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간간이 내가 있는 삼촌네 집에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그럴 때에만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또는 삼촌이 주는 맛없는 간식을 맛있는 척하면서 먹어야 할 때, 유리 장식장 안에 있는 조립 로봇을 갖고 놀고 싶은데 오빠들이 갖고 놀지 못하게 할 때, 잘 시간이 되어 불 꺼진 방에 누워 검은 천장을 바라봐야 할 때 등등 엄마가 보고 싶은 순간은 하늘에 총총히 박힌 무수한 별들처럼 많았다.
어느 날엔 그 무수한 그리움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엉엉 울어버렸다.
나는 울면 안 되는 아이라는 걸 알았지만, 엄마가 너무너무 그리워서, 그리운 마음이 마음속에서 흘러서 넘쳐버리는 것을 막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삼촌은 나에게 엄마는 지금 무척 힘이 드니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착하게 잘 지내야만 엄마를 도와줄 수 있고,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는 울음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결국 삼촌은 계속 울면 너를 때릴 수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안방에 있는 서랍장에서 기다란 매를 꺼냈다.
아빠에게 딱 한번 효자손으로 맞아본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큰 매는 처음 보았던 나는 금세 공포에 사로잡혔음에도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엄마한테 가고 싶었다. 매를 피해 얼른 엄마의 등 뒤에 숨고 싶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없었다.
삼촌의 아들인 오빠들은 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초등학생이었는데 내가 자신들의 물건을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나는 오빠들이 이제는 내팽개쳐 가지고 놀지 않는 것들만 만져볼 수 있었다.
오빠들 방에는 손자국 하나 묻지 않은 유리 장식장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신기한 조립 로봇들이 많았다.
나는 오빠들보다 일찍 끝나는 날에는 숙제도 하지 않고 그 찬장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로봇들이 어떻게 변신하는지 딱 한 번만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부러지거나 망가뜨리면 큰일이었다.
어느 날, 굳은 결심으로 장식장의 유리문을 열어보리라 생각했지만, 그때 삼촌이 보여주었던 큰 매가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내게 허용된 것은 다 낡아빠진 탱탱볼 하나뿐이었다.
왜 나는 저런 멋진 로봇들이 없을까..
오빠들은 로봇도 있고 엄마 아빠도 있는데, 왜 나는 로봇도 없고 엄마 아빠도 없지..라는 궁금증을 뒤로한 채, 마음속으로 가만히 엄마를 불러보았다.
삼촌 말처럼 내가 착한 아이가 되면 엄마랑 아빠가 돌아올까..
다시 엄마 아빠와 살 수 있게 되면 나는 진짜로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
나는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기도를 했다.
엄마 아빠를 돌려주시면, 로봇은 없어도 된다고. 진짜로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한참을 장식장 속 로봇들을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다시 그 거대한 매를 떠올리며 공포에 사로잡혀 집을 나갔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탔다.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잠시 그 큰 매를 잊을 수 있었고, 해방감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어딘가가 슬펐다.
눈물이 나오려고 슬픈 건지, 머리카락이 슬픈 건지, 배가 아픈 건지, 가슴 어딘가가 슬픈 건지는 알 수없었다.
그네를 타도, 바람이 부드러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도, 어떤 아이가 같이 놀자고 해도 슬펐다.
노을이 하늘에서 내려와 부드럽게 놀이터를 물들일 때, 엄마가 찾아왔다.
나는 무척 기뻐 그네에서 뛰어내리려 했지만, 다른 아이가 엄마에게 뛰어갔다.
우리 엄마를 닮은 엄마와 날 닮은 아이는 노을 속으로 다정하게 사라졌다.
빈 놀이터에 남겨진 나는 멈추지 않는 그네에 앉아 세상에서 최고로 따듯해 보이는 노을을 그저 바라보았다.
그네를 타는 게 무척 슬퍼졌다.
병원에 간다던 아빠도 금방 온다고 했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도 금방 온다고 했는데 어제도 오늘도 오지 않았다. 큰 매 때문에 삼촌에게는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다.
번호를 알지 못해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다. 엄마도 아빠처럼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러면 나는 저 큰 매와, 호시탐탐 나를 괴롭히고 놀려먹는 오빠들과 계속 살아야 하는 걸까..
좀처럼 웃는 법이 없는 마녀같이 생긴 외숙모가 거대한 냄비에 나를 넣고 끓이는 상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