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발, 제발! 누가 구급차 좀 불러줘요!!! "
여자는 울부짖으며 입과 옷에 왈칵왈칵 피를 쏟아내는 남자와 함께 주저앉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치 않았다. 남편이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식을 잃어가는 피투성이의 남자와 남자의 피로 물든 여자의 주위를 에워쌌다.
여자는 혼란과 혼돈 속에 휩싸여 있었지만 이내 깨닫게 된다. 아이가 사라졌음을.
아이는 귀를 틀어막았다.
귓구멍으로 공포가 스며 들어와 온 몸을 지배하는 데는 단 몇 초 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는 있는 힘껏 제 머리를 터트려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귀를 눌렀다.
아이의 작은 손에 지구의 무게가 실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보다 머리가 먼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해 귀를 틀어막았지만, 손이 두 개뿐이라 눈은 가릴 수 없었는데, 군중의 한가운데에 피칠갑을 한 아버지와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목이 터져라 아이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아이는 군중들 속에 숨어서 몸을 덜덜 떨며 머리가 터져라 귀를 틀어막았다.
시장의 생선 찌꺼기를 버리는 곳. 아마도 아버지는 오심을 느꼈을 테고 구토를 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으리라. 그리고는 생선 내장이나 대가리 따위에 코를 박고 쓰러질 만큼 심한 토혈을 했으리라.
그로부터 가까운 어느 날, 아버지는 떠났을 것이다.
단 한 조각의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기억.
다른 기억들 모두를 압도해 버릴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가난한 가장 역할을 떠안은 엄마는 재산 한 푼 남기지 못할 만큼 무능했던 아버지를 원망했고,
남겨진 나는 나를 성장시키는 밥 대신 엄마의 불안과 원망을 떠먹으며 컸다.
엄마는 불행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 불행에 일조를 한, 아니 백조를 한, 아버지의 딸이었다.
나도 불행했지만,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그때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돌봐줘야 할 이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투정을 부리는 일도, 배부른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누군가 구토를 할 때면 내 안의 스위치가 켜졌다.
그것은 즉각적인 반응인데, 반응속도가 1초도 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를 압도하는 스위치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여전히 그 날을 살고 또 산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구토를 하는 것을 보아도, 대중시설의 화장실 옆칸에서 간혹 들려오는 누군가의 구토 소리에도, 아이의 구토에도 내 심장은 스위치가 켜지듯 터져나갈 듯이 두 방망이질을 친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몸의 모든 털이 쭈뼛서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되도록 그 장소나 상황에서 빨리 도망쳐야 조금 숨이 쉬어지지만, 심장은 여전히 비명을 질러댄다.
이런 트라우마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결혼했다.
남편은 영업사원이었고, 술자리가 잦았으며, 과음 폭음이 잦았다.
폭음을 할 때면 여지없이 변기와 방 여기저기에 구토를 해대던 그는 아마 내 트라우마를 알지 못했으리라.
터져나갈 듯한 두근거림을 참아내며 밤을 꼬박 새우고 가시 같은 얼굴로 돌이 되지 않은 아기의 기저귀를 갈며 말했다. 내 트라우마를.
격한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받을 줄 알았다.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말했다. 이해하지만, 그것은 니 문제라고.
자신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라고.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해받지 못하는 채로, 가끔 반복되는 구토에 밤을 새우고, 귀를 틀어막으며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암흑 같던 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 그래... 이건 내 문제야... "
그는 꾸준히 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해댔고, 그다음 날에는 밤을 꼬박 새운 나의 피곤한 얼굴을 개의치 않고 정오까지 누워있기 일수였다.
나는 피곤한 얼굴로 아이를 업고 토사물이 말라붙은 서랍이나 방바닥을 닦아내고 환기로 지독한 냄새를 빼내며 생각했다.
" 그래... 내 문제야... "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 순간, 나는 술 취한 남편의 귀가를 거부하고 있었다.
전화기 속 소란스러운 술자리의 소리에 그의 발음이 흐트러지면 나는 현관문을 걸어 잠그며, 남편의 귀가를 막았다.
그는 결혼을 잘 못해서 문제를 지닌 여자를 만나 찜질방이나 모텔이나 사무실에서 자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쓰러이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된 두근거림,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밤을 새우기 일수였지만,
최소한 밤새 온 집안에 축적된 토사물과 알코올이 혼합된 냄새는 맡지 않아도 될 터였다.
나는 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는 날 돕지 않았고, 나를 도울 수 있고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처럼 나 스스로가 전부였다.
지속된 불면증에 신경정신과를 찾은 나는, 의사에게서 한마디로 니 탓이라는 결론을 들었다.
남편에게 문을 열어줘야 하고 네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어떤 의사는 전적으로 남편 탓이라고도 했다. 결혼 전에 불면이 있었냐는 질문과 함께.
전혀 없었다는 나의 대답에 의사는 그렇다면 지금의 증상은 결혼으로 인한 것이란 건 자명하다고.
결국 나는 남편도 나도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단한 가장인 자기 연민에 빠져 내 고통 따위는 안중에 없었고, 나는 모진 마음을 여러 번 먹었다.
이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이혼밖에 없어 보였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어딘가에서 술 취해 비틀거리다 자동차에 부딪힐지 모르는 그의 위태로운 모습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아직까지도 나는 그를 걱정하고, 그의 죽음 뒤에 남겨질 내 엄마와 같은 빈곤한 삶의 고통을 머릿속에서 재생하고 또 재생한다.
내 생명의 근원지인 친정엄마는 죽은 아버지를 원망하다 부질없음을 깨달았는지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는 내 고통을 니 문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때로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세상 모두가 다들 내 통증 따위는 전혀 모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세상 모두가 내게서 등 돌린 느낌. 모든 번뇌와 굴레들을 벗어던지고 싶지만 결코 그것이 허락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자신의 책 《사후생》에서 우리의 인생 전체를 가리켜 하나의 공부와 수업이라고 하며, 고난과 비극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선물이라고 했다.
그것들을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며,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고 사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수와 해결하지 못한, 베풀지 못한 사랑에 대해 뼈저린 성찰과 자신이 남에게 주었던 상처를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생히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정말이라면 나는 비극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끊임없이 성장의 기회를 얻은 셈일까.
쇠를 단단히 하려 불에 담금질을 하고,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신이 내게 비극을 선물하는 것일까?
내가 더 단단해져야 하는 것일까?
남편으로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내 자식으로서 나를 극복하고, 나를 극복함으로써 내 엄마를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인생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다.
오로지 책 한 권만이 나를 이해시킨다.
둥근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추어본다.
심장은 평범치 않은 두근거림으로 스위치를 켜고, 의식은 칼날 같은 시퍼런 날을 세우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그의 외면을 폭력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날들을 건너온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도움을 청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 응하느냐 마느냐는 그의 선택이며 나는 그것을 존중해야 함을.
내게 그를 선택한 자유가 있었듯, 그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안다.
나의 단련은 현재진행형이며, 그것은 나의 지향이다.