍울이 잡혔고
동네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기를 권유받았다.
수많은 검사들을 했다.
최첨단 사진이란 사진은 죄다 찍고, 이틀에 한 번씩 채혈을 했으며 작은 몸에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수액을 들이부었다.
부어오른 목에서 채취한 조직으로 검사를 하고 아이의 척추에서 뽑아낸 골수로 검사를 했다.
눈부시게 새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흰옷을 입은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백의의 전문가는 일반인들에게는 기함을 할만한 골수검사라는 단어를 어제 날씨 얘기를 하듯 담백하게 꺼냈다.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무수한 검사를 했지만 고열의 원인을 알지 못했고 그쯤에서 찬란할 줄 알았던 현대의학에 대한 실망감은 더해져만 갔다.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받았던 검사들, 해열제, 수액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열은 내리지 않았고 진단명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병상에 누워 앓는 아이를 보며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단지 미온수 찜질뿐이라는 것에 깊은 무력감과 좌절감이 느껴졌다.
내 일부를 떼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아이의 아픔을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개한 존재일 뿐이었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 악성종양과 이름도 생소한 기쿠치병이라는 기로에 서서 처단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리는 죄인의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7년도 채 살지 않은 작은 몸에 항암제를 들이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쓰는 물병을 닦다가도 아이에게 먹일 과일을 씻다가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를 달래 밥 한 숟갈 더 먹여보려 애쓰다가도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아이가 엄마 왜 우냐고 할까 봐 그러면 내가 왜 우는지 아이에게 모조리 털어놓고 목놓아 울어버릴 것 같아서 참았다.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웠고 충분히 지옥이었다.
너무나 작은 천사 같은 아이들의 가는 팔에 연결된 날카로운 주사들, 그 아이들과 인사 나누며 눈물짓는 어른들을 보았다.
피를 토하며 죽고 싶다고 말하는 딸에게 그런 소리 말고 정신 바짝 차리라던 엄마의 강건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엄마의 등에 업힌 돌도 안된 막내와 그 아이의 열 살도 안된 형의 눈물을 보았다.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온 가족이 작은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것을 보았다.
피 토하던 딸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 옮겨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지내던 작은 침대에서 짐을 빼야만 하는 가혹한 시스템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가혹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할 그 침상을 보았다.
침대 곁에 쌓인 피 묻은 환자복과 시트를 보았다.
아이를 업은 엄마의 공포를 보았다. 공포와 두려움을 나눌 아이들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절벽 끝에 놓인 그들이 보였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나 역시 또 다른 절벽 끝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밤 창 밖의 빛나는 야경들을 바라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립감과 슬픔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느낄법한 감정이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곳에는 오직 나 자신의 공포만 있었다.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온 세상을 덮어버리고도 남을법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이의 엄마를 보며 나의 그러한 공포마저 사치로 느껴졌다.
기쿠치라는 병으로 확진이 될 때쯤 기적같이 아이의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아이는 해열제와 수액과 시간만으로 회복했다.
떨어져 지내야 했던 아빠와 언니를 다시 만난 아이는 몹시 기뻐했고 나도 기뻤다. 그러나 기뻐만 하기에는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건강과 질병은 그렇게 단 한 장 차이로 엇갈렸지만
내가 아니라서 그리고 내 아이가 아니라서 홀가분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엄마나 열 달을 품고 제 살과 근육을 찢고 아이를 안는다.
그런 아이를 침몰하는 배 속에 가둔 채 물로 보내고, 누군가의 구타나 살인으로 보내고, 총탄으로 보내고 질병으로 보낸 엄마들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오늘이라는 그녀들의 하루는 지옥 같은 통증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슬픔과 분노일지도 모른다.
왜 하필 내 아이여야만 했냐는 운명에 대한 분노 앞에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평범한 부모들의 날을 보내는 안온한 삶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나는 가볍지 않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그녀들처럼 살과 근육을 찢어 내 아이를 안았으므로 가벼울 수 없다.
안온한 삶의 감사함보다 비통한 아픔의 곁에 있고 싶다. 무감의 이기심으로 잠들지 않고 깨어서 그녀들과 함께이고 싶다.
나도. 그녀들도. 모두 엄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모성의 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