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튜브에 보면 고민을 상담해주는 채널들이 참 많다. 정신과 의사부터 심리상담가 혹은 책을 출판한 작가, 종교인까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준다.
사연들도 다양하다. 사랑하는 사이에 연락을 얼마나 자주 하는 것이 좋은가부터 시작해서 직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상사에 대한 고민 부모님과의 관계 문제 등등등...
매일 주어지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먹고살아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니 만만치 않은 게 삶이다.
한 사연자는 여자 친구의 전 남자 친구를 알게 되어서 마음이 복잡하다는 고민을 보냈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답했다. 내가 사랑에 빠지게 한 여자 친구의 사랑스러움은 그동안의 많은 만남을 통해서 갖게 된 모습일 수 있다고. 현재 그 사람의 모습 속에는 과거의 무수한 만남들이 녹아있는 것이며 10대나 20대 때에는 부모의 영향을 받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어른이 되면서 굳어진 생각이 있다.
사람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놓여있든 내면의 중심만 확고하다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살아오며 힘들었던 것은 내면의 확고한 중심이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력하며 살아야 하고 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면 견디기 힘들었다. 마음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 여겼다.
성숙한 마음이란 감정의 동요가 없는 마음일까?
싯다르타나 마더 테레사나 예수는 감정의 동요가 없었기 때문에 성숙한 삶을 살았던 걸까? 아니면 감정의 동요를 이겨냈기 때문에 성숙한 삶을 살았던 걸까? 만일 그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면 그들이 그들일 수 있었을까?
싯다르타는 평범한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며 깊이 가슴 아파했다. 예수 역시 작고 버려지고 아픈 이들을 더 사랑했다. 마더 테레사 역시 그랬다.
그것은 그들의 감정이었다.
내게도 감정이 있다. 조절될 때도 있지만 조절되지 않을 때도 있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싶지만 영향을 받을 때가 훨씬 많다. 독립적이고 고유한 사람이고 싶지만 관계 속에서 스스로가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가늠하게 될 때가 더 많다. 그러지 않는 것이 성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정의 동요도 없고 관계나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가 과연 인간일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생각보다 멋지지 않다.
성숙한 마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닐까. 미숙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모습까지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간이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 아닐까. 그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수용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무수한 접촉이 녹아있는 사람이다. 그 접촉 안에서 내가 어떻게 빚어지고 다듬어졌는지를 생각한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내게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내 탓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그러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를 평면적 인간이 아닌 입체적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인간에 대한 성숙한 관점의 출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