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무수한 빗방울 같은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을 하며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많은 시간들 동안 왜 그렇게 아파야만 했는지, 아픔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그 질문과 대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팠던 나에게서 부모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나니 내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삼십 여 년간 내 것인 줄 알고 살아왔던 부모의 그림자가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불빛 하나 없는 숲길에서 렌턴을 잃어버린 것 같아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상실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두 사람과 큰 남자가 있었다. 나는 역할이란 옷을 입고 있었고, 그에 맞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마치 분장한 연극배우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자식의 역할을 요구받았고, 아내의 역할을 요구받았고, 엄마의 역할을 요구받은 결과로써 나는 그 역할에 부합한 인물로 살았다.

학생일 때는 학생의 역할로, 직장인일 때는 직장인의 역할로, 하나의 개체로서 세상을 살았다.

순종하면 사랑받는다.

학생이 교육에 순종할 때, 좋은 직업을 갖게 되고 사랑받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직장인이 기업체에 순종할 때, 돈을 통해 사랑받는다.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할 때,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보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무리에서는 수용한다. 그러나 무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르지 않는 이들은 거부한다. 가족과 사회에서 심지어 사랑에서마저 거부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마녀재판, 인종차별 같은 것들은 무리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수 천년을 거듭해 역사는 반복되어 왔고, 그것은 개인과도 무관치 않다.

여느 동물처럼 뛰어난 다리 근육이나, 날카로운 이빨 또는 추운 겨울을 살아남을 수 있는 두꺼운 털을 지니지 못한 연약한 인간은 연약하기에 무리 지어 살았고 무리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인간은 관계적 동물이다. 무리에서 도태되어 죽음을 맞지 않기 위해 인간은 그렇게도 서로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무리의 가치와 규범을 따르기 위해 하는 것이 교육이다. 무리를 존속시키는 것이 결혼이고, 결혼을 통해 무리의 정신적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며 인간이란 종은 생존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나도 순종으로서 살아남은 무리의 일원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살아남은 무리의 일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무리의 일원일까, 나 자신일까. 나는 무리의 일원으로서 살아가야 할까 나 자신으로 살아가야 할까?








무리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대가로 반항심을 억눌러야 했다.

엄마의 형제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으며, 학교에서는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옳지 않은 직장 내 문화에 반발을 하고 싶었다. 결혼을 해서는 남자와 여자의 상을 따로 차리는 시댁의 식문화에 반발을 하고 싶었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왜 나만 힘들어야 하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한 반항심으로 엄마와 늘 싸워야 했으며, 학교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직장에선 상사들에게 찍혀서 고달팠고, 남편과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느라 싸웠고, 아이에게는 정도껏 순종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쳤다.

사는 게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내게 강요되는 순종을 거부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직장 내에서 업무가 미숙하다는 이유를 들어 선배들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칙을 내세울 때, 그건 아닙니다라고 한 것은 나뿐이었고, 아이 학교의 녹색 어머니의 명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도 나뿐이었다.

능력이나 실력에 따라 휴가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면 차라리 테스트를 하고 결정하라고 건의한 것도 나였고, 테스트에 전원 합격한 것도 나를 포함한 동기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찍혔(?)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모든 가족이 엄마 아빠 아이들로만 구성되지 않았을 것이며, 보편적인 모습이 아닌 가족들도 동등한 학부모의 모습으로 아이들의 안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름을 포용하는 공교육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의 제기를 했고, 잠깐이나마 명칭을 변경할 수 있었기에 엄마뿐 아니라 아빠든 고모든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모두가 학부모가 되어 아이들의 아침을 보살필 수 있었다.




오래전 어느 날, 남편 직장의 퇴사문제로 남편의 직장 상사와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마 남편이 퇴사를 하고 나면 회사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자리를 마련하신 것 같은데 그분은 내게 미혼모들도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잘 사는데 부부가 좀 떨어져 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떨어져 사는 방법도 있으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담보 잡으며 사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아닙니다.라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무척 다퉜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냥 네네 하면 안 되는 거냐고 꼭 그렇게 말대답(?)을 했어야 했냐고 화를 냈고, 나는 그분이 당신의 상사이지 내 상사는 아닌 거라고 나를 가르치실 자격은 없는 거 아니냐고 화를 냈다.

그때부터 그냥 떨어져 살 걸 그랬다.








남편은 늘 내게 말한다. 나서지 말라고. 그건 공명심에 대한 욕심이 아니냐고. 순종하라고. 너 하나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을 거라고. 인간은 어차피 이기적이며 자기밖에 모르는 동물이라고. 손해 보는 건 너뿐이라고.

남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랴 내가 가진 신념 앞에서 때로는 한치의 물러섬도 허용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으니..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 생겨 먹었는 것을...

나는 언제나 소수였고, 앞으로도 소수일 것이고, 때때로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세상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나다.



순종하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다.

반항하라. 그러면 치열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치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