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게 부당한 요구를 했다.

밀란 쿤데라의 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우리는 살아가며 세상의 부당한 요구와 수없이 마주치게 된다.



딸이기 때문에 경멸스러운 핑크색 옷을 입어야 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많은 신체적 불편함을 초래하는 교복 치마를 입어야 하고, 여자다워야 함을 강요받아야 하며, 심지어는 브레이지어 착용 여부 검사까지 당해야(?) 했다.

옆집 아이와 나는 엄연히 다름에도 비교당해야 했으며, 모든 인간의 적성이나 특기는 다름에도 성적이란 제도로 내가 원하지 않는 숫자를 강제적으로 부여받는다.

모든 종류의 감수성은 남성과 여성이란 종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개별성에 따라 다른 것임에도 남자는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고 씩씩해야 함을 강요받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적성 따위는 접어둔 채 입대를 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은 개별적 적성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다 같은 과목을 배우고 실력을 평가받으며, 직장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펼쳤다가는 이상한애 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부모님으로부터 결혼이나 출산을 강요받기도 하고, 대중이 살아가는 보통의 삶을 강요받기도 한다.



우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부당한 요구들을 받아왔고, 현재까지도 그 부당한 요구의 명맥은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세상과 관계로부터 받는 부당한 요구들에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피곤해지지 않기 위해, 문제 유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부당한 요구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거나 혹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흔히 그것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개인에게 때로 그 부당한 요구들은 일종의 폭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시작점인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조차 부당한 요구는 가족이란 이유로 합당히 여겨지는데,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요구들을 인지하기란 쉽지가 않다.



내게는 아버지가 다른 혈육이 존재한다.

그분의 방문에 식사대접을 했고, 역까지 모셔다 드렸고, 선물까지 준비했던 나에게 그녀는 성의 없다 비난했고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열아홉 이후로 자립적으로 살아왔던 나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걱정을 유발하고 싶지 않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말 그대로 투정 따위는 할 줄 모르는 딸이었다.

처음으로 삶의 어려움을 토로했으나, 어렵게 꺼낸 나의 마음이 외면당하고, 진심이 왜곡되고, 그 왜곡의 시작점이 내 생명의 근원지인 것이 나를 큰 상실감에 빠지게 했다.



치유되기 힘들, 다시는 되돌릴 수도 없을 커다란 상처를 안고, 이 혼란스러운 관계를, 혈연이라 끊어낼 수조차 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 관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부모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내 잘못이 아니란 것 또한 안다.

부모의 불행이 내 탓이 아니란 것도 안다.

내 부모의 인생에서 벌어진 비극, 그 비극의 대물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수많은 책을 읽어봐도,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또 해봐도 나는 내게 생명을 준 그분을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분노감, 상실감, 죄책감, 애정, 슬픔, 가여움 등이 마구 혼재되어있어 감당하기 힘든 통증이 찾아온다.

의사는 말했다.

그녀가 내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부당한 요구 라는 말이 귀에 걸려 소화되지 않고 있었다.

왜 그 부당한 요구 라는 말이 소화가 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그녀의 요구를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 내 진심을 몰라주는 것인지, 그녀는 왜 그러는 것인지 늘 생각했을 뿐, 그것이 합당한지 아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나의 노력은 모두가 쓸모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 앞에서 철저하게 약자였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종류의 부당한 요구들에 시달리는지,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이 관계에서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